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낮은 데로 임하는 교황, 실추된 종교신뢰 회복할까

교황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실천으로 본을 보이는 길을 택했다.

“우리는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 잊어버린 사회에서 살고 있다.”

교황 프란치스코(77)의 행보가 연일 파격적이다.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를 표방하며, ‘빈자들의 친구’로 불렸던 성자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삼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실제로 가난한 이를 찾아 세상의 낮은 데로 임하는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교황은 7월 8일 교황청 외부 첫 공식 방문지로 지중해 람페두사 섬의 불법이주자 수용소를 찾았다. 교황은 운동장에서 미사를 열고 이주자들의 환영에 감사를 전하며, 더 나은 삶을 찾으려다 죽어간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는 “누가 보트를 타고 온 사람들을 위해 울어줄 것인가”라며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한 세태를 비판했다. 또한 “우리의 풍족한 문화가 우리를 다른 이들의 울음에 무감각하게 만들고 있다”면서 “이는 다른 사람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져 ‘무관심의 세계화’를 불러오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7월 8일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에서 강론하고 있다. 이날 미사 제단은 이주자들이 타고 온 선박의 목재로 만들었으며, 강론대도 배의 방향키와 나무조각으로 만들었다. 교황청 관계자는 미사의 검소한 분위기를 위해 교황이 직접 요청한 것이라고 전했다. | AP연합뉴스

신학문제는 보수적, 사회문제는 개혁적
지중해의 작은 돌섬 람페두사는 아프리카 이주자들이 유럽으로 가는 ‘관문’이다. 교황의 방문은 지난 6월 시칠리아 앞바다에서 발생한 조난사고가 계기가 됐다. 당시 저인망 어선에 딸린 참치 포획용 우리에 매달려 이탈리아로 들어가려던 이주자 7명이 익사했다. 매달려 있다가 힘에 부친 이들이 배에 오르려 하자, 선원들이 배와 연결된 로프를 끊어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황은 “몇 주 전 난민들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뉴스를 봤는데, 심장에 가시가 박힌 듯한 고통을 느꼈다”고 방문 배경을 설명했다.

교황은 평소 교회가 소외된 주변부로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이번 방문도 ‘가난한 자들의 교회’를 추구하는 행보의 연장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이날 가난한 이민자들을 통해 자신의 배만 불리는 업자들을 비판하고,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이주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양심이 마비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군중 속의 무슬림 이주자들에게 라마단의 시작을 축하하기도 했다.

세상의 낮은 데로 임하는 교황의 행보는 그가 선출됐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고돼 있었다.

지난 3월 13일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어 제266대 로마 가톨릭 교황에 선출됐다. 교황은 선출되는 과정에서부터 많은 화제를 뿌렸다. 미주지역에서 배출된 첫 교황이자, 첫 예수회 출신 교황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처음으로 ‘빈자들의 친구’라 불렸던 아시시의 성자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교황명으로 골랐다.

교황은 이탈리아계 이민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동성애와 낙태, 사형제 등에 반대해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인 성향이다. 반면 빈곤과 불평등을 비판하는 등 사회·경제적 문제에선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시절에도 빈민들과 가까이 지내며 버스를 타고, 작은 아파트에 살아 ‘청빈한 사제’의 대명사로 꼽혔다.

새 교황이 감당해야 할 과제들의 무게는 만만치 않았다. 거룩한 교회의 이면에서 성추문과 부패·돈세탁·비밀계좌·관료주의·파벌다툼이 곪아 터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성추문이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줄줄이 터져나온 사제들의 성범죄는 교황 베네딕토 16세 시절 가톨릭을 짓눌렀다. 교황청의 부패와 돈 문제도 심각한 골칫거리였다. 2010년 바티칸 은행 계좌에서 3000만 달러가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베네딕토 16세의 측근이던 고티 테데시 바티칸 은행장이 공금을 빼내간 정황이 드러났지만 테데시는 2년을 버티다 지난해 물러났다. 8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비밀계좌의 돈을 투명하게 관리하라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전임 교황은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교황청의 돈줄을 놓고 이합집산해온 바티칸 관료들을 누르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보수적인 추기경들이 추진력 있는 개혁가 대신 ‘몇 년 시간을 끌어줄 무난한 인물’로 교황 프란치스코를 선택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교황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실천으로 본을 보이는 길을 택했다. 교황은 즉위 직후부터 일반 사제용 셔틀버스를 이용하는가 하면, 교황을 상징하는 화려한 망토와 모자를 착용하지 않는 등 검소한 생활방식을 고수했다. 그의 의지는 즉위식에서도 나타났다. 교황의 십자가 목걸이는 금 대신 철제 십자가였다. 교황권의 상징인 ‘어부의 반지’도 도금한 은이었다. 즉위미사에는 종파의 벽을 초월해 다양한 종교지도자들이 참석했다. 호화로운 교황 관저 대신 다른 성직자들과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기도 했다. 즉위식 이후 거행한 세족례에서도 파격 행보를 이어갔다. 교황은 로마 교외의 소년원을 찾아 소녀 2명을 포함해 12명의 발을 씻겨주고 입맞춤을 하며 강복했다. 가톨릭은 전통적으로 예수의 12제자가 모두 남자인 점을 들어 교황의 세족례 대상을 남성으로만 제한해 왔다. 세족례 대상에 이슬람 신자가 포함된 것도 처음이었다.

취임 직후부터 전임자들과 다른 행보
교황 프란치스코의 격의 없는 행보는 곧바로 가톨릭 전통주의자들의 반발을 샀다. 세족례에 이슬람 신자를 포함해 여성 2명을 참여시킨 것이 불만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선출 이후 교황의 권위를 보여주는 상징을 거부해온 그의 행동과 결정이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종교간 대화’에 초점을 맞춘 것도 전통주의자들에겐 바람직하지 않은 종교 상대주의로 받아들여졌다. 미국 가톨릭 보수 논객인 지미 아킨은 “교황은 누구의 허락 없이도 예외적 행동을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지도자를 모방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교황은 이런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임자들과 다른 행보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교황은 이번 여름휴가 때 역대 교황들의 휴양지인 카스텔 간돌포로 이동하지 않고 바티칸에 남기로 했다. 5일 발표한 첫 회칙에서는 전임 교황이 퇴임 전 작성한 초안을 바탕으로 작성해 존경의 뜻을 표했다. 그는 종교의 역할이 공동선을 위해 복무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밝히며 성직자가 낮은 곳에 임할 것을 강조했다. 교황청 개혁에도 칼을 빼들었다. 지난달 바티칸 은행의 부정부패를 색출하기 위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신뢰 회복에 나선 것이다. 지난달 28일 고위 성직자가 수천만 유로의 현금을 밀수하려 한 혐의로 체포됐으며, 지난 1일에는 은행 이사진이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교황은 지난 3월 즉위식을 앞두고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따온 배경을 직접 설명한 바 있다. “가난한 사람. 가난한 사람. 이들을 생각하니 곧바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떠올랐다.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 얼마나 좋은가.”
가진 것을 포기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살았던 프란치스코는 예수의 삶을 본받은 것으로 존경받았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낮은 행보가 땅에 떨어진 종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배문규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obbell@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