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홍대앞 하루는 어떻게 뜨고 지는가

2008·2009년 9월 첫째주 토요일 24시간 사진으로 기록

"기하가 홍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이라는 식으로 TV와 신문을 장식할 때(기하 잘못은 아니지만) 그보다 오래 홍대를 종횡해 온 밴드들은 조금 어이없어 했을지 모른다. 사실 기하는 정통 홍대 뮤지션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긴 하다.

‘홍대의 하루’를 기록한 이강빈(위쪽), 김홍희, 박철중, 성남훈(아래 왼쪽부터)의 사진들.

그러나 ‘드럭(drug)’ 출신이면 정통이란 말인가? 크라잉넛 형들은 본적이 홍대로 되어 있기라도 한가? 일찍 오고 늦게 온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모두가 굴러온 돌에 불과하지 않은가. 예전에 본 미드(미국드라마)의 대사가 떠오른다. 양식장이 천연 어종을 말살시킨다고 환경운동단체의 변호사가 고발하자 반대편 변호사가 외친다. ‘양식장이 뭐 어쨌다고요. 솔직히 말해 우리 아메리카 자체가 거대한 양식 어장 아닙니까!’ 홍대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이곳 전부가 한국에서는 키우기 힘든 종들을 재배하는 양식장인지도 모른다.”(김남훈, 밴드 ‘눈뜨고 코베인’ 기타리스트)

홍익대 앞이 문화적 해방구로 떠오른 건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과감하고 세련된 옷차림의 젊은이들이 특색 있는 간판과 노점상으로 들어찬 거리를 활보하고, 주인 취향대로 독특하게 꾸민 카페와 옷·장신구 가게가 즐비하며, 밤이 되면 인디밴드의 공연이 펼쳐지거나 테크노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는 클럽의 불이 하나씩 켜지는 곳. 반면에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임대료가 오르면서 홍익대 앞의 고유한 인디문화가 사라진다는 우려도 많다. 많은 사람이 오늘도 홍익대 앞을 동경하며 몰려가지만 누구도 이곳의 전모를 알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홍익대 앞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KT&G 상상마당이 <홍대의 하루>란 책을 펴냈다. 2008년과 2009년 9월 첫째주 토요일, 홍익대 앞의 24시간을 사진으로 기록한 ‘원데이 샷’의 결과물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성남훈·김홍희·노순택·박철중·이강빈·허용무 등 6명의 사진작가와 36명의 상상마당 회원이 참여했다. 또 김경주(시인·무경계문화펄프연구소 ‘츄리닝바람’ 소장), 김남훈, 김종휘(하자센터 부센터장, 사회적 기업 ‘노리단’ 단장), 성기완(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 기타리스트·시인), 이진오(건축사무소 사이 공동소장), 이한주(‘요기가’ 표현 갤러리 대표) 등 홍익대 앞에 진을 치고 문화판을 확장해 온 필진이 글을 썼다.

전모를 알 수 없는 홍대문화의 다양성
김남훈에 따르면 홍대라는 영토는 홍익대 정문부터 연남동의 청기와주유소까지 내려가는 주도로를 기점으로 이스트사이드와 웨스트사이드(사실은 북동과 남서)로 나뉜다. 이스트사이드에는 라이브클럽과 삼겹살집, 웨스트사이드에는 일렉트로닉과 힙합클럽 등이 각각 들어서 있다. 카페는 이스트와 웨스트의 양쪽에 고루 분포하지만 그 문화는 약간 차이가 있다. 이스트사이드에는 인테리어 등도 주인이 직접 한 1인 경영의 작은 카페나 바가 많고, 이에 비해 웨스트사이드에는 자본이 개입된 카페와 바가 있는 편이다. 그는 홍익대 앞의 다양한 점포에 대해 “홍익대 바깥에서는 그저 이상하게만 보일 외래문화의 정체성을 안고 이리로 온 사람들이 자신이 획득한 문화 정체성에 따라 이런저런 일을 벌인다. 문화 이탈리안은 카페, 프렌치는 와인바, 라티노는 댄스클럽, 브리티시는 밴드, 중국계는 먹을거리 장사를 각각 한다”는 재미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건축가 관점에서 홍익대 앞을 바라본 이진오는 “무명의 동네 건축가와 동네 인테리어업자가 건물을 올리고 있지만 건축 환경이 좋은 곳, 건축가가 차가운 추상을 앞세워 개입하기에는 녹록하지 않은 동네, 청담동의 건물들처럼 홀로 온전하게 서서 길에 무심하지 않고 삼청동 사람들처럼 넉넉하지 못한 도로를 마주해 흘러가기를 강요받지 않고 가로수길의 상점들처럼 빈곤해서 식상하지 않은 곳”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청기와주유소에서 홍익대 정문까지 걷고 싶은 ‘디자인 서울 거리’ 조성을 위해 보도블록을 새로 깔고 간판을 정비하느라 분주한 현실에 대해 우려한다. 그래피티로 가득한 청기와주유소 지하보도를 폐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두고 가로수를 대폭 늘리는 대신 과도한 임대료 때문에 이곳을 떠나는 예술가들이 머무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주는 게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드는 방법이란 것이다.

임대료 폭등으로 떠나는 예술가들
김종휘는 자본에 휘둘리는 홍익대 앞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았다. “음악을 하거나 문학을 하거나 영상을 하는 친구들끼리 특색 있는 공간을 꾸며서 알음알음 모여들고 푼푼 장사가 좀 된다 싶으면 여지없이 보증금과 월세가 곱으로 올라서 떠야 한다. 그런 자리에는 프랜차이즈가 들어서거나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붕어빵 컨셉트로 한철 반짝장사를 하는 공간이 들어섰다가 나가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하여 홍대앞이라는 말은 비교적 반경 범위가 좁은 일대의 독특한 거리를 지칭했다가 요즘에는 무한정 넓어지면서 굳이 홍대앞이라 불러야 할 어떤 색깔의 명도도 같이 흐려진 것이다.”

성기완은 홍대앞 토박이로서 변화된 현실을 인정하고 일종의 대책을 내놓는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이렇게 지저분하지도, 이렇게 늦게 춤추지도, 이렇게 외국인이 많지도 않았던 홍익대 앞이 변한 건 2002년 무렵”이라고 주장한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몰려나옴’이 사람들에게 체화되고, 그렇게 몰려나올 곳은 홍익대 앞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누구나 한번 꽉 조여진 마음의 나사를 풀기 위해 가봐야 하고, 갈 수밖에 없고, 또 쉽게 갈 수 있는 젊은이들의 명소”로 발전한 홍익대 앞의 대중을 수용하고, 순전히 장사만을 목적으로 하는 장사꾼을 인정하면서도 뭔가 색다른 것을 해 보고 싶어서 장사를 하는 문화장사꾼을 보호하기 위해 그는 가치있는 공간을 칭찬하는 것과 문화장사꾼들 사이의 자발적 네트워크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