[사회]애플은 왜 삼성과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나

스티브 잡스 사후 애플 스마트폰 주도권은 언제까지 유지될까

캄캄한 플로어. 화려한 레이저 조명과 함께 미션 임파서블 영화음악이 울려퍼졌다. 검은 재킷을 입은 남녀가 텀블링을 해 무대 위로 올라섰다. 잠시 후, 한국모토로라의 정철종 사장이 손에 휴대폰을 들고 나타났다. 모토로라 레이저. 모토로라가 내놓은 스마트폰이다. 7.1㎜의 ‘혁신적인 두께’와 언제 어디서나 이용 가능한 원격 접속 애플리케이션 ‘모토캐스트’가 다른 회사의 경쟁 제품과 차별점이다. 10월 19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열린 행사는 한 시간 넘게 계속되었다.

모토로라 레이저 출시에 맞춰 방한한 마크 쇼클리 모토로라 글로벌 모바일 디바이스 마켓 총괄 부사장이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 정용인 기자

질의응답시간. 기자들의 질문이 줄을 잇는다. 지난 8월 구글은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전격 인수했다. 이번에 내놓은 폰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이 제품은 1년 전부터 기획한 것이다. 우리는 항상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같이 개발해왔다. 합병하게 되면 같이 일하는 데 좋은 점이 있을 수 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모토로라로서는 아픈 질문도 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각, 삼성은 홍콩에서 구글과 함께 구글 안드로이드의 최신 운영체제 ‘아이스크림 샌드위치’(4.0)를 세계 최초로 탑재한 ‘갤럭시 넥서스’를 발표했다. 구글의 ‘레퍼런스폰’으로 삼성이 선정된 것이다. 그런데 모토로라의 운영체제는 이전 버전인 ‘진저브레드’(2.3)를 사용하고 있다.

애플에 맞서는 안드로이드의 수장은 이날 기자회견만 놓고 보면 여전히 삼성이다. 큰 주제는 이것이다. 스티브 잡스 사후, 스마트폰 시장은 어떻게 재편될 것인가. 다시 말해 애플 아이폰의 지배적 위치는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피처폰 시대에는 모토로라가 절대적 강자였다. 스티브 잡스 사후, 모토로라의 권토중래(捲土重來)는 가능할까.

구글 인수 후 모토로라의 전망
‘스마트폰 전쟁’은 스티브 잡스 생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 언론의 관심은 한국에서 열린 행사보다 홍콩에서 열린 행사에 쏠렸다. 삼성의 완승이다. 홍콩에서 삼성은 또 다른 이슈로 주목받았다. 행사 전날 기자들을 만난 신종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은 “그들이 우리에게 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역량과 능력을 동원해서 좀 더 공격적으로 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사장이 언급한 ‘우리’는 삼성이다. 그들은 ‘애플’이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 싸움은 얼핏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되느냐를 놓고 싸우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이 전쟁의 결과만 놓고 보면 삼성의 ‘패배’다. 애플은 7월 28일 호주에서, 그리고 8월 4일 독일에서 갤럭시탭10.1에 대한 판매금지가처분 신청을 낸다. 이 신청은 8월 9일 독일에서, 10월 13일 호주에서 각각 받아들여졌다. 전문가들은 “삼성에게 가장 큰 타격이 된 것은 네덜란드 재판”이라고 입을 모았다. 6월 24일 애플은 삼성의 스마트폰 갤럭시S에 대한 판매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는데, 한 달 뒤인 7월 20일 삼성이 맞소송을 낸다. 이 재판에서 벌어진 법정공방은 IT전문 블로거의 트위터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국내 커뮤니티 등에 번역 게재된 결과만 놓고 보면 삼성은 ‘공세’를 취했고, 애플은 시종일관 방어적이었다. 게다가 이 소송과 관련해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소송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는 ‘막후 협상’도 진행해왔다는 것이다. 삼성은 애플 제품이 삼성이 갖고 있는 표준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는데, 애플의 변호인 측은 ‘막후 협상’에서 그 로열티가 너무 비쌌다고 항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의외로 삼성의 패배다. 8월 24일, 네덜란드 법원은 갤럭시S 등에 대한 판매금지가처분결정을 했다. 삼성은 즉각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했지만 10월 13일, 그 신청은 다시 기각됐다.

