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분열과 불통의 강정마을

제주 해군기지 건설 둘러싸고 찬성·반대 측 충돌 반복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의 코사마트 사거리는 제주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상징적인 공간이다. 오랫동안 반대측 주민들과 성직자, 평화활동가들은 이 사거리를 무대로 매일 아침 미사와 저녁 촛불집회를 진행했다. 해군기지 공사가 진행되는 날에도, 되지 않는 날에도 이들은 코사마트 사거리에 모였다.

그래서인지 코사마트 사거리에는 ‘해군기지 결사반대’라고 적힌 노란 깃발이 유달리 눈에 많이 들어온다. 사거리에 위치한 대부분의 건물에 이 깃발이 걸려 있다. 3월 5일부터 구럼비 바위 발파를 막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든 때문인지, 사거리 코사마트는 하루 종일 붐볐다.

7일 해군 제주기지사업단이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발파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코사마트 반대편에는 나들가게가 위치해 있다. 북적이는 반대편 가게와 달리 나들가게에 드나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가게에는 노란 깃발 대신 태극기가 높게 걸려 있다. 가게 주인인 강희상씨(52)는 해군기지 유치를 찬성하는 주민이다. 강씨는 찬성주민위원회 사무국장도 맡고 있다.

강씨는 “찬성한다는 이유로 우리 가게 장사가 안된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언론에서 찬성 주민들의 목소리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기자의 질문에 강씨는 “우리 가게가 이렇게 됐는데 누가 언론에 ‘나 찬성이오’라고 말을 하겠나. 찬성 주민으로 알려지면 반대 주민들이 살 수 없게 만든다”고 했다.

강씨의 가족도 다른 강정마을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갈려 있다. 강씨의 동생은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안 보고 산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해군기지 찬반 가족 내 갈등으로
강씨를 비롯한 찬성파 강정마을 주민 20여명은 8일 오후 1시에 열린 해군기지 찬성집회에 참석했다. 강씨는 “이미 해군기지 건설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논란이 잦아들어야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 외부세력이 나간 뒤 주민들이 찬반을 떠나 강정마을의 발전을 위해 이야기를 나눴으면 한다”고 말했다.

해군기지 찬성단체가 모인 강정체육공원과 강정마을 사이에 흐르는 강정천은 강정마을과 외부를 나누는 경계선 구실을 한다. 강정천 위에 있는 100m 남짓한 길이의 강정교가 일종의 마을 입구인 셈이다. 마을 밖에서 강정교를 건너 들어오면 해군기지 공사장 입구(해군기지사업단 후문)가 나타난다. 해군기지 반대측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은 6일부터 공사장 입구에 진을 치고 집회를 열고 있다.

서귀포경찰서가 6일 제주해군기지 시공사 측의 화약류 사용 허가 신청을 전격 승인한 것이 집회의 발단이 됐다. 이 조치로 구럼비 바위를 발파할 수 있는 화약이 공사장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됐다. 이 소식을 들은 강정마을 주민 100여명은 화약차량 진입을 막기 위해 7일 새벽 3시30분부터 공사장 앞을 차량과 몸으로 막고 나섰다. 일부 주민, 평화활동가와 취재기자들은 공사장 담을 넘어 구럼비 바위로 진입하기도 했다.

7일 구럼비 바위 발파작업을 막기 위해 제주 해군기지 공사장 안으로 간 한 성직자가 경찰에 의해 연행돼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7일 오후에는 야당 정치인들이 속속 강정마을로 도착했다. 천정배·김재윤 민주당 의원이 먼저 도착했으며 뒤이어 정동영 민주당 의원,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도착했다. 천 의원은 “불필요하고 막무가내식 공사를 어떻게든 막아내겠다”고 말했다. 서귀포시가 지역구인 김 의원은 “해군기지 공사를 즉각 중단하고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녁 7시에는 한명숙 민주당 대표도 공사장 입구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는 마을사람들을 찾아 “왜 정권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지 먹먹하다. 해군기지 공사 중단을 외치고 야권연대를 해내겠다”고 말했다.

