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나를 찾는 길’ 찾아 해외명상체험

볼거리 관광 대신 다양한 주제로 마음닦는 테마여행 인기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여행은 하나의 돌파구다. 평소 자신을 얽매고 있던 환경과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삶을 돌아보고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라 밖으로 훌쩍 떠나는 여행은 생활인들의 꿈이 되고 있다. 과거 관광 위주의 해외여행도 차츰 변하는 추세다. 문화유적 답사, 역사기행, 먹거리 여행 등으로 여행의 주제가 다양해졌다. 요즘 눈에 띄게 늘고 있는 여행의 주제는 명상. 길 위에서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서양인 여행자들이 인도에서 명상여행을 하고 있다.

명상이 여행상품화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실크로드여행사 이상원 대표는 “볼거리 위주의 여행은 한계에 이르게 됐다. 여행사에서 차별화된 여행상품을 개발하는데 문화유적답사, 역사기행, 음식기행 등을 거쳐 이제는 명상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명상여행은 종교 유적지를 찾아 떠나는 성지순례와는 분명히 다르다. 특정 종교에 종속되기보다 보편적인 종교 경험과 신비의 체험, 그리고 자신을 깊이 아는 경험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종교적 속박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초창기 명상에 관심을 갖는 이들 몇몇이 스승과 명상처를 찾아 나서면서 시작된 해외 명상여행 바람은 이제는 주제별·지역별 확산을 거쳐 다양한 명상여행상품으로 개발, 소개되고 있다.

인도 라즈니쉬 수행공동체 명소로
아직까지 가장 많은 이들이 떠나는 명상 여행처는 인도. 초기에는 인도에서도 라즈니쉬 수행단체가 있는 마하쉬트라주의 푸네와 슈리 오로빈도의 수행공동체가 있는 폰디췌리로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 전세계에서 명상인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류시화·홍신자·석지현씨 등에 의해 국내에 소개 된 이후 라즈니쉬와 오로빈도를 추종하는 단체에서 연례적으로 여행객을 모집하고 있다. 국내 명상여행 바람이 시작된 곳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푸네의 라즈니쉬 아쉬람의 특징은 잘 갖춰진 숙소와 다양한 명상프로그램이다. 초심자부터 전문 수행자까지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코스가 마련되어 있고, 범세계적인 문화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그야말로 뷔페식 호텔 식단을 연상케 하는 화려함이 있다. 폰디췌리의 슈리 오로빈도 공동체는 훨씬 세련되고 차분한 분위기로 사람들을 맞는다. 매년 인도로 명상여행을 떠난다는 박희원씨는 이 두 곳의 경험을 이렇게 설명한다. “명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를 때 찾아갔던 곳이다. 여행정보가 가장 많은 곳이다. 인도보다는 유럽 분위기가 더 짙었다. 세계 곳곳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수행체험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다. 명상여행을 시작하는 곳으로는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인도는 곳곳에 수행처인 아쉬람이 있어서 자신이 준비만 되어 있다면 어느 곳을 가서도 명상을 체험할 수 있다.”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인도의 명상지는 남인도의 아루나찰레 스와르 사원. 그곳의 스승인 라마나 마하리시의 이름을 따서 마하리시 아쉬람으로 불리는 곳이다. 인도의 토속적인 순박한 분위기가 물씬하고 고요한 시골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편안한 곳이라는 평이다. 라마나 마하리시는 “명상이란 자신을 똑바로 아는 길이다. 자기 자신을 살피는 일이야 말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라고 가르친다. 그는 ‘난야르,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소개됐다. 국내에도 수행단체가 구성되어 있고 수행자들은 매년 수차례 아루나첼레 스와르 사원으로 명상여행을 떠나고 있다.

인도 뉴델리의 타마나 크리슈나 아쉬람.

명상여행에 관심있는 초보자라면 여행사에서 마련한 명상여행코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도 전문여행사인 인도소풍(indiadream.net), 인도로 가는 길(india.co.kr), 실크로드 여행사(silkroadtour.co.kr) 등에서 인도 명상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여행사를 통하면 큰 준비 없이 명상과 여행을 함께 체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좀 더 익숙해지면 인터넷을 통해 인도명상센터의 정보를 찾고, 인터넷 명상 카페 등에서 동호인과 함께 자유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초창기 인도의 주요 명상처를 중심으로 소개된 명상여행도 점차 다양한 수요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장소 위주의 여행에서 벗어나 경험과 프로그램 위주의 여행이 도입된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남방불교의 수행법인 위파사나 명상 수행코스다. 대표적으로 미얀마의 위파사나 명상센터가 있다. 수도 양곤의 마하시 명상센터와 북부지역의 쉐우민 명상센터 등이 유명하다. 3일에서부터 30일까지 각자 자신에 맞는 일정을 선택하면 나머지는 명상센터에서 철저하게 지도해준다. 1980년대 서양인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얀마의 명상센터들은 최근 국내에도 호두마을, 보리수마을 등 수행단체에서 연례적으로 찾아가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동호회 등에서 함께 떠나는 여행코스가 있고, 대형여행사도 최근 들어 미얀마 명상여행상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미얀마의 매력은 황금탑으로 국토를 메운 종교적 분위기와 명상센터의 고요함이다. 명상센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세속의 모든 근심과 욕망을 내려놓고 마음속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하게 된다. 위파사나 명상은 일부 정신과 의사들이 불면증, 스트레스, 우울증에 대한 처방요법으로 권할 정도로 그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 미얀마의 명상센터들은 오랜 기간 최적화된 교습법으로 명상을 지도한다.

