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도 놀란 ‘감마선 폭발’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넓고 넓은 우주 어디에선가 태양이 100억 년 간 내놓는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단지 몇 초 만에 뿜어내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다. 이 현상은 ‘감마선 폭발(gamma-ray burst)’이라 불린다. 감마선 폭발에서 쏟아져 나오는 에너지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을 매일 1000조 개씩 30조 년 간 터뜨릴 때 나오는 에너지를 모두 더한 만큼에 해당한다. 감마선 폭발은 우주에서 가장 큰 폭발현상이라 할 만하다.

NASA의 스위프트 위성이 감마선 폭발을 관측하는 상상도. <NASA 제공>

NASA의 스위프트 위성이 감마선 폭발을 관측하는 상상도.

감마선 폭발은 ‘미니 빅뱅’이라 불리기도 한다. 빅뱅이라는 대폭발로 탄생한 우주에서 빅뱅 다음으로 강한 폭발현상이라는 의미다. 감마선 폭발은 1960년대 말 처음 발견된 이래 그 정체가 상당 부분 베일에 둘러싸여 있었다. 최근 이 거대한 폭발이 왜 일어나는지가 제대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감마선 폭발의 베일이 한 꺼풀 벗겨진 셈이다.

핵실험을 탐지하는 방법 중 하나가 감마선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감마선은 X선보다 에너지가 더 높으며 투과력도 더 강한 방사선으로 핵실험에서 대량으로 방출된다. 감마선 폭발은 냉전시대 와중이던 1960년대 우연히 발견됐다.

1960년대 냉전시대 와중 우연히 발견

당시 미국과 러시아는 상대가 핵무기를 개발하는가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관련 정보를 입수하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1969년 미국은 러시아의 비밀 핵실험을 감시하기 위해 감마선 측정위성 ‘벨라’를 쏘아 올렸다. 뜻밖에도 이 위성은 지구 표면이 아니라 우주에서 오는 강력한 감마선을 포착했다. 감마선 폭발을 처음 관측한 것이다. 당시 과학자들은 그 정체를 규명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단지 우주에서 감마선 폭발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1973년 미국 천문학회지에 발표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감마선 폭발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시기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콤프턴 우주망원경을 지구 궤도에 올린 1991년이다. 콤프턴 우주망원경은 2000년 수명을 다할 때까지 2700건에 이르는 감마선 폭발 현상을 관측했다. 분석 결과 감마선 폭발이 하늘의 모든 방향에서 골고루 발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감마선 폭발이 우리 은하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뜻한다.

그 뒤 과학자들은 감마선 폭발이 대부분 아주 먼 우주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렇게 멀리서 강력한 감마선을 낸다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폭발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감마선 폭발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났다가 사라져 여전히 그 정체를 알아내기 힘들었다.

스위프트 위성의 핵심장치 ‘코드화된 구경 마스크’. 우주 감마선이 이 장치를 통과해 들어오면 감마선 폭발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

스위프트 위성의 핵심장치 ‘코드화된 구경 마스크’. 우주 감마선이 이 장치를 통과해 들어오면 감마선 폭발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

현재는 NASA의 스위프트 위성이 감마선 폭발의 정체를 밝히려고 애쓰고 있다. 스위프트는 NASA가 2004년 11월에 발사한 우주 감마선관측용 최첨단 위성이다. 감마선 폭발이 나타나면 잽싸게 방향을 틀어 폭발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게 스위프트의 장점이다. 이 위치는 지상의 망원경들에 전달돼 감마선 폭발을 계속 추적한다. 감마선 폭발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지상과 우주에서 합동작전을 펼치는 셈이다.

그렇다면 감마선 폭발이라는 이 엄청난 현상이 왜 일어날까. 천문학자들은 질량이 태양보다 20배 이상 무거운 별이 최후를 맞이하며 폭발할 때 중심에 블랙홀이란 괴물이 탄생하면서 감마선 폭발이 일어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 동안은 블랙홀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내뿜은 물질(제트)에서 강력한 감마선이 나온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미국 텍사스대 포완 쿠마르 교수팀이 블랙홀 주변의 물질이 아니라 강력한 자기장이 감마선 폭발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를 영국왕립천문학회지(MNRAS) 3월호에 발표했다. 이는 스위프트 위성이 2005년 1월부터 2006년 5월 사이에 관측한 감마선 폭발 10개의 자료를 분석한 성과다.

오르도비스기 대멸종의 원인인 듯

쿠마르 교수팀은 감마선 폭발을 일으킨 원천이 블랙홀에서 100억㎞쯤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는데, 이는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100배나 더 먼 위치라고 한다. 쿠마르 교수는 “이 증거는 감마선 폭발이 단순히 물질 분출 때문이 아니라 강한 자기장에 의한 분출 때문에 발생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우주에서 일어난 감마선 폭발이 지구를 덮치는 상상도. 4억5000만 년 전 지구 생물의 대멸종이 감마선 폭발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NASA 제공>

우주에서 일어난 감마선 폭발이 지구를 덮치는 상상도. 4억5000만 년 전 지구 생물의 대멸종이 감마선 폭발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연구팀은 감마선 폭발이 태양 흑점 주변의 자기장에서 일어나는 플레어 폭발과 비슷하지만 이보다 100만~1조 배나 더 강하다고 밝혔다. 태양의 플레어 폭발 때문에 지구에서는 단파통신이 두절되거나 지구 궤도의 인공위성 또는 지상 발전소가 고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감마선 폭발처럼 강한 폭발이 지구를 덮친다면 그 영향은 어떨까. 만일 감마선 폭발이 우리 은하 중심부에서 일어난다면 현재 지상에서 받는 자연방사능 속의 감마선보다 수억 배 이상 많은 감마선이 몇 초에서 몇 분 동안 지구에 쏟아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구 생물체가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중론이다.

2004년 1월 미국천문학회에서 미국 캔자스대 에이드리언 멜롯 박사팀은 ‘오르도비스기 대멸종’의 원인을 우리 은하에서 나타났던 감마선 폭발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오르도비스기 대멸종은 4억5000만 년 전 당시 지구에 번성하던 생물종의 3분의 2가 갑작스럽게 멸종한 사건으로 그 원인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멜롯 박사팀은 지구에서 1만 광년 이내의 거리에서 감마선 폭발이 발생할 때 나온 감마선이 단지 10초 간 지구를 강타한다면 오존층의 절반까지 파괴할 수 있다고 계산해냈다. 그 결과 태양의 자외선이 그대로 지표에 도달해 생명체의 상당수를 몰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지구에 위협적인 감마선 폭발이 수십억 년에 한 번꼴로 나타날 수 있다고 추정하면서 오르도비스 대멸종이 감마선 폭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지금 관측되는 감마선 폭발은 대부분 수십억 광년 떨어져 있어 우리 은하에서 벌어지는 감마선 폭발과는 상황이 다르다. 또 지구 주변에서 감마선 폭발을 일으킬 만한 무거운 별은 수명이 태양보다 수백분의 1이나 짧아 현재 대부분 사라진 상태라는 의견이 대세다. 어느 날 갑자기 우주에서 감마선이 지구를 습격해 인류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한 셈이다.

이충환〈과학동아 부편집장〉 cosmos@donga.com

과학이야기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