경찰과 경찰버스가 막아선 강정교
한 대표가 등장하자 일부 주민이 갑자기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참여정부가 해군기지 통과시켰다! 한명숙은 사과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한 대표는 사과하지 않은 채 40분 만에 마을을 빠져나갔다. 구호를 외치던 한 주민은 “강정 사람들은 한 대표가 국무총리 시절 대양해군 육성을 위해 제주 해군기지가 불가피하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 문제는 사과 한 마디 없이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버렸다”고 말했다.

8일에도 새벽 5시30분부터 화약차량의 해군기지 공사장 진입을 둘러싼 마을 주민들과 경찰의 충돌이 반복됐다. 경찰이 공사장 입구를 두드리고 담을 넘어가려 한 주민 2명을 연행하자, 다른 주민들이 경찰차 앞에 드러누워 연행을 저지했다. 연행자를 둘러싼 경찰과 주민들의 대립은 낮 12시가 돼서야 풀어졌다. 강정마을 주민들과 해군기지 반대 활동가들은 문화제를 이어갔고, 경찰은 뒤이어 열릴 해군기지 찬성집회와의 충돌을 대비해 강정교를 경찰버스와 경찰 병력으로 막아섰다.

찬성집회에 등장한 보수단체 회원
오후 1시가 되자 강정천 건너에 있는 강정체육회관에서 해군기지 찬성집회가 시작됐다. 강정교에 배치된 경찰 병력을 두고 같은 시간에 찬반 집회가 진행된 것이다. 해군기지 찬성집회에는 서경석 목사(64) 등 보수 기독교인들과 안형환 새누리당 의원(49) 등이 참석했다. 재향군인회, 상이군경회, 특수임무수행자회, 해병대전우회, 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 집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단체들이 모두 모였다. 참가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약 300명, 제주도에서 1000여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55)은 “(일부 보수단체들이) 평화활동가들이 외부세력이라며 강정을 떠나라고 한다. 마을 주민의 80%가 해군기지에 반대하고 있는 여론이 있다는 것도 잘 모르면서 그렇게 말한다”고 말했다.

8일 안형환 새누리당 의원(가운데 파란 목걸이)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강정마을 인근에서 해군기지 건설 촉구 집회를 가진 뒤 행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찬성집회에 참가한 일부 강정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갈등을 끝내고 진정한 마을의 발전을 위해 뜻을 모아야 한다”며 집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강동균 회장에 앞서 강정마을회장을 지낸 윤태정 제주해군기지 추진위원장(57)은 집회 발언에서 “반대론자들이 뻔뻔하게 진보 대 보수를 내세우며 해군기지를 정치이슈화한다. 우리는 좌우, 진보, 보수를 몰랐던 평범한 마을사람들이었는데 왜 여기에 시위꾼들이 들어왔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육지에서 강정마을로 건너온 보수 시위대는 발언에서 “종북좌파”를 거론했다. 안형환 의원은 “애국시민 여러분들이 계시기에 종북세력이 대한민국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3000명의 전문 시위꾼들이 제주에서 저주의 굿판을 벌이고 있다. ‘구럼비 바위의 눈물’이라는데 바위가 눈물은 무슨 눈물이냐. 이상한 환경이론 가지고 국책사업을 막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서경석 목사는 “중국 관광지인 해남도에도 핵잠수함기지가 있지만 외국 관광객이 얼마든지 들어간다. 제주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중국을 자극한다는 주장은 사대주의적 주장이다. 구럼비 바위는 제주도 해안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바위 중 하나에 불과하며, 전문가들도 구럼비 바위의 보존가치가 낮은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서 목사는 집회 도중 해병대전우회 등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참전용사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해군기지 찬성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대부분 60~80대 노년층이었다. 자신을 ‘서울에서 온 장로’라고 밝힌 박찬형씨(74)는 “건너편 집회에 젊은이들이 많다. 젊은이들이 선동을 당해 가치관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왜 해군기지를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박씨는 “노무현 정부 때 민주당도 다 찬성한 것이고, 국익을 위해 무조건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성 참가자도 있었다. 하지만 기자가 말을 걸자 이 참가자는 “어르신들 도우러 온 것뿐이다”라며 자리를 피했다.

