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유가족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용산참사 현장 비극 아직도 진행 중… 생존권 요구·추모미사 매일 열려

160일을 넘긴 용산 참사 사건. 해법은 없는 것일까. 사진은 용산 남일당 건물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 63번지. 1월 20일,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불에 타죽은 ‘용산 참사’ 현장의 주소다. 사건이 일어난 지 162일. 비극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장례는 치러지지 않았고, 유족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생존권을 요구하는 대책위 주민들의 집회도 계속되고 있고, 천주교사제단의 추모미사가 매일 열리고 있다. 정부의 외면과 시민의 무관심도 여전했다. 용산 참사의 하루를 Weekly 경향이 기록했다.

“잘모르겠는데요. 어떻게 되었나요?”
새벽 신용산역 앞. 지하철을 타러 가는 시민에게 ‘용산 참사’에 대해 물었더니 이렇게 반문했다. 신용산역 출구에서 참사가 일어난 남일당까지는 100m 남짓. 현장에는 그날 사건의 흔적이 아직까지 뚜렷하게 남아 있다. 건물 벽면엔 검은 그을음이 지워지지 않았고, 유리창이 있던 자리는 푸른색 비닐막이 대신하고 있다. ‘증거 보존을 위해 건물로 접근을 금한다’는 현수막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족 측 현수막이 건물 주변에 가득하다. Weekly 경향이 현장을 찾은 날은 6월 30일. 162일 전 이 무렵, 이곳은 생과 사가 갈리는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을 거뒀다. 불타고 있는 망루를 바라보며 가족들은 실신했다. 2월 9일 검찰은 최종수사발표를 통해 “화재는 망루 농성자들이 뿌린 시너와 화염병 때문에 일어났다”라며 경찰 진압엔 ‘법적 책임’이 없다고 결론내렸다. 검찰은 철거민 5명을 구속기소하고 농성가담자 1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아직 장례식 치르지 못한 희생자들
숨진 철거민 5명의 시신은 인근 순천향병원 장례식장 지하1층 냉동보관고에 안치되어 있다. 용산철거민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에 따르면 시신 1구당 보관료는 하루 9만 원. 하루 45만 원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범대위가 사용하고 있는 영안실 사용료는 하루 177만 원. 범대위 관계자는 “지금까지 누적된 사용료는 5억 원가량인데, 그중 1억 원가량은 갚고 아직 4억 원 정도가 남아 있다”고 밝혔다.

6월 30일 오후, 용산구청 앞에서 열린 규탄대회에 참가한 유가족과 대책위 주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오전 6시 30분 남일당 합동분향소. 합동분향소는 이곳과 순천향병원 장례식장 앞에 마련되어 있다. 건물 앞에는 전경버스가 주차되어 있다. 네댓 명의 의경이 건물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용산 4구역 철거민세입자대책위원회, 전철연’이라는 글씨가 씌인 남청색 조끼를 입은 아주머니가 플라스틱 빗자루로 분향소 앞을 쓸고 있다. 이 아주머니는 “24시간 동안 전경이 지키고 있다”며 전경버스 앞까지 치우고 있다. 의경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잡담하고 있었다.

분향소 안에는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회원이 상주를 대신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가족들은 순천향병원 4층 영안실에 마련된 범대위 상황실에 머물고 있다. 분향소 정면엔 ‘대통령은 사죄하고 전면 재조사하라’는 요구를 적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철거민 5명의 영정사진 앞에는 작은 촛불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구석에는 미사와 집회에 사용한 도구들이 놓여 있다.

분향소 옆 골목에 앳된 얼굴의 대학생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빈곤철폐현장활동’(빈활)을 나온 ‘전국학생행진’ 소속 학생들이다. 임원빈씨(19)는 “서울에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1학년이다. 임씨는 “사방에 높은 건물이 에워싼 가운데 무너져버린 철거촌에 와 보니 충격적이다”고 덧붙였다.

