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기사 공모전]“어기야 디여차~” 빚잔치를 벌인다

최우수상 당선작

정부 ‘엇박자’ 어업 구조조정에 막막한 어촌… 어종 고갈·중국산 공세 ‘이중고’

연안부두로 알려진 인천 남항. 수산자원 고갈과 개발에 따른 환경파괴로 예전의 북적거림은 사라지고 을씨년스러운 적막감만 감돈다.

화창한 주말, 항도 인천의 포구는 관광객의 떠들썩함을 빼면 너무나도 조용하다.

‘연안부두’로 더욱 잘 알려진 인천 남항 포구는 더 이상 분주한 어항이 아니다. 듬성듬성 묶여 있는 배 사이로 그물을 손보는 아주머니, 상자를 나르는 어부 몇몇을 제외하면 마치 정지된 느낌이다.
건너편 여객터미널은 커다란 중국행 여객선에서 타고 내리는 승객으로 활기차 보인다. 하지만 고작 몇 백 미터 건너 이쪽에는 초라해 보이는 작은 어선 몇 척만이 바다를 누빈 지 한참 됐다는 것을 증명하듯 잔뜩 녹슨 몸체 아래로 해초를 잔뜩 달고서 하염없이 묶여 있을 뿐이다.

오래된 기억 속 연안부두는 생선을 사고파는 공판장의 시끌벅적한 경매소리와 얼굴이 검게 그을은 어부의 삶의 공간이다. 하지만 10여 년 만에 찾은 그곳에는 을씨년스러운 조용함이 대신 자리를 채우고 있다.

부두엔 출어 포기한 어선들만…

공판장 앞에 널려 있는 어구 사이에서 그물을 손보던 아주머니는 “고기가 잡혀야 배도 있고 사람도 있지. 요즘은 배 타고 나가봐야 본전도 건지기 힘들어. 그러니 사람은 다 떠나고 한산한 게지”라며 한숨부터 지었다. 연안부두의 토박이라는 이 아주머니는 “10년 전만해도 저 끝서 이 끝까지 배들이 꽉꽉 찼지. 새벽 배 나갈 시간이면 엔진소리에 시끄러워 말소리도 안 들렸으니까. 근데 요즘은 그나마 남은 배도 별로 없고 드나드는 배도 뜸하다”며 달라진 상황을 설명했다.

아주머니의 말처럼 널따란 포구 한 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20척 남짓한 어선이 전부였다. 언젠가부터 물고기 씨가 말라버린 황해는 어민들을 적자의 악순환으로 밀어 넣고 있다. 부두에는 계속되는 적자에 출어를 포기한 배만 정박해 있다.
새벽에 주꾸미 조업을 나갔다 허탕을 치고 돌아온 5톤짜리 소형 어선에 지친 표정으로 쉬고 있던 박 아무개 씨(57)는 “어휴! 기름 값이 너무 올라 힘들어. 오늘은 바다에 50만 원 뿌리고 공쳤어”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정부에서 세금을 감면해줘도 한 드럼에 10만 원이 넘어. 비싼 기름 넣고 나가면 뭐하나. 오늘처럼 고기 한 마리 안 올라오면 정말 기운 빠져”라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얘기를 듣던 다른 어부는 “이제 꽃게 철이 시작이여”라며 “3년 동안 씨가 말랐던 꽃게가 올해는 좀 올라올까 기대는 드는데…”라며 말을 거든다.

부두에서 만난 어민들은 한결같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 이라며 분노에 가까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적자 악순환에 내몰린 어민들

부두의 다른 편, 선착장 가장 안쪽에 100톤짜리 큼지막한 어선을 둘러보던 선주 고 아무개씨(48)는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연근해 구조조정 사업계획에 따라 감척을 한 사람이다.

고씨는 “몇 해 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어선 4척 중 두 척을 감척사업에 따라 폐선 처리했다며 부채에 못 이겨 정부 시책이라는 말을 믿고 시세 절반 가격에 배를 넘겼지만 결국 적자만 잔뜩 봤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당시 건조비는 10억 원 이상이 들었고 조업권과 배 가격을 치면 최소 6억~7억 원은 받았어야 하지만 보조금 2억 원에 폐선 처리해버렸다. 지금 남아 있는 배 두 척도 수지가 맞지 않아 한 척은 부두에 묶여만 있다.

