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토머스 게이건 지음·한상연 옮김· 부키·1만5000원
미국인들의 미국 중심주의에 대해 말하는 것은 김 빠진 콜라는 맛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중언부언이고 하나마나한 소리다.
하버드대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1975년 변호사계에 입문한 공익 변호사 토머스 게이건도 한때는 그랬다. 대학생 시절 게이건의 눈에 비친 유럽 청년들은 안쓰러운 존재였다. 그 시절 게이건은 “역사의 주인공 역할은 오직 우리 미국의 것”이고 “파리에서 자라는 아이가 대체 무슨 꿈을 꿀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그의 친구는 유럽에 다녀온 후 이렇게 말했다.
“차들의 매연 때문에 목이 아팠어. 어떤 곳에서는 아직도 손으로 돌리는 전화기를 쓴대.” 하지만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비틀거리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젠 유럽이다.
모든 유럽은 아니다. 프랑스도 아니고 스웨덴도 아니다. 게이건은 미국이 독일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게이건은 독일이어야만 하는 이유로 모두 다섯 가지를 꼽고 있는데, 그 중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독일이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유일한 나라”라는 사실이다.
독일식 사회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세 가지 기둥이 있다. 직장평의회, 노사 공동결정, 지역별 임금결정제도다. 직장평의회 위원은 동료 노동자들이 선출한다. 미국 노조 지도부도 선출로 뽑히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독일 직장평의회 위원은 근무조건만이 아니라 해고 결정에도 참여한다. 경영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다. 중요한 결정은 노사가 공동으로 한다. 독일 기업 이사회 이사의 절반은 노동자가 차지한다. 물론 모든 것이 노동자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동자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경영자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지역별 임금결정제도는 사업장을 불문하고 일정 지역 내에서 동일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모든 임금을 동일하게 지급하도록 한다. 특정 사업장 소유주나 경영자가 자기 회사 노동자들을 포섭하거나 겁박해봐야 소용없다는 뜻이다.
독일 사민주의의 세 기둥은 미국보다 여유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냈다. “독일인은 미국인보다 공공재의 혜택을 훨씬 더 많이 누린다.” 민간기업이 공공재의 분배에 개입해 폭리를 취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독일에서는 인적자본이 금융자본보다 우위에 있다.” 무능한 경영자가 천문학적 보너스를 받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독일 모델은 미국 세계화주의자들의 뒤통수를 친다. 노동비용이 낮은 나라가 경쟁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시간당 보수가 높은 나라가 경쟁에서 이긴다. 대학 진학률을 높여야 경쟁력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의사결정 과정에 끌어들어야 경쟁력이 강해진다.
저자의 독일 모델 옹호가 건조한 통계와 이론의 뒤범벅으로 이뤄져 있지 않다는 것은 이 책의 커다란 장점이다. 저자는 1부에서 독일 모델의 특징을 요약한 후 2부에서는 네 차례 독일 체류 경험을 여행기 형식으로 풀어놓는다. 세계적인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을 연상케 하는 저자의 유머감각은 자칫 따분한 사회학 책이 될 수도 있었을 이 책에 감칠맛을 불어넣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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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커지는 채 상병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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