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소리 없이 인기 끄는 영화 ‘아임 낫 데어‘

6명의 주인공 통해 밥 딜런의 다양한 삶 보여줘

영화 ‘엘리자베스’ ‘에비에이터’ ‘골든 에이지’ 등의 작품으로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를 수상한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은 뉴 포트 포크 음악 페스티벌과 영국 투어에 참가했던 시기의 밥 딜런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줬다. 여배우가 남자 역할을 맡았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은 연기력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딜런은 1960년대를 풍미한 민중가수다. 시민권 운동에 동참했고,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에도 참가했다. 인종 차별과 전쟁을 반대한 그 세대의 분노를 딜런만큼 강력하게 표현한 목소리나 가수는 없었다. 그는 지배계급을 향한 분노를 노랫말과 음률로 드러낸 천재였다. 그가 쏟아낸 노랫말은 오늘날에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 중에서)

밥 딜런(Bob Dylan, 본명은 Robert Allen Zimmerman)은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가수다. ‘얼마나 더 많은 포탄이 터져야만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끝날까’라는 가사가 있는 ‘Blowing in the Wind’ 같은 노래로 반전운동과 인권운동을 펼쳤다. 미국의 대표적인 사회운동가 하워드 진이 극찬할 정도로 그의 노래는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그는 포크가수라는 타이틀에 머물지 않고 변화를 시작했다. 1965년 뉴 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팬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전자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Bringing It All Back Home’이라는 앨범을 만들었다. 1년 후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면서 아내와 함께 뉴욕의 우드스턱에 있는 집에서 은둔자적인 생활을 한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Blood on the Tracks’(1975) 등의 대작을 발표하고, 1979년에는 기독교적 성향이 강한 앨범 ‘Slow Train Coming’을 발표했다.

그의 활동은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2000년대까지 이어진다. 1991년에는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았고, 1997년에는 ‘Time Out of Mind’를 통해 그래미상 올해의 앨범을 수상했다. 이 음반은 블루스가 가미됐는데, 이혼과 힘든 병을 이겨낸 늙은 음악가가 생각하는 인생의 운명을 보여줬다. 2001년 영화 ‘원더 보이즈’에 삽입된 ‘Things Have Changed’로 오스카상을 받고, 2006년 65세에 발표한 ‘Modern Times’ 앨범은 빌보트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음유시인이자 반전운동가
흔히 음유시인이자 반전운동가로 알려져 있지만, 밥 딜런은 한 가지로 규명하기 힘든 변화를 거듭했다. 은둔자, 인권운동가, 시인, 포크가수 등 그는 하나의 단어로 규정할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을 시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그 말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떠돌이 곡예사일 뿐이다”(1965년 밥 딜런 인터뷰 중)라는 말처럼 그는 자신을 규정하는 논리를 반대했다. 그렇다고 자신을 대중에게 이해시키지도 않았다. 2006년 ‘롤링스톤’지와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밥 딜런이 절대로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가. 아티스트가 사람들 앞에 서는 이유는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일갈할 정도다.

6명의 배우는 밥 딜런의 변화한 삶을 보여준다. 리처드 기어는 밥 딜런의 은둔자적 모습을 빌리 역할로 이 영화에 참가했고, 우디 거스리는 아역배우 마커스 칼 프랭클린이 연기했다. 프랭클린은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기타 실력과 노래를 보여줘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영화 제작자가 밥 딜런의 신비로운 인생에 관한 작품을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그는 계속 거절해왔다. 하지만 1970년대 등장한 글램 록의 흥망을 독특하게 그린 영화 ‘벨벳 골드마인’의 토드 헤인즈 감독은 2000년 무렵에 밥 딜런의 영화를 구상했다. 그리고 기획서를 보낸 후 “무엇이든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내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라는 독특한 영화를 만들었다.

다큐멘터리 기법과 극영화를 절묘하게 섞어 놓았는데 뮤지션을 소재로 한 영화라기에는 무척 이질적이다. 영화평론가 강봉석씨가 “‘아임 낫 데어’는 언제나 세계의 중심에 존재했던, 그러나 끊임없이 어딘가를 향하여 전진했던 밥 딜런의 다양한 생애를 보여줄 것이다”라고 밝힌 것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은 6명이나 된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애초부터 딜런에 관한 영화는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복합적인 초상화가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면서 “이 영화의 진짜 주제는 그의 정신세계다”라고 말했다.

다큐멘터리·극영화 절묘한 조화
뉴 포트 포크 페스티벌과 영국 투어에 참가했던 시기의 밥 딜런의 모습을 보여준 ‘쥬드’ 역은 케이트 블란쳇이 맡았다. ‘골든 에이지’에서 다면적인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습을 보여준 블란쳇은 이 영화에서 밥 딜런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줬다는 평을 받는다. 의도적인 은둔자 밥 딜런을 보여주는 ‘빌리’ 역은 리처드 기어가 맡았다. 빌리는 미국의 전설적 총잡이인 ‘빌리 더 키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관계의 종말’에서 따온 것이다. 빌리 더 키드를 영웅처럼 생각했던 밥 딜런은 ‘관계의 종말’ 음악을 전부 맡으며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의 모습을 한 ‘아서’ 역은 벤 위쇼가 맡았다. 1960년대 밥 딜런이 로버트 존슨의 작곡을 배웠는데, 그것을 이해하는 데 랭보의 시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아임 낫 데어’가 유작이 된 배우 히스 레저는 ‘로비’ 역할을 맡았다. 영화 속에서 한 포크가수는 활동을 멈추고 잠적하는데,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 로비는 성공한 유명인 밥 딜런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크리스찬 베일은 ‘잭’과 ‘존’ 역할을 맡았다. 영화 속에서 잭은 반전과 인권을 말하던 1960년대 밥 딜런의 모습이다. 말년에 가스펠 음반을 발표한 밥 딜런은 존의 모습이다. 밥 딜런이 음악적 스승이라고 인정한 기타리스트 ‘우디 거스리’는 아역배우 마커스 칼 프랭클린이 깜찍하게 보여준다. 어린 나이임에도 프랭클린은 영화 속에서 현란한 기타 솜씨와 뛰어난 노래 솜씨를 보여준다.

평론가들은 대체적으로 이 영화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한 예술가를 이렇게 깊이 다룬 극영화가 오랜만이다” “창조적 우상 파괴의 진수를 보여주는 걸작” 등의 좋은 평이 대부분이다. 뮤지션을 다루면서 보통의 영화 스타일을 뒤집고, 시간과 인물 공간을 새롭게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밥 딜런을 모르면 영화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평도 있다. 정이창 문화평론가는 “연대적 순서를 따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물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영화를 따라가기가 만만치 않은 건 사실이다”라고 평한다.

관람객들의 반응도 극과 극이다. “모두 밥 딜런이 되었던 영화, 정말 좋았다” “철학적인 노래처럼 삶도 그렇게, 배우들의 열연이 멋지다” 등의 좋은 평가와 “밥 딜런의 삶이 아니라 생각을 표현한 영화다. 개인적으로 너무 어려웠다” 등의 평가가 함께 나오고 있다. 공통적인 것은 밥 딜런의 생애와 음악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면 영화를 훨씬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135분 동안 59곡이나 되는 밥 딜런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이 영화가 지닌 또 다른 매력이다.
‘아임 낫 데어’는 지난 5월 29일 전국 8개관에서 개봉했다. 개봉 3주차 현재 관객은 1만2000여 명이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