정부는 1994년부터 수산자원의 남획을 막고 어업경쟁력을 향상시킨다는 목적으로 어선수를 감축하는 구조조정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어부들은 사업의 효과는커녕 불신을 넘어 분노만 표시하고 있다. 고기가 안 잡히는 것은 배가 많아 경쟁이 치열해서가 아니라 물고기 자체가 줄어든 탓이라는 것이 어민들의 생각이다.

정부가 벌이고 있는 다른 사업도 사정은 비슷하다. 융자 형식으로 지원되는 대부분의 정부보조금은 어민에게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을 강요했고 이는 곧바로 생활고로 이어졌다.

연안부두에서 만난 어민들은 대부분 황폐해진 인천 앞바다에서 이제 더 이상 삶의 터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어민의 말에 따르면 서해안 대표 어종인 꽃게는 3년 째 잡히지 않을 만큼 고갈됐고 광어, 놀래미 등은 값싼 중국산의 공세에 잡아봐야 손해만 보는 이중고에 처해 있다.

특히 계속되는 대규모 바닷모래 채취와 영종도 인천공항 및 송도 국제도시 건설을 위한 매립 등 대형 토목공사로 인한 환경파괴로 바다는 더욱 황폐해졌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적 수산자원 회복 노력은 미미한 실정이다. 바다 목장화 사업, 인공어초 사업 등이 추진되고 있지만 수산자원 감소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조업을 나가면 적자가 발생하고, 적자는 곧바로 빚으로, 빚을 갚기 위해 또 출항하면 적자를 보는 악순환은 결국은 생계수단이던 배를 넘기고 무일푼으로 떠나는 어민이 양산하는 것이다.

주꾸미 잡이에 쓰는 소라 껍데기. 주꾸미 철이 지난 터라 선착장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그 결과는 항도 인천의 남항 포구 풍경을 한산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도는 곳으로 바꾸어놓고 있다. 활기차던 부두의 어선은 10년 전의 10분의 1밖에 남지 않았고, 그나마도 조업을 포기하고 부두에 정박해 있는 것들이 상당수다.

소래포구에서 만난 어부 정 아무개씨(51)는 “송도를 매립한 뒤로는 거기서 떠내려 오는 각목이나 폐자재 때문에 그물 찢어지는 일이 다반사”라며 “그물이 한 번 찢어지면 하루 종일 잡은 물고기 다 팔아도 오히려 밑지는 거지”라고 쓴웃음을 짓는다. 정씨는 “배 사느라 진 빚 갚으려면 부지런히 벌어야 하는데 요새는 손해 보는 날이 더 많은 것 같아. 큰 아들은 곧 장가보내야 하고 작은 아들은 대학생이라 등록금도 비싼데…”라며 한숨을 내쉰다.

소래 공판장에서 만난 소래 어촌계 간사 신 아무개씨(43)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돈이 많아서 배 짓고 그물 사나? 배 살 때부터 빚지고 시작하는 거고 그물 값이며 선원들 품삯이며 주고 나면 한 배 가득 잡아와야 남는 거 없지. 기름 값은 또 어찌나 오르는지 이 동네에서 빚 안 지고 사는 집 하나도 없다고 보면 될 거야”라고 하소연했다.

이런 상황에 정부는 근원적 문제에는 미온적인 대책만 내놓았고, 정부를 믿고 사업에 참여한 어민들의 불신만 키운 초라한 결과를 남겼다. 믿고 기댈 구석 없는 어민들은 그저 하루하루 버텨가며 언제가 끝인지도 모른 채 따라갈 뿐이다.

현실성 없는 수산정책 ‘폭풍전야’

현행 수산보조금을 대체하는 정부의 지원 대책이 필요하지만 사실상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세계무역기구의 출범과 양자간·다자간 자유무역협정 등으로 세계화가 가속되면서 국내 수산 시장에도 시장개방의 폭풍전야가 시작됐다.
5월 8일부터 10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제26차 세계무역기구(WTO) 수산보조금 협상’이 열렸다. 이번 협상에서는 각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며 공전을 거듭하던 지난 협상과 달리 이미 제출된 4건의 제안서를 놓고 ‘수산보조금 금지 등에 관한 협정문’ 발효를 위한 세부적인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협상 결과에 따라 정부에서 지급하는 각종 수산보조금의 개편 및 폐지가 이르면 올해 말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수산물에 부과되는 관세율의 폐지 혹은 대폭 축소도 예상된다.

