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윤태영 대변인은 마징가제트?

노무현 정부 ‘돌려막기식 회전문 인사’의 상징으로 지목

신임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왼쪽)과 정태호 전임 대변인이 8월 27일 춘추관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윤대(윤태영 청와대 대변인)’가 돌아온대.”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지난 8월 27일 전격적으로 윤태영 연설기획비서관이 대변인으로 발령이 난다는 소식을 미리 듣고 이렇게 말했다. 명실상부한 ‘노무현 대통령의 입’이 다시 춘추관(청와대 기자실) 주인이 된 것을 환영하는 말이다.

기자 사이에는 ‘청와대 취재는 곧 윤태영 취재’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였다. 언론에 폐쇄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청와대에서 그나마 기자들과의 통로 구실을 하는 유일한 인사가 윤태영 대변인이다. 그를 다시 대면하게 된 기자들이 반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윤 대변인도 “노 대통령이 대변인을 잘할 때까지 하라고 다시 (춘추관으로) 보낸 모양”이라고 농중진언으로 기자의 환영에 화답했다.

노 대통령 정국주도권 행사 의지 해석

그의 대변인 재임용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윤 대변인 재발탁은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는 당·청 갈등 해소를 위해 비서실장 직속으로 정무팀을 신설하는데 따른 후속인사 성격이 짙다. 그렇다고 윤 대변인의 자리옮김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향후 전개될 대선국면에서 노 대통령이 정국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되는 부분이다. 그 과정에서 노 대통령의 ‘복심’ 그리고 노 대통령의 ‘그림자’로 불리는 윤 대변인에게 중요한 임무가 부여될 것임은 불을 보듯 환한 일이다. 주도적 정국운영을 위한 사전정지 작업 차원에서라도 참여정부에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환경을 바꿔야 한다. 국민과 노 대통령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그렇다. 윤 대변인이 “대통령의 메시지만 담당해서 전달하겠다”고 말한 것도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최근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탈당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 일각에서는 그 의미를 놓고 혼선이 꽤 오래 지속됐다. 당연히 노 대통령의 의도를 곡해한 보도가 잇따랐다. 한 청와대 인사는 이에 대해 “솔직히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그것을 악의적으로 해석했다기 보다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는 게 정확하다”면서 “그것은 ‘탈당불가’ 발언으로 여권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 등에 대해 청와대의 설명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홍보라인에서도 ‘노심’을 정확히 읽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의 발언은 윤 대변인이 왜 춘추관으로 돌아왔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충분하다.

더욱이 윤 대변인은 연설기획비서관을 겸직하고 있다. 이는 종전에 하던 일에 대변인 업무를 추가로 한다는 의미다. 연설기획비서관은 노 대통령의 공식·비공식 메시지를 챙겨야 한다. 또 그것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 노 대통령의 하루 일과 중 많을 때는 2~3건의 공식행사와 3~4건의 비공식 행사가 있다. 또 단순한 입장정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청와대 입장에서 논리를 개발하고 꾸준히 그것을 습득해야 한다. 사실 이 업무만으로도 과중한 부하가 걸린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국정이란 끊임없는 결단을 위해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이라며 “윤 대변인의 업무가 과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대변인의 역할은 거기에 그치는 않는다. 그는 참여정부 출범 당시 31명 비서관 중에서 줄곧 청와대에 남아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권력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리를 지킨 그에 대한 청와대 386세대의 기대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44개 자리로 늘어난 비서관(수석비서관과 보좌관 제외)에서 19석을 차지하고 있는 386세대의 중심 노릇도 해야 한다. 더욱이 창업공신 비서관 3인방 중에 한 사람인 천호선 전 의전비서관의 사임으로 인한 공백은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공신 386비서관과 함께 청와대의 한 축을 형성했던 PK 386비서관 세력은 더욱 강화될 여지가 있다. PK비서관그룹의 맏형인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이 건재하고 정윤재 의전비서관도 다시 청와대로 컴백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비서관 3인방은 돌려막기 도구

2003년 7월 당시 윤태영 대변인(오른쪽), 이호철 민정비서관(가운데), 곽해곤 현장모니터 비서관이 무엇인가 숙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여권의 한 인사는 “대통령의 특성상 불가피한 일”이라고 체념하면서도 “청와대 인사들 중에 윤 대변인을 ‘마징가제트’라고 부른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말했다. 윤 대변인이 무쇠로 만든 로봇처럼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돌려막기식 회전문 인사’의 상징으로 지목되는 윤 대변인에 대한 안타까움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업무과중이 윤 대변인 한 사람에 그치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청와대 핵심비서관’으로 불리는 천 전 비서관, 이호철 국정상황실장 등 청와대 비서관 3인방은 돌려막기의 도구가 돼왔다.

천 전 비서관은 참여정부 출범 직후 참여기획비서관, 정무팀장 겸 정무기획비서관, 의전비서관, 국정상황실장을 거쳐 다시 의전비서관을 맡았다. 천 전 비서관은 특히 대통령의 주요일정 및 면담자 선정을 관리하면서 매일 아침 윤태영 대변인, 이호철 국정상황실장 등과 노 대통령을 제일 먼저 면담, 노 대통령의 의중을 제일 잘 파악하는 최측근으로 통했다.

잠시 휴식기를 가졌지만 이호철 국정상황실장도 마찬가지다. 민정비서관에서 제도개선비서관, 다시 ‘청와대의 신경’을 맡고 있는 국정상황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 3명이 사실상 청와대의 눈과 귀, 그리고 신경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막강한 정보가 소수 특정인에게 집중되고 있는 현상이 빚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이런 인사 스타일로 ‘코드인사’와 노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이나 의리로 맺어진 ‘보은인사’, 정치권과 사회 각계의 반대 여론에도 옳다고 믿으면 그대로 밀어붙이는 ‘오기인사’와 측근을 돌아가며 요직에 배치하는 ‘회전문 인사’라고 비판받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는 노 대통령의 철학을 반영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인사특징 중에 하나가 개인적 인연을 중시하는 것이다. 각별한 인연이 있는 소수 정예위주로 비서실을 운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노 대통령이 8월 31일 방영된 KBS 회견에서 청와대 인사정책과 관련, “(과거 정권보다) 인사가 좋아지고 있다”면서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을 계속 문제 삼는데, 같은 능력이라면 대통령의 정책을 잘 이해하는 사람을 쓰는 것이 책임정치·정당정치의 당연한 원칙”이라고 정면대응하고 나섰다.

이런 인사스타일에 대해 ‘회전문 인사’ ‘돌려막기 인사’ ‘물레방아 인사’ ‘마징가제트 인사’ ‘왕의 남자 인사’ ‘쳇바퀴인사’라는 등 온갖 조어가 난무하고 있지만 노 대통령은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