7시 30분. 분주한 움직임이 있었다. 무전기를 든 경관이 지시를 보낸다. 흩어져 있던 의경들이 모여든다. 전철연 소속 용산4구역 대책위 아주머니들도 대응에 나섰다. 철거를 맡은 ○○건설이 ‘기습적으로’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들은 “비켜서라”고 말했다. 도로인데 왜 못 지나가게 하느냐는 논리다. 용역업체 직원들과 고성이 오갔다.

6월 30일 오전, 남일당 옆 건물 철거를 둘러싸고 대책위 주민과 철거용역들이 대치하고 있다.

그 순간. 그들의 머리 위로 소형 굴착기 한 대가 솟아올랐다. 철거작업을 하기 위해 크레인으로 매달아 공중에 띄운 것이다. 굴착기의 행선지는 참사 당시 경찰이 물대포를 쐈던 건물 옥상이다. 또 한 대가 실려 올라갔다. 대학생들도 모여들었다. 대책위 주민들과 대학생들은 “생존권을 박탈하는 ○○건설 물러나라”고 구호를 외쳤다. 용역들은 꿈쩍하지 않는다. 현장 담당 건설사 소장이 나섰다. 대책위 측은 철거중단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주장이다. “길을 왜 막느냐”는 전철연의 반론. 그는 “철거작업 중인 골목은 위험하기 때문에 우리가 통제한다”고 말했다. 대치는 한동안 계속됐다. 결국 ‘철거작업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길을 터줬다.

용역들이 비켜나자 철거촌의 모습이 드러났다. ‘철거’라고 휘갈겨 쓴 빨간 스프레이 글씨. 허물어진 벽으로 속을 드러낸 건물 내부엔 채 치워지지 않은 벽돌과 비계 등이 눈에 띄었다. 골목 곳곳엔 철거 잔해가 쌓여 있다.

기습 철거에 또다시 멍드는 가슴
용역업체 직원들은 대책위 주민들이 지나간 뒤 다시 골목을 통제했다. 말을 붙여봤지만 답이 없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결국 한 직원이 이죽거리며 “힘들죠, 막 밀고 꼬집고 하는데”라고 답했다.

“전철연의 깃발 아래/와서 모여 뭉치세/빼앗긴 우리 이 땅을 투쟁으로 되찾으세…” 전철연 방송차 확성기에서 노래가 울려 퍼진다. 90년대 초반 민중가요 ‘철의 노동자’를 개사한 곡이다. 개사한 곡의 제목은 ‘철의 철거민’. 대책위 주민들이 노래에 맞춰 몸을 움직인다. 노랫소리 사이사이에 굴착기가 내는 소음이 묘하게 섞여 들린다. 골목어귀. 강아지를 안은 한 중년여인이 걸음을 멈추고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산책 중이라고 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희생된 것은 안타깝다. 하지만 재개발은 이미 정해진 것이고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너무 물러 터졌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그녀는 “유가족들이 들으면 몰매맞겠네”라며 발길을 돌렸다. 어디에 사느냐고 묻자 그는 철거촌 너머 한 주상복합 건물을 가르켰다. ‘용산시티파크’라는 이름의 그 건물은 낮은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이 솟아 있었다.

참사가 일어난 남일당. 정부의 무대책을 규탄하는 시민단체들의 규탄 플래카드들이 걸려 있다.

