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이소룡 살아있는 ‘중국문화 아이콘’

전기 다룬 드라마 선풍적 인기 대성공…
타계 35주년 맞아 재조명 속에 ‘부활’

"드라마 <이소룡의 전기>를 보고 느낀 점이 많습니다. 하나의 신념을 가지고 자신을 성찰하며 자기가 이뤄야 할 목표를 가졌을 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광둥성 루펑시에 사는 류웨쉐(劉躍學)는 11월 4일 중국의 포털 사이트 ‘아리바바’에 드라마 <이소룡의 전기>의 시청 소감을 올렸다. 대학에서 인터넷 전자상거래를 전공했다는 그는 대학 졸업 후 무작정 광둥으로 가서 한참 헤매다 자기 인생의 길을 찾았다면서 이소룡의 미국행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고 적었다.

<이소룡의 전기>에서 이소룡은 미국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인생에 대한 미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쿵푸를 좋아하긴 했지만, 친구들에게 왕따당하지 않기 위해서지 다른 목적은 없었다. 그러나 미국에 건너간 이후 이소룡은 무술은 격투기가 아닌 예술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이를 영화에 접목시킨다.

드라마는 미국에서 나고 홍콩에서 자란 이소룡이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쿵푸로 입신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이소룡의 전기>는 혈혈단신으로 태평양을 건넌 이소룡이 어떻게 그토록 짧은 시간에 ‘쿵푸’를 세계인에게 각인시키고 ‘쿵푸 영화’라는 장르를 개척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줬다. 현재 전공을 살려 마케팅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는 류씨는 학창시절 두꺼운 전공서적보다 이소룡의 삶에서 배우는 게 더 많았다고 적었다.

2000년 이후 중국 드라마 최고 시청률 기록
쿵푸 스타 이소룡(李小龍·리샤오룽, 1941~1973)이 부활하고 있다. 올해로 타계 35주기를 맞아 드라마, 영화에서 그의 재조명이 활발하다.

이소룡 붐의 진원지는 중국 중앙텔레비전(CCTV)이 제작한 드라마 <이소룡의 전기>다. 10월 12일 방영을 시작해 11월 5일 종영한 이 드라마는 중국의 중심 채널인 CCTV1에서 매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방영할 정도로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미국 시애틀, 태국 등에서 촬영한 <이소룡의 전기>는 제작비만 5000만 위안(100억여 원)을 투입한 대작이다. 방영 이전부터 CCTV에서 사전 광고를 할 정도로 흥행에 신경을 쓴 <이소룡의 전기>는 예상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30부 방영이 막 끝난 지난 10월 26일 실시한 시청률 조사에서 이 드라마는 전국 평균 10.35%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공중파 방송만 수십 개에 달하는 중국에서 10%대의 시청률은 경이적인 기록이다. 특히 ‘당산대형’의 촬영 장면을 담은 44부를 방영할 때는 시청률이 14.87%까지 치솟아 2000년 이후 중국 드라마 가운데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인터넷에는 시청자 소감이 줄을 이었다. 일부 네티즌은 드라마의 오류를 지적해 방송국에 보내기도 했다. 한 시청자는 “이소룡의 자취를 따라 현지 제작한 것은 좋았지만 세트를 사용하지 않다 보니 1960년대 미국 사회에 휴대전화가 등장하는 등 어색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작상의 흠집이 있었음에도 <이소룡의 전기>는 이소룡 신드롬을 불러올 정도로 대성공이었다. TV 방영은 끝났지만, 드라마는 인터넷 상에서 네티즌의 환영을 받고 있다. 드라마 주제가는 휴대전화 컬러링으로 활용돼 베이징 올림픽 주제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극중에서 이소룡 역을 맡은 홍콩 출신 배우 천궈쿤(陳國坤)은 뛰어난 무술 연기로 청룽(成龍), 훙진바오(洪今寶)의 뒤를 잇는 차세대 쿵푸 스타를 예약했다.