미얀마 위파사나 명상센터 눈길
몇 년째 미얀마로 명상여행을 떠나고 있는 정상구씨는 그 매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처음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막막한 마음에 찾은 곳이 미얀마의 명상센터였다. 화도 나고 술만 마시다 보니 폐인이 될 것 같았다. 곁에서 보다 못한 지인의 소개로 미얀마로 떠났다. 현실도피의 심정으로 갔었는데, 정말 나의 내면을 돌아보는 기회가 됐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분명히 알게 됐고 고치려는 노력도 할 수 있게 됐다. 5년째 여름 휴가를 미얀마 명상여행으로 대신한다.” 여행과 심신의 치유를 함께 경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명상센터를 소개하고 여행 일정을 대행해주는 여행상품 외에도 철저히 명상을 상품으로 파는 곳도 있다. 주로 명상단체를 표방하는 곳에서 과정의 일부에 여행을 필수코스로 넣어둔 것이다. 해외에 있는 자신들의 단체를 방문하는 과정과 세미나 일정에 여행을 결합시켜두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다양한 장소와 과정을 소개한다. 대개 상급자 과정으로 올라가거나 지도자 자격을 따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코스이다. 명상과 여행, 교육을 결합하여 상품화한 것이다. 정신적 진전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긍정적인 면과 철저한 상업성이라는 부정적 측면을 함께 갖고 있다. 경험자들은 선전과 광고를 너무 믿지 말라고 충고한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 명상학과 정준영 교수의 설명이다. “명상이 상품화되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 대중과 만날 수 있는 폭이 그만큼 넓어지기 때문이다.

여행상품과 결합되는 것도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명상여행을 떠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거나 정신적 성숙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생각도 위험하다. 남의 길을 무조건 따라 걷지 않는 것이 여행과 명상의 공통점이다.” 명상은 개인적인 것이고 자발적인 체험이며 정신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누군가에 의해 그 효과가 증폭되는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명상여행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길’을 찾아 홀로 떠나는 여행. 그 중에서도 스페인의 도시 카미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목적지인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국내에서도 매년 수천 명이 찾아나서는 곳이다. 예수님의 제자인 야곱이 선교를 위해 홀로 걸었던 길에서 유래한 이 길은 종교를 떠나 자신과 만나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의 성지가 되었다.

티베트 카일라스산에선 심신정화
그 길의 종교성이 성스러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길을 나선 사람들의 지친 마음과 삶의 해답을 갈구하는 절박한 심정이 구원을 주는 것이다. 길을 걷는 일은 인생처럼 고난과 역정의 연속이고, 우리는 걸어가고 살아가는 일 자체에서 이미 그 해법을 얻고 있다.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은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걷는다. 어떤 이에게는 한 달, 누군가는 두 달 넘게 걷는 길이다. 최근에는 여행상품까지 등장했다.

티베트 카일라스로 가는길. |실크로드 여행사

5년 전부터 산티아고로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김대현씨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방송에서 우연히 산티아고를 향해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모두가 지치고 힘든 얼굴이지만 한 없이 맑고 행복해 보였다. 집에서나 일터에서 너무나 힘들 때 그 모습들을 떠올려 본다. 나도 그 길을 걷겠다는 바람이 요즘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 그 길의 고난 속에서 자신을 확인해보고 싶다는 바람이다.

영혼의 순례길로 유명한 또 다른 곳은 티베트의 카일라스로 가는 길이다. 티베트 내륙 깊숙이 자리잡은 신들의 산, 세계와 정신의 중심지, 인도사람들이 우주의 중심으로 꼽던 수미산이 카일라스 산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평생 한 번이라도 그 산을 참배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세 걸음 걷고 온 몸을 숙여 절을 하며 몇 년이 걸려도 영혼의 산 카일라스를 찾아간다. 소설가 박범신씨는 카일라스를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카일라스를 다녀온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마음의 정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차를 타고 가도 20일에서 한 달 남짓 걸리는 긴 여정. 해발 6000m 이상 황량한 고산의 사막에서 자신을 볼 수 없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길을 나서느냐고 반문한다.

올 여름 여행사의 명상여행상품을 통해 카일라스를 다녀온 김미숙씨는 그 경험을 이렇게 설명했다. “힘겨웠기 때문에 너무나 아름다웠다. 보이는 모든 것이 지상의 풍경이 아닌 듯 낯설었다. 심지어 그 길을 가는 나 자신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자신의 영혼의 무게를 느껴보고 싶다면 주저 없이 카일라스를 향해 여행해보라. 돌아오면 세속의 것들을 조금 더 신성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여행 내내 눈을 사로잡는 고산의 아름다움과 때때로 다가오는 육체의 한계를 통해 삶의 고난을 뼈저리게 절감할 수 있었기에 살아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가치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100여년 전 역경을 딛고 티베트를 여행했던 작가 알렉산드라 다윗 넬은 “삶은 여행이다. 그 속에서 좀 더 깊이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이는 행복하다”고 했다. 지친 자신에게 힘을 주는 여행. 여행전문가들은 모든 여행이 값진 경험을 주겠지만 자신과 만나는 명상여행은 더할 수 없는 귀한 시간을 만들어준다고 강조한다. 지치고 힘들 때면 명상여행의 계획이라도 세워보자. 떠날 수 없이 매인 몸이라도 잠시나마 영혼이 가벼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글·김천<종교전문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사진·실크로드 여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