유가족 세 명이 남일당 현장에 왔다. 유영숙(48)·신숙자(51)·전재숙씨(68). 검은 상복을 입은 그들의 얼굴은 어둡다. 밤새 분향소를 지킨 대책위 측과 천주교사제단 신부들과 웃음기 없는 얼굴로 인사를 나눈다. 분향소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 그들은 영정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전재숙씨는 분향소 입구의 낮은 평상에 앉아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 이상림씨(71)는 그날 불귀의 객이 되었다. 아들 이충연씨(36)는 남일당 건물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쳤고 현재 구속 중이다. 아들 이씨는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대학생들이 또 왔다. 이번엔 ‘대학생사람연대’ 소속이다. ‘빈활’에 참여한 대학생은 100여 명. 대학생들의 원래 일정은 오전에 간단히 상황 설명을 듣고, 오후 1시에 유가족과 간담회를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날 아침의 ‘사건’으로 일정은 흐트러졌다. 간담회는 취소되었다. 대신 오전 철거에 항의하는 거리행진을 진행할 계획이다. 대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행진과 집회에서 쓸 플래카드 등을 만들고 있었다.

점심 후. 대책위 주민들과 빈활 대학생들이 ‘先개발, 無대책’,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용산 4구역 재개발 지역을 행진했다. 지나가다 멈춰서 구경하는 사람들. 익숙하다는 듯 무표정하게 지나쳐 가는 사람들.

2시. 용산구청 앞에서 규탄대회가 열렸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무슨 일인지 입을 다물며 지켜보는 시민들이 있는가 하면 길이 막힌 것에 불만을 쏟아내는 시민도 있다. 사회자가 규탄대회 시작을 선언했다. 고인들의 영정이 찍힌 플래카드를 든 유가족들의 얼굴은 무표정하다. 멍하게 땅을 바라보는 이도 있고, 용산구청 건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도 있다. “참사 후 만나자고 해도 ‘출타중’이라며 도망만 다닌다. 큰 돈도 아니고, 최소한의 생존권 요구인데…. 우리는 무시하면서 자신들은 새로 지은 건물로 이전하려고 한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전씨의 목소리엔 분노가 서려 있다.

규탄대회는 3시간 남짓 진행됐다. 그러나 길거리 행진을 시도한 순간, 막고 나선 경찰과 충돌이 발생했다. 경찰은 ‘미신고 집회’라며 해산을 종용했다. 플래카드 등 시위용품의 압수를 두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날 집회와 관련해 용산경찰서 측은 “경찰을 폭행한 시위대 한 명을 연행했다”고 밝혔다.

비 올 때까지 ‘기우제’하는 심정으로…

6월 30일 오후, 대책위 주민들과 빈활 대학생들이 추모미사가 끝난 후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오후 7시. 다시 남일당 앞. 철거 굴착기 소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거리엔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한다. 매일 저녁 이곳에서는 천주교사제단이 주관하는 추모미사가 열린다. 유영숙씨에게 ‘현 상황’에 대해 물어봤다. 홍석만 범대위 대변인이 대신 답했다. “대화를 하자고 하는데 폭력으로 나오는 정부에 우리가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범대위 소속 활동가들이 너나할 것 없이 천막을 치고 탁자를 나른다. 이날 미사에서 나승구 신부는 다음과 같이 강론했다.

“기우제를 하면 무조건 비가 온다는 한 인디언 부족이 있습니다. 사실 기우제는 과학적이지도 영검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합니다.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검찰이 수사기록 3000쪽을 내놓을 때까지 기도를 올리고, 이 모든 것이 해결될 때까지 기도를 올릴 것입니다.”

저녁 8시. 미사에 참여한 이들은 빈민사목위원회가 나눠준 떡을 들고 서로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 합동분향소에 들러 조문하는 이도 있었다. 빈활을 나온 대학생들, 세입자대책위도 각각 이날의 ‘투쟁’을 평가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9시가 넘어 유가족들이 분향소에서 나섰다. 지치고 어두운 표정은 아침과 다를 바 없었다. ‘남아 있는 이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시신이 안치된 순천향병원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유족을 태운 전철연 봉고차는 마구잡이로 쌓인 철거폐기물더미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골목을 떠났다. 폐기물더미 넘어 푸른 불빛이 반짝이는 주상복합 빌딩이 철거촌을 내려다보고 있다. 용산 참사 후 162일째. 남일당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임석빈 인턴기자 zomby01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