구글의 모바일 담당 수석 부사장 앤디 루빈(왼쪽)과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신종균 사장이 새로 내놓은 구글 레퍼런스폰 갤럭시 넥서스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삼성으로서는 아슬아슬한 상황인 것이 사실이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을 추적해온 정우성 변리사의 말이다. 그는 최근에 낸 책 <특허전쟁>에서 최근 진행 중인 삼성과 애플의 전쟁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정 변리사는 소송은 두 갈래로 나뉜다고 말한다. 하나는 ‘자신의 디자인을 침해했다는 애플의 주장에 대한 삼성의 답변은 무엇인가’를 둘러싼 것이며, 다른 하나는 ‘삼성의 표준특허 침해 주장에 대해 로열티를 주장하는데 그 액수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둘러싼 소송이다.

애플은 디자인 특허를 내놓은 앞의 소송에서 이겼다. 정 변리사에 따르면 재판도 불리하고 협상의 지점에서도 삼성이 불리한 상황이다. 기자와 인터뷰 후 정 변리사는 이번 소송을 대하는 국내 언론이나 정책입안자 등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요지의 글을 개인블로그에 올렸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삼성전자가 우리나라 기업이기 때문에 삼성전자를 비호하고픈 심정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사실을 외면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태도와, 사실을 직시하고 애탄 마음으로 응원하는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 (중략)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것을 요리조리 살펴서 ‘사실상 승리’라는 묘한 표현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특허소송 삼성 ‘사실상 승리’ 맞나
애플의 입장에서는 이 소송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강정수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애플의 소송은 전략적이라기보다는 전술적인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스마트폰, 정확히 말해서 모바일 컴퓨팅 시장을 사실상 열어놓은 것은 애플의 아이폰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 소송은 애플과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의 싸움이다. 삼성은 갤럭시 시리즈를 통해서 애플을 빠르게 추격해왔다. 다시 말해 ‘삼성에 대한 소송’은 동시에 시장의 다른 경쟁자들에 대한 경고다. 애플로서는 삼성이 최대 부품공급업체라는 파트너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택한 이유다. 역시 안드로이드를 채택해 추격하려는 대만의 HTC, LG 등의 ‘아이폰 유사제품’에 대한 경고다.

강 연구원은 “애플의 의도는 그들의 추격자와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시장에 인식시키는 것이 목표였고, 이미 지금까지 소송만으로도 그 의도는 충분히 달성했다”고 덧붙였다. 이미 소송을 통해 원하는 성과는 다 거뒀기 때문에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정 변리사의 생각도 엇비슷하다. 그는 “내 분석으로는 삼성이든 애플이든 소송의 끝을 보는 쪽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허의 역사에서 ‘반면교사’의 예가 없는 것은 아니다. 코닥과 폴라로이드의 특허싸움이다. 즉석카메라의 강자였던 폴라로이드는 15년의 양보 없는 싸움에서 이겼고, 결국 코닥은 8억 730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하고 시장에서 손을 뗐다. 한때 협력관계였던 두 회사는 모두 타격을 입었다.