8일 오후, 제주해군기지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건설 중지를 요구하며 강정포구로 행진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강정 주민들이 강정교를 사이에 두고 찬성·반대 집회를 벌이고, 보수단체들이 강정마을에 찾아와 ‘종북타령’을 하는 상황은 피할 수 없었을까. 제주도는 5일부터 해군과 정부에 해군기지 공사를 일시 보류해줄 것을 요청했다.

5일 우근민 제주도지사와 오충진 제주도의회 의장, 새누리당·민주당 제주도당 위원장은 제주 해군기지가 민·군 복합항으로 추진되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며 “선박조종 시뮬레이션에서 직접적 당사자인 제주도는 참여하지 못했다. 구럼비 발파를 비롯한 공사 진행을 즉각 보류하고, 제주도와 해군이 함께 공정한 검증에 나설 것을 요청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튿날 국무총리실은 “제주해군기지 공사를 정상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다”고 나섰고, 서귀포경찰서도 시공사의 발파를 승인했다.

구럼비는 해안노출암 뜻하는 보통명사?
7일 오전에도 우 지사와 오 의장은 “서귀포경찰서의 발파 승인 이후 강정 주민, 해군, 경찰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우려되고 있다. 우선 물리적 충돌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공사를 일시 멈춰주길 바란다”라며 긴급 호소문을 발표하고, 해군 측에 공사중지 협조요청 공문도 발송했다. 하지만 8일 황기철 해군참모차장(준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제주 해군기지는) 국가안보뿐만 아니라 제주도 발전을 위해 시급한 국책사업이므로 더 이상 정치쟁점화되면 안 된다”며 공사 강행 의지를 밝혔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해 8월 강정마을 중덕 해안가에 위치한 구럼비 바위의 모습. | 김창길 기자

해군 측은 아예 구럼비 바위가 평범한 바위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폈다. 5일 제주해군기지 사업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구럼비는 까마귀쪽나무를 뜻하는 제주방언으로, 구럼비 바위는 특정지역의 희귀한 바위가 아니라, 제주 전역에 흔하게 보이는 까마귀쪽나무가 자생하는 일반 해안 노출암을 뜻하는 보통명사다”라고 밝혔다.

보수언론도 이 주장에 동조했다. 7일 조선일보는 “구럼비 바위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8일 중앙일보도 “구럼비 바위는 특정지역의 희귀한 바위가 아니라 제주 전역의 일반 해안 노출암”이라고 썼다. 8일 해군기지 찬성집회에서 만난 윤태정 추진위원장도 “예전에는 강정 해안가 바위를 보러 오는 외지인은 없었고, 가끔 근처 동네에서 낚시하는 사람들만 찾아왔다. 이제와서 외부세력들이 구럼비 어쩌구 하면서 포장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정마을 평화활동가들은 이러한 주장이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한 평화활동가는 강정마을 홈페이지에 올린 자료를 통해 “향토지, 지명유래집 등을 검토한 결과 ‘구럼비’라는 지명은 강정에만 있다”고 밝혔다. 이 활동가에 따르면, ‘구럼비’라는 지명은 ‘강정동 동남쪽 바닷가’를 뜻한다. 또한 1999년 출판된 서귀포시 지명유래집에는 ‘구럼비는 강정동 2731번지부터 4670번지까의 논이 있는 곳이며 지금은 구럼비라고 부른다’라고 나와 있다. 이 활동가는 “276쪽에 달하는 제주토속지명사전을 뒤져봤을 때, 구럼비라는 표현은 강정마을에만 한 차례 등장한다”고 말했다.

<제주 서귀포ㅣ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