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디지털 기억]‘인터넷의 추억’ 영영 지워야 한단 말인가

서비스 종료하면 게시물·댓글·사진 등도 사라져… ‘개인의 기억’ 보존할 권리는 없나

“프리챌의 추억을 백업하러 로그인 했더니 어제까지 ㅜㅜ. 이렇게 또 강제로 기억을 소거당하는구나.”

프리챌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고 서비스 종료일(2월 18일) 이후에 프리챌에 접속했다 좌절한 한 네티즌이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말이다. 프리챌의 게임과 파일구리(웹하드) 서비스는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나 많은 네티즌들에게 프리챌은 곧 커뮤니티와 동의어였으므로, 프리챌 커뮤니티 서비스 종료는 곧 프리챌의 소멸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2012년 12월 31일 오후 서울 삼성동 야후코리아 사무실이 한산하다. 야후코리아는 이날 서비스를 종료했다. | 연합뉴스

1월 17일 프리챌이 커뮤니티 서비스 중단 방침을 밝힌 후 추억을 수습하기 위해 프리챌을 찾은 대다수 네티즌들에게 프리챌 접속은 오래 비워둔 집을 찾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을 것이다. 1999년 만들어진 프리챌은 2000년대 초반 이용자의 온라인 가상 캐릭터인 아바타와 전문 커뮤니티 서비스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2002년 유료화 선언 이후 많은 이용자들이 프리챌을 떠나 다른 온라인 서비스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프리챌은 이듬해 다시 무료화로 돌아서긴 했지만, 이미 100만개 가까웠던 커뮤니티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 뒤였다.

서비스 종료 이후 데이터 관련규정 없어
프리챌 서비스가 중단되리라는 것은 이미 2년 전부터 기정사실화했다. 프리챌은 2011년 3월 파산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프리챌 서비스 종료는 그 공간에 추억을 묻어둔 이들에겐 허전함으로 다가온다. 2001년부터 프리챌에서 대중문화 커뮤니티 ‘트리플 크라운’을 운영해온 강명석 텐아시아 편집장은 “프리챌은 내가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한 곳이다. 개인적으로는 한 시절이 끝나는 느낌”이라며 “본래 내 소망이 언젠가 프리챌로 돌아가서 자유롭게 글을 쓰고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것이었는데, 이젠 그럴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트리플 크라운의 회원이었던 이들은 강 편집장에게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는데, 그 수단이 트위터 메시지였다는 사실은 PC통신-웹서비스-모바일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로 이어진 정보통신(IT) 기술의 숨가쁜 변화를 상징한다.

현재 가장 각광받고 있는 온라인 서비스인 트위터에 최근 올라온 글들은 온라인 서비스 종료에 따른 이용자들의 우려를 보여준다. “프리챌 커뮤니티 이젠 진짜 안 열리네. 난 그냥 자료 보관용이었기에 섭섭하기까진 않지만 기분이 이상하다. 모두 얼음집(이글루스 블로그)에 옮겨놓으려고 했는데 거기도 없어지면 이번에 했던 짓을 또 해야 할까봐 무섭다.”(@amuser) “그래도 뭔가 아쉽다고 프리챌 사진들 몇 개를 이글루스에 옮겨놨는데 이러다 이글루스가 망한다고 하면 난 정말 말 그대로 멘탈이 붕괴되고 말 것.”(@dpaich) “프리챌도 문을 닫고, 알게 모르게 사라지는 인터넷 세상이다. 뭔가 새로운 서비스에 가입하는 게 망설여진다.”(@ryudonghyup)

이러한 우려는 최근 파란닷컴(하이텔의 후신·2012년 7월), 야후(2012년 12월), 나우누리(1월), 프리챌(2월) 등 PC통신과 1세대 인터넷 서비스가 잇달아 서비스를 중단하는 상황에서 나오고 있다. IT산업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 지금은 막강한 위세를 자랑하는 인터넷 서비스라도 시장의 변화에 뒤처지면 한순간에 신생 서비스에 밀려 무너진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개인이 각종 인터넷 서비스에 남겨놓은 흔적들은 물리적 데이터인 동시에 정서적 가치를 갖는 개인의 기억이기도 하다. 장기간 이용해온 온라인 서비스가 사라질 경우 그곳에 축적해놓은 개인의 ‘기억’(게시물·댓글·사진·동영상·메일·첨부파일)은 어떻게 보존할 수 있는가.