정 변리사는 “특허침해라는 재판결과가 미치는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나 시장의 신뢰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설혹 삼성이 백기를 들더라도 소비자에게는 백기를 드는 형식으로 비쳐져서는 안 된다”라며 “삼성의 특허소송과 관련한 최근 행보를 보면 본격적인 반격에 나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협상을 위한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대타협으로 보일 수 있는 ‘플랜C’ 즉, 애플이 주장해온 디자인적 외관을 바꾸는 등의 대비책을 이미 삼성은 마련해놓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시 처음의 주제로 돌아가자.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가 없는 애플은 이후에도 IT혁신의 주도권을 이어나갈까. 그리고 그 방법은 삼성과 특허전쟁처럼 2인자를 견제하는 소송을 통해서일까. 일단 독특한 카리스마로 혁신을 이끌어온 스티브 잡스의 부재가 애플의 미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특히, 그의 후임으로 애플의 CEO가 된 팀 쿡의 리더십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이를테면 스티브 잡스 사망 발표 직전에 열린 애플의 키노트 행사에서, 아이폰5가 발표될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것과 달리, ‘부분개량품’으로 보이는 아이폰4S가 나온 것과 관련해 ‘애플의 위기’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혁신의 불꽃이 꺼져가자 애플이 보수적으로 돌아섰다는 시각이다.

스티브 잡스 사후에도 애플의 스마트폰 주도는 계속될까. 사진은 새로 출시된 아이폰 4S를 사기 위해 런던의 애플매장에서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 / 연합뉴스

김대원 매일경제신문 기자는 팀 쿡의 애플CEO 등극에 맞춰 그의 리더십을 분석한 도서 <애플의 미래 팀 쿡>을 내놓았다. 그는 “아직 CEO로 취임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았고 자신 만의 세팅도 못한 상태에서 이것만으로 어떤 결과물을 평가하기는 이르다”며 “다만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했을 때 과거 그의 기업 넥스트 컴퓨터에서 수많은 인재를 데리고 왔는데, 그 쟁쟁한 인재를 뚫고 최측근으로 올라 선 것이나 올해 초 임시CEO를 맡아 발휘한 능력을 봤을 때 팀 쿡의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성숙기로 접어들 앞으로의 2~3년 동안은 시장의 수평적 확대, ‘관리’가 더 중요하게 될 것이고, 그런 면에서 팀 쿡은 과거 관리혁신 등의 경험을 볼 때 잘 해낼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강 연구원은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전략의 길을 열어놨고, 일단 하나의 시장이 열렸을 때 경로의존성이 있기 때문에 팀 쿡이 경영전략상 실수를 하더라도 이 경로는 일정 정도 지속될 것”이라며 “사명을 애플컴퓨터에서 애플Ins.로 바꾼데서 드러나듯 이미 컴퓨터 회사가 아니라 미디어·가전 등의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아이패드가 그렇듯 기존의 가전이나 자동차 등에서 스마트 기기를 만들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팀 쿡의 능력은 앞으로 이 새로운 시장에서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따라 증명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이후 가전기기로 확전된다
그렇다면 후발업체, 삼성과의 경쟁은 앞으로 몇 년 내에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넘어서 여러 방면에서 확전될 가능성이 많아진다. 강 연구원은 “현재까지 삼성이 잘해왔던 것은 시장이 창출되면 빠른 시일에 따라잡는 전략이며,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내 시장에서 반향을 얻는 2~3개 제품에 주력하는 방식”이라며 “하드웨어 부분에서는 확실히 강했고 앞으로도 당분간 강자이겠지만, 애플이 발견한 새로운 수익원인 앱스토어처럼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얼마나 따라 잡을 수 있는지가 삼성의 생존에서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런 의견에 대해 삼성 측은 어떻게 생각할까. 삼성 홍보팀 관계자는 특허논란과 관련하여 “애플의 공격에 대해 삼성이 방어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고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삼성이 특허를 취득해온 이유는 방어 목적이었기 때문에 한 번도 먼저 특허관련 소송을 벌인 적이 없다”라며 “독일과 호주에서는 졌지만, 네덜란드의 경우 애플이 제기한 10개 특허 중 9개를 삼성이 이겼고, 1개를 애플에 진 것이며,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 직후에 특허를 침해했다는 부분을 수정해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솔직히 소송으로 인해 삼성이 타격을 입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면서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창조적 혁신자 역할을 하다가 왜 갑자기 복덕방 영감처럼 바뀌어서 공격을 하는지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삼성의 추격이 워낙 거세니 적어도 태블릿은 추격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들어간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