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불신받는 법률가는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대한민국 사법제도는 불신의 대상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국운 한동대 교수(법학)는 크게 역사, 공간, 정치라는 변수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모색한다.

저자가 우선 주목하는 것은 1945년 8월 이후 해방공간에서 사법기구가 재편된 과정이다. 해방 직후 조선은 법률가들의 일시적 공백상태를 맞았다. 미군이 들어오면서 일본인 법률가들은 사실상 직무가 정지됐는데, 그 공백을 채울 조선인 법률가들의 수가 부족했던 탓이다. 이 때문에 조선인 법률가들은 사법기구 재편을 주도한 미군정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했다. 그 결과 고등고시에 합격한 제한된 숫자의 조선인 법률가들이 사법권을 배타적으로 점유하는 구도가 형성됐다.

법률가의 탄생
이국운 지음·후마니타스·1만5000원

저자는 “법률가 집단의 새로운 구성원이 공식·비공식의 직업교육을 통해 법률가로서 자기 정체성을 획득해가는 과정”을 ‘법조 사회화’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군법무관 시기이다. 법무관들은 군대라는 엄격한 위계적 조직에서 상대적 자율성을 누리는 특권집단에 속하지만 소수의 폐쇄된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동안 다양한 부작용이 생긴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그 부작용 중 가장 심각한 것은 기존 법률가 집단의 질서에 대한 순응적 태도가 배양된다는 점이다. “군대 내 사법기관 주변의 소규모 법조공동체는 고립과 체념이라는 청년 법관들의 실존적 조건을 이용해 기성 법률가 집단의 문화적 특징과 행위 코드를 신참 법률가들에게 전수하는 결정적인 장이다.”

지역사회에서 법조인이 차지하는 위상은 어떨까. 저자는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의 소재지인 포항지역 법조인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지역사회에서 법률가들은 지역사회와 괴리돼 있다. 이들에게 지역은 ‘본거지’인 수도권으로 돌아가기 위한 징검다리일 뿐이다.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린 법률가들도 변호사사무실과 법정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만 지역주민들과 접촉할 뿐이다. “포항에서 법률가요? 귀족이죠. 한마디로 귀족들이에요!”라는 이 지역의 한 시민운동가의 말은 이러한 사정을 간명하게 요약한다.

신간 탐색

저자에 따르면 한국의 사법은 오랫동안 ‘강한 국가-약한 사법’의 체제였다. 이 체제에서는 권력 엘리트들이 사법 관료보다 우위에 있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사법기구의 위상 강화가 두드러졌다. 헌법재판소의 위상 강화가 이런 흐름을 대표한다. 그러나 저자는 ‘강한 사법’을 주장하는 논리는 변형된 시장주의 논리일 뿐이라며, 사법의 민주화와 분권화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모델이라고 말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