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부는 ‘오쿠다 히데오 열풍’

일본 인기작가 시리즈 소설 한국서 연극 ‘닥터 이라부’로 만들어져

40세라는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데뷔했지만, 나오키상을 수상하면서 최고의 인기 소설가로 급부상한 오쿠다 히데오.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잘생기거나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단점투성이다. ‘엄마’의 성화를 못이겨 결혼하긴 했지만 3개월 만에 이혼한 마마보이고, 겉보기에는 40대쯤으로 보이는, ‘투실투실’ 살이 오른 비호감 외모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의 ‘빽’으로 쉰내 나는 지하층에 신경정신과 병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환자에게 주사만 놓는 이상한 의사다. 또한 주사 맞는 환자를 보면서 흥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변태다. 주사를 놓는 간호사 마유미는 하얀 미니가운을 입고, 가슴계곡이 확연하게 보이는 옷을 입는다. 병원이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이상한 분위기다.

‘공중그네’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

하지만 환자들은 비호감 이라부를 찾아오고 주사를 맞는다. 야쿠자, 모델, 서커스단원, 야구선수, 야구 구단주, 발기지속증을 앓고 있는 회사원, 심지어 정신과 의사까지 이라부를 찾는다. 치료라고 해봐야 주사 한 방이지만, 환자들은 자신들을 괴롭혀오던 증상을 자연스럽게 이겨낸다. 바로 이라부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치료법 때문이다. 그의 치료법은 세상의 질서를 절대 지키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환자들은 처음에는 이라부를 ‘미친 정신과 의사’라고 생각하지만, 치료를 받으면서 이라부에 동화된다.

물론 이라부는 현실 속의 인물이 아니다. 이라부는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만든 소설 속 인물이다. ‘공중그네’(2005, 은행나무)를 시작으로 ‘인더풀’(2005, 은행나무) ‘면장선거’(2007, 은행나무)까지 이라부 시리즈라고 부르는 소설 속에서 이라부는 항상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환자를 치료한다. 소설의 인기는 공연계로 퍼져 ‘닥터 이라부’(2008년 1월 13일까지, 상상화이트 소극장)라는 연극까지 상연되고 있다.

오쿠다 히데오는 ‘공중그네’를 통해서 한국에 처음 소개됐다. 이라부의 황당한 치료법을 읽으면서 독자는 웃었고 통쾌함을 느꼈다. 작가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공중그네’의 판매량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쿠다 히데오를 한국에 처음 소개한 출판사 은행나무 이진희 부장은 “일본 소설을 소개할 때 기준으로 삼는 상이 아쿠다가와상과 나오키상이다”라면서 “일본 에이전시 측에서 나오키상 후보작이었던 ‘공중그네’를 소개해줬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내게 됐다”고 설명한다. ‘공중그네’는 10월 현재 55만 부 이상이 팔렸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공중그네’는 여성 독자보다 남성 독자가 더 많았다. 일본 소설의 주독자층이 20대 여성이라는 상식을 처음으로 깬 일본 작가인 셈이다.
연극 ‘닥터 이라부’도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번 공연의 극작과 연출을 맡은 김동연씨는 “그의 작품에는 재미와 함께 페이소스가 있다”면서 “‘공중그네’와 ‘인더풀’에서 우리도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 3개를 무대에 올렸다”고 설명한다. 공연을 준비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주인공 이라부의 캐스팅이었다. 연기력뿐 아니라 비호감 외모까지 갖춰야 하고, 거기다 아무리 이상한 짓을 해도 밉지 않은 따스한 성격까지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공중그네’의 성공은 오쿠다 히데오의 열풍을 불러왔다. ‘공중그네’ 이후에 ‘내 인생, 니가 알아’(원제 ‘라라피포’, 2006, 노마드북스) ‘남쪽으로 튀어’(2006, 은행나무) ‘오!수다’(2007, 지니북스) ‘걸’(2006, 북스토리) ‘마돈나’(2007, 북스토리) ‘한밤중에 행진’(2007, 재인) 등이 연달아서 번역, 출간됐다. 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판권료도 상당히 올랐다는 후문이다.

한국 독자는 왜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에 빠지는 것일까. 이라부가 나오는 작품을 포함해 작품 속 인물은 대부분 사회 부적응자다. 사회에서 보면 절대 쓸모없을 것 같고, 실수투성이 인물이다. 1루로 송구를 못하게 된 유명한 3루수,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전공투(전학공투회의의 줄임말로 1960~ 70년대의 일본학생운동) 세대의 아버지, 포르노를 같이 찍는 어머니와 딸, 명문 대학을 나온 천재지만 회사에서는 무능력한 직원으로 찍힌 젊은 청년, 공중그네를 못 타게 된 서커스 단원 등 결점투성이 인물이 주인공이다. 언뜻 생각하면 그의 소설은 무겁고 칙칙할 것만 같다.

등장인물 침울한 상황서 웃음 유발

하지만 그의 소설은 쉽고 재미있다. 인물들이 처한 무겁고 침울한 상황도 웃음을 유발한다.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인 양억관씨는 “이 사람의 작품을 읽어보면 상황은 매우 절망적인데, 절대로 끈끈하거나 눅진하지 않다. 오히려 경쾌할 정도다”라면서 “작가는 심각한 세상이야기를 해도 재미를 놓치지 않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좌충우돌 못말리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를 소재로 한 연극 '닥터 이라부'도 젊은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씨 역시 “그는 심각하고 진지한 상황에서도 유머스럽게 만드는 작가”라면서 “개인에게는 무기력한 사회지만, 언젠가는 저항하는 인물들이 나올 것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남쪽으로 튀어’라는 작품은 고도화된 사회에서 개인이 겪는 무기력한 상황이 잘 드러난다”면서 “하지만 작가는 그것을 비트는 방식을 취하고, 독자들은 작품을 웃으면서 읽지만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또한 그의 소설은 대부분 행복하게 끝난다. 반전의 묘미가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결말까지 이끌어나가는 구성력은 완성도가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은행나무 이진희 부장은 “삶의 고통과 심각함을 가벼운 터치로 그려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은 일본과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지만, 정작 작가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오쿠다 히데오는 일본 내에서도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기인작가’로 꼽힌다. 그의 책을 번역한 한국 출판사에서 수없이 인터뷰와 한국 방문을 요청했지만 한 번도 응한 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일본에서 TV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들이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판권을 사려는 회사가 많다고 알려졌다.

오쿠다 히데오는 1959년 기후현에서 출생했고, 잡지 편집자, 카피라이터, 방송사 구성작가 등의 직업을 거쳤고, 1998년 마흔 살의 나이에 ‘우람바나의 숲’으로 데뷔했다. 2002년 ‘방해’로 제4회 오야부 하루히코상을 받았고, 2004년에는 ‘공중그네’로 제131회 나오키상을 수상하면서 요즘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