현재로서는 개인의 노력이 없는 한, 그 기억은 소멸의 운명을 맞게 된다.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는 서비스 종료 이후에도 데이터를 살려놓을 법적 의무가 없다. 정보통신망법에는 관련 규정이 없다. 사업자는 서비스 중단 이전에 종료 공지만 내리면 된다. 공지를 종료 예정 시점으로부터 언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구속력 있는 기준이 없다. 2004년 PC통신 하이텔이 포털에 뛰어들면서 출범한 파란닷컴은 지난해 7월 31일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이용자들에게 두 달간의 백업 기간을 줬다. 야후코리아의 경우에는 이 기간이 한 달이었다. 야후코리아는 미국 야후로 계정 이전 신청을 하지 않은 이용자들의 데이터(메일·첨부파일·사진)는 모두 삭제했다. 프리챌의 경우에도 백업 기간은 한 달이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짧은 기간이다.

“서비스 운영자 입장에서는 서비스 개시나 종료 모두 사업적 결정이다. 수익성이 없어 문을 닫는데 데이터를 보존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사업적 결정에서 이용자의 추억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사업이 잘 될 때 이용자들이 콘텐츠 백업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은데, 백업 기능 제공을 선호할 업체는 없다. 비용보다는 이용자들이 자신들의 서비스를 떠날 수 있다는 두려움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해외에서도 그런 경우는 없다.” 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장의 말이다.

나우누리 이용자들 서비스 인수 움직임
데이터를 모두 백업한다 하더라도 그 데이터는 불특정 다수의 이용자들이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며 만들어가는 인터넷 생태계로부터 떨어져나와 화석화한 것이다. 류 소장은 “백업한 데이터를 개인 블로그에 올린다고 하더라도 누가 얼마나 보겠나. 콘텐츠로서 기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어떤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기 전에 서비스의 영속성을 미리 계산하거나 적자나 서비스 불안 등 이상징후가 나타났을 때 다른 서비스로 재빨리 이동하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나우누리와 프리챌의 서비스 종료 공고.

나우누리 이용자 일부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이들은 나우누리를 인수해 자체적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1990년 세무공무원 일을 그만두고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임원택씨(50)는 나우누리 폐업 소식을 듣고 지난해 12월 8일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나우누리 살리기’ 카페를 만들었다. 카페 개설 소식을 듣고 PC통신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160여명이 모였다. 임씨는 “지난해 12월에 오프라인 모임을 했는데 여러 전문분야의 실력 있는 분들이 많았다. 나우누리를 충분히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고 말했다. 임씨는 1월 25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나우누리 운영업체 나우SNT를 상대로 “1994년부터 나우누리의 게시판 등에 쌓아온 저작물을 지켜야 한다”며 ‘서비스 이용종료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나우SNT는 법원 중재에 따라 기존 자료를 폐기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 임씨는 “나우SNT 쪽과 연락이 안 돼 자료가 모두 사라질까봐 소송을 냈던 것인데 회사 쪽에서 뒤늦게 연락이 왔다. 적대적인 소송이 아니라 나우누리를 살리기 위한 애정어린 소송이다. 회사 가치가 사실상 제로나 마찬가지여서 아주 적은 비용으로 인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온라인 서비스와 달리 나우누리 이용자들이 서비스 인수까지 고려하며 서비스 지속에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나우누리 살리기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IT 기술자 이청희씨(29)는 “나우누리는 국내 통신망 1세대여서 유료회원이 많았다. 인터넷이 대중화하기 이전이라 숫자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결속력이 강했다. 모두 실명을 사용했고 존댓말을 사용하면서 존중해줬다. 이용자들의 오프라인 모임도 활발했는데, 나우누리 쪽 사람들과 이용자가 한데 어울렸다”고 회고했다. 임원택씨는 “1997년 무렵 나우누리 게시판을 통해 전국공무원노조를 준비하고 있을 때 경영진의 도움을 받아 명단 압수수색을 피할 수 있었다. 그때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나우누리 살리기의 계획대로 나우누리 인수가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기존의 다른 인터넷 서비스와 경쟁하는 형태로 운영될 가능성은 적다. 이청희씨는 “과거의 자료나 공간이 없어진다는 게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일단 그것만은 막아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상업적 전망은 없다고 본다. 우리가 인수하면 기본적으로 아카이브 성격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나우누리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앞서 문을 닫은 서비스의 경우 데이터 보존과 서비스 지속을 위해 이용자들이 집단적인 움직임을 보인 사례는 없다.

