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아까운 책]괴짜 사냥꾼들의 자유 만끽 북극일기

<북극 허풍담>
요른 릴 지음 | 백선희 옮김 | 열린책들 | 1만원

내 탓이다. 내 탓일 것이다. 이렇게 재미있고, 유쾌하고, 독특하고, 게다가 의미도 있는 책이 독자를 얻지 못한 것은.

<북극 허풍담>은 덴마크 작가 요른 릴이 쓴, 북극에 사는 괴짜 사냥꾼들의 비범한 일상을 그린 유머 넘치는 연작 콩트집이다. 이렇게 간단히 요약은 했지만, 이 책이 갖고 있는 진짜 매력이 단번에 이해될 것 같지는 않다. 작가, 괴짜 사냥꾼들, 비범한 일상, 유머, 콩트, 모두 뭔가 설명을 필요로 하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작가 요른 릴은 작가가 되려는 생각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던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탐험을 동경하던 그는 19세 때 북극 탐험대를 따라 그린란드 북동부에 갔다가 북극 생활의 매력에 흠뻑 빠져 그 길로 정착해서 내리 16년을 살았다.

1년에 한 번 소포와 보급품을 싣고 오는 수송선이 문명세계와의 유일한 연결 통로인 오지가 그에게 매력적인 곳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곳에 사는 특별한 사람들 때문이었다. 바로 나머지 문명세계를 ‘저 아랫것들’이라고 부르는 괴짜 사냥꾼들이다. 이들은 북극의 원주민이 아니라 사냥 회사에서 파견한 나름 ‘직원’들로, 자진해서 문명을 등진 사람들이다. 거의 대한민국 반만한 땅에 서른명쯤이 흩어져 산다. 1년의 반은 밤이고 반은 낮, 온통 눈과 빙하, 여름조차 겨울인 환경에서 살다 보니 제정신이 아닐 때가 더 많다.

순진남, 궤변가, 잠꾸러기, 귀족, 전직 군인, 주정꾼, 수다쟁이…. 그들 말고는 어쩌다 수송선과 함께 오는 외지 손님과 흰곰 등 북극 동물이 등장인물의 전부. 황량한 빙원에서 이들 사이에 과연 무슨 특별한 일이 있을까 싶지만, 거의 시트콤 수준의 해프닝이 날마다 펼쳐진다. 결핍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상상으로 만들어내고, 그래서 더 흥미로운 소동이 빚어지는 것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가장 가까운 여자도 수천㎞ 너머에 있기에 어느날 문득 한 사람이 상상의 여자를 창조해낸다. 이 상상의 여자는 어느새 모든 사냥꾼들의 연인으로 변하고, 있지도 않은 이 여자의 행실을 둘러싸고 사냥꾼들 사이에 갈등과 다툼이 벌어진다.

작가 요른 릴은 이들과의 생활 경험, 이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잊지 않기 위해서 기록을 시작했다. 그냥 평면적인 기록은 아니다. 요른 릴의 말재주와 허풍이 가미되고, 사냥꾼들이 입맛대로 동원한 상상이 끼어들어, 다른 어떤 용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형식의 문학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허풍담’(skrøner)이라고 부른다.

요른 릴은 작품을 쓴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출판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기 때문에 하마터면 그대로 파묻힐 수도 있었다. 북극의 사냥꾼들에게까지 책을 팔러 온 어떤 그악스러운 책 장사꾼이 이 원고를 훔쳐가 출판사에 넘기는 덕분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출간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인구 500만인 덴마크에서 50만부까지 판매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나는 사장에게, 내가 사장이라면 이 책의 출판을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했을 거라는 말까지 했다. 재미있고, 유쾌하고, 독특하고, 현지의 인기도 대단했고, 전체 10권의 연작이 있는 만큼 황금광이 될지도 모른다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중요한 메시지도 담고 있다. ‘대자연 속에서 누리는 한없는 자유’가 바로 그 메시지다.

상당한 흥분 속에서 우선 세 권을 출간했는데, 독자의 반응이 의외로 냉랭해 멈춰서고 말았다. 분명 내 탓인 줄은 알겠지만, 아직도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했는지.

‘내가 만든 아까운 책’은 출판사 편집자들이 꾸미는 지면입니다. 공들여 만들었지만 주목받지 못한 좋은 책을 소개합니다.

강무성 <열린책들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