국내 수산업은 소형 어선 위주의 영세한 연근해어업이 대부분으로 시장 개방은 자칫 국내 어업의 산업기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근 환경오염, 간척사업 등의 여파로 연근해 어획량이 급감하며 어민의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 이번 협정문 발효가 어민 생활 붕괴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행 18% 수준을 유지되는 관세가 전면 폐지될 경우 연간 약 1조 원의 산업 피해가 예상된다.

수산보조금 축소에 따른 어민의 피해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수산보조금의 포괄적 금지가 확정될 경우 현재 1조 5000억 원 규모의 보조금이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체 보조금의 약 50%에 달하는 면세유 공급이 전면 중단될 경우, 어업비용 상승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 예상은 최대 54%에 이르며 어업소득 감소 역시 15% 정도 나타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8조 원에 달하는 수산업 생산량의 감소는 식량대책 마련에도 차질을 줄 수 있는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해양수산부는 수산보조금 협상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2004년 8월, WTO 이사회에서 합의된 기본원칙에 의해 일정 수준이상의 관세 삭감과 보조금 폐지는 불가피해 보인다.

또한 미국, 뉴질랜드 등 보조금 포괄적 금지를 주장하고 있는 이른바 ‘FFG(Fish Friends Group)’의 행보와 국제환경기구의 압력이 작용해 협상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해양수산부 자유무역대책팀 양혜원 계장은 “우리나라 보조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면세유 부분에 대비한 전략 마련에 초점을 맞추어 미국, 호주 등 면세유 운영국과의 비공식적 협의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협상 타결 이후의 현행 수산보조금을 대체할 어민지원 대책 부재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는 협정문 발효 이후 영어자금, 감척사업 지원금 등 협상 내 허용보조금을 확대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휴어(休漁) 지원사업인 영어자금 지원이나 감척사업 지원 등은 어선세력 축소를 통해 수산자원 남획을 방지한다는 취지에서 협상 이후에도 유지 가능한 보조금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대안으로 제시되는 정부 사업의 경우 현재 대상 규모가 참가 희망 어민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고 사업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994년부터 진행 중인 감척사업의 경우 예산확보가 어려워 지원 어선 수에 비해 감척규모가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사업 규모가 작다보니 ‘어선세력 감축’이라는 사업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감척 이후 생계자금 지원이나 관련산업으로의 전환 지원 등 관련 사업과의 연계도 미흡한 상황이라 어민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각종 악재에 따른 지속적인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폐업을 하더라도 이후 생계가 어려운 것이 어민들의 현실이다. 실제 감척사업에 참여한 어민의 대다수는 감척 이후 빈손으로 어촌을 떠나거나 다시 선원이 돼 다른 배를 타는 것이 현실이다.
지원금 삭감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감척대상 선정에 최저입찰제가 도입되면서 보상금 규모가 어선 시세의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아 어민들에게 ‘감척은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또한 사업 시행주체인 해양수산부와 각 지자체 등에서는 정주사업의 일환으로 감척대상 어민의 양식업 전환 등을 권장하지만 업종전환에 필요한 교육 지원이나 자금 지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폐업 어민의 타 업종 전환은 사실상 불가능한 형편이다.

정부의 조업 억제책 이후 남게 될 어선세력의 경쟁력 확보도 불투명하다. 이미 고갈에 가까운 연근해 수산자원의 복원 노력은 바다 목장화 사업이나 인공어초 투하 등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예산 확보 등의 이유로 고갈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여기에 조업비용 부담의 증대로 어민의 어획강도는 강화되고 수산자원 고갈은 빨라지는 형편이다.

박찬영〈인하대학교 생명화공과 4학년〉
전수환〈인하대학교 프랑스어과 3학년〉
임효진〈인하대학교 철학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