중국 후베이성 스옌시에서 열린 제3회 세계전통무술경연대회 모습.

이소룡 추모 열기는 영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소룡의 전기> 제작진은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영화로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3일 쓰촨성 루저우시에서는 이소룡의 무술을 주제로 한 영화 <절권도(截拳道)>의 촬영이 시작됐다. 영화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이소룡의 오랜 친구와 열렬한 팬이 각각 감독과 주역을 맡았다는 점이다. 영화감독 천후이이(陳會毅)는 이소룡 생전의 절친한 친구로, 이소룡이 주연한 <정무문> <당산대형> <용쟁호투> 등에서 무술지도를 담당했다. 절권도는 이소룡이 창안한 무술의 하나다. 천후이이는 “절권도에는 철학이 들어 있으며, 모든 사람은 각자의 절권도를 품고 있다”면서 영화에서 이소룡의 인생 철학을 펼쳐 보이겠다고 제작 방향을 소개했다. 이소룡 역을 맡은 루저우의 농민 천톈싱(陳天星)은 8살 때 이소룡을 알고 나서 이후 20년 동안 절권도를 연마해온 이소룡의 광적인 팬이다. 쓰촨과 베이징을 오가며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학교를 설립하기도 한 그는 이번 영화 제작비의 절반인 400만 위안을 쾌척했다.

중국 전통무술 관심도 다시 일깨워
이소룡의 재조명 열기는 중국 전통 무술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있다. 이소룡 드라마로 흥행에 성공한 CCTV는 지난 3일부터 소림사 스님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림 무술>을 8번 채널에서 내보내고 있다. 소림사 방장 스융신(釋永信) 스님이 총감독을 맡은 드라마는 소림사 승려들이 명(明)나라 때 왜구의 침략을 물리친 데 앞장선 전설적인 이야기를 드라마로 각색한 것이다. 495년 창건한 소림사에는 중원 무림에 군림한 무승들의 모험담과 활약상을 둘러싸고 무수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중국 무술의 본산 소림사의 이야기는 수없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지만, 소림사에서 직접 제작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두 34회에 걸쳐 방송될 <소림 무술>에는 홍콩의 유명배우 훙진바오가 주연을 맡고, 그의 아들 톈자오(天照)도 젊은 무술인으로 출연한다.

과거 무술의 맥을 잇는 노력도 활발하다. 지난달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후베이성 스옌시에서 열린 제3회 세계전통무술경연대회에는 중국의 무술인은 물론 전 세계 60개국의 무술 고수 2000여 명이 참석하는 대성황을 이뤘다. 중국 정부는 지난 8월 베이징 올림픽에 쿵푸를 경기 종목으로 포함시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영국·미국·폴란드·러시아·그리스 등 전 세계 쿵푸인이 참여해 기량을 겨루면서 쿵푸가 세계의 스포츠임을 입증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쿵푸를 10~15년씩 익힌 고수들이다. 15년간 태극권과 태극검을 배웠다는 브라질의 파울로 사칸나카(75)는 차이나데일지와 인터뷰에서 “태극권을 생활체육으로 브라질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면서 “건강뿐 아니라 미용에도 좋은 운동”이라고 말했다.

중국인들의 이소룡과 쿵푸의 재발견은 베이징 올림픽 개최, 유인우주선 ‘선저우 7호’ 발사 성공 등 최근 중국에서 일고 있는 애국주의 열기와 관련 있어 보인다. 이소룡의 영화는 존 레넌의 음악, 펠레의 축구와 함께 1970년대 문화열(熱)의 하나였다. 중국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20세기의 영웅이자 우상인 이소룡을 중화문화의 한 아이콘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소룡의 전기>에서 주인공이 “나는 중국인이다”를 반복해서 강조한 것에는 13억 명을 하나로 묶어줄 영웅을 갈구하는 중국인의 바람이 투영돼 있다.

<조운찬 베이징특파원 sidol@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