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아까운 책]극좌 폭력 집단 ‘인간’에 대한 이해

책 편집에 발을 담근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말을 들었다. “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이야기에 관심이 없어.” 외서 기획 이야기가 나오면 곧잘 따라붙는 말이었다.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잘 안다고 생각해서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그렇게까지 잘 알 필요가 없어 보여서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잘 안다고 생각하는’ 주제와 ‘그렇게까지 잘 알 필요가 없어 보이는’ 주제 사이에 틈이 있지 않을까? 들어는 봤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것. 아주 모르진 않지만 남에게 안다고 말할 만큼은 알지 못하는 것. ‘적군파’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가려운 구석’일 거라고 생각했다.

<적군파>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지음 임정은 옮김 | 교양인 | 1만6000원

적군파는 일본 사회에 깊은 충격을 남긴 급진 학생운동 조직이다. 1972년 연합적군 숙청이라고 알려진 동지 살해를 범해 당대의 일본 학생운동에 치명적 타격을 입혔다. 북한에 혁명 기지를 건설하겠다며 일본 최초로 비행기를 납치해 평양으로 떠났고, 세계 각지에서 테러를 벌이며 21세기까지 존속했다. ‘극좌 폭력 집단’의 대명사로서 홍위병 다음 가는 인지도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조직의 정체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서 왜 지금까지 입에 오르내리는 것인지 공적 지면에서 상세히 설명한 글은 한국에서 본 적이 없었다. 더 알고 싶어도 참고할 만한 한국어 자료가 전무한 실정이었다.

연합적군 숙청이 밝혀진 후 40년간 일본에서는 적군파 관련서가 수없이 나왔다. 그 중에서 한국에 적군파를 소개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책이 미국 사회학자 퍼트리샤 스테인호프가 쓴 <적군파>다. 적군파를 낳은 시대 상황을 일본인이 아닌 독자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을 뿐 아니라, 객관적이고 신중한 태도로 적군파라는 조직 안의 ‘인간’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인상 깊었다. 저자는 적군파가 저지른 가장 충격적 참사인 연합적군 숙청을 중심에 두고, 적군파의 궤적을 탄생부터 소멸까지 추적한다. 동지 살해에 가담한 적군파 멤버들이 여느 또래와 같은 평범한 청년이었음을 지적하면서, 보통 청년들이 보편적 심리 경로를 거쳐 스스로 판 함정에 빠져드는 과정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적군파>는 출간 뒤 호의적 평가를 받았지만 많은 책이 그렇듯 편집자의 욕심만큼은 주목받지 못했다. 왜 그런지 고민하다 문득 책을 기획하던 지점으로 되돌아갔다. 적군파를 ‘가려운 구석’이라고 느끼려면 그들을 선뜻 이해했다고 생각할 수 없어야 한다. 반면 뻔한 존재라 더 이해하려 애쓸 필요가 없는 철부지들, 또는 애초에 이해 불가능한 비상식적 광인 집단이라고 본다면 적군파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분류가 끝나면 탐구도 끝난다. 누군가는 그렇게 여길 수 있겠다는 억측 아닌 억측을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사실 적군파라는 주제를 ‘가려운 구석’으로 느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적군파를 처음 알았을 때 나는 연합적군 숙청 참가자들의 평균 연령인 스물셋이었다. 학생운동의 언저리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했다. 적군파를 나와 상관없는 이질적 괴물로만 치부할 수 없었다. 적군파가 뭘 했는지는 알았어도 적군파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어 오랫동안 답답했다. 20여년에 걸친 끈기 있는 연구의 산물인 <적군파>는 빨리 답을 내고서 편해지고 싶었던 내게 정말 중요한 문제는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교훈과 더불어 답을 찾아가는 길에 디딤돌이 될 통찰을 제공해주었다. 세상을 더 낫게 바꾸려 한 청년들의 열정에 적어도 한 조각 공감을 품은 이들에게 <적군파>를 권하고 싶다. 일본의 한 학생운동 조직뿐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임정은 <교양인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