미국에선 페이스북 공적재산화 주장도
이용자가 사업자의 서비스 중단 결정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당위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불가능한 일이다. 인터넷 서비스의 데이터 보존문제를 ‘이용자 권리’ 측면에서 본다면 문제는 남는다. <누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죽이나> 저자 김재연씨는 “사업성이 나빠져서 문을 닫겠다는데 그걸 막을 수는 없다. 문제는 그럴 경우 개인의 데이터가 잘 보존되느냐다. 이용약관이라는 보호장치가 있긴 하지만 사업자 위주로 만들어지고 임의적으로 갱신된다. 어길 경우 제재 수단도 막연하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 지난해 미국의 한 대학교수는 페이스북 같은 영향력 있는 서비스를 국가의 공공 자산으로 만들자는 주장을 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 AP연합

미국에서는 사회적인 영향력이 막강한 인터넷 서비스는 공적 재산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 워싱턴대 교수 필립 N 하워드는 지난해 8월 IT전문 인터넷 매체 <슬레이트>에 쓴 ‘페이스북을 국유화하자’라는 글에서 “지난 수년 동안 페이스북은 공공재이자 중요한 사회적 자원이 됐다”며 페이스북이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페이스북 국유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하워드 교수의 논거는 이렇다. 시장의 80%를 차지하며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페이스북은 중요한 공적 정보 인프라가 됐으므로, 페이스북의 운명을 불안정한 시장이나 경영진에 맡기지 말고 공적 재산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페이스북이 축적하고 있는 엄청난 양의 ‘빅데이터’를 공공 복지를 위한 학술 연구와 정책 수립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8월 17일자 칼럼에서 “페이스북 국유화는 정부에 (사람들의) 표현을 통제할 권리를 주는 위험한 선례가 될 것”이라며 “어이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인터넷 서비스에 축적된 데이터를 보존하고 공익적인 목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로 트위터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트위터는 2010년 4월 미국 의회도서관과 협정을 체결했다. 트위터 출범 때부터 협정체결일까지, 그러므로 2006년부터 2010년 4월까지 생성된 트위트의 아카이브를 의회도서관에 제공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2013년 1월 의회도서관 자료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소셜미디어가 소통과 창의적 표현의 주요 수단이 됨에 따라 소셜미디어는 서신과 저널, 연속간행물, 기타 연구도서관들이 일상적으로 수집하는 자료들을 보완하거나 일부의 경우 이를 대체하고” 있는데, 트위터 아카이브를 통해 연구자들이 학술·입법·저작·교육활동의 중요 기반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국 IT산업의 멸망> 저자 김인성씨는 “사업 종료에 따른 데이터 보존의 부담을 기업에 다 지울 수는 없다”면서도 “나우누리 이용자들이 나우누리를 인수하겠다는 움직임도 있는데, 기록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웹사이트들에 대해 국가적인 데이터 아카이브를 만드는 논의를 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