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밥은 적게 먹고, 좋은 마음은 포식

전국 최고령자 3인의 ‘장수건강법’ 공통점… 화내지 않고 매사에 긍정적 생각

표씨 할머니는 112세로 전국 최고령자다.

대학입시 수석 합격자들에게 ‘비결’을 물으면 “학교 수업을 충실하게 받고, 교과서를 중심으로 공부했다”는 식의 ‘모범답안’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상당수의 수석합격자들이 실제로는 과외를 하거나 학원에 다닌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장수노인에게 장수 비결을 물으면 내놓는 답도 늘 비슷하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규치적으로 식사하고….” 그래서 이것도 적당히 포장된 ‘모범답안’이려니 했다. 그런데 꾸며낸 모범답안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랬다.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것,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그것이 장수의 첫째 비결이다.

우리나라의 장수 할머니 중 상당수가 충청도에 살고 있다. 느리고, 여유있는 고장 충청도에 3명의 최고령 할머니가 살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100세 이상 고령자 조사 결과’ 전국 최고령자는 올해 만 111세의 엄옥군 할머니(대전시 중구 산성동)와 조연호 할머니(충남 천안시 신방동)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통계청이 최고령으로 확인했다고 밝힌 엄·조 할머니에 비해 한 살 더 많은 할머니가 충남 서산에 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주인공은 표씨 할머니(성이 `표’고 이름이 `씨’다, 충남 서산시 대산읍)다. 주민등록상(1896년 10월 5일생)으로는 엄·조 할머니에 비해 2년 늦게 태어난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실제 나이는 주민등록상의 나이보다 3살이 많다. 엄·조 할머니에 비해 한 살이 더 많은 것이다. 112세.

저녁 8시에 취침 10시간씩 푹 자

표 할머니의 장수 비결은 간단했다. 적게 먹고, 잘 자고, 편하게 마음 먹는 것. 그것뿐이었다. 지금도 하루 세끼를 꼭 챙겨먹는 표 할머니는 언제나 `소식’ 원칙을 지킨다. 지금은 3분의 1공기 정도만 먹지만 100세가 되기 전의 `젊은 시절’에도 한 공기 이상을 먹는 법이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반찬은 꽃게. 서산 앞바다의 싱싱한 꽃게로 담근 간장 게장만 있으면 가장 행복한 식사가 된다. 또 한 가지 좋아하는 것이 있다. 고기다. 돼지고기를 특히 좋아한다. 물론 각종 채소나 김치도 잘 먹는다.

장수의 비결은 ‘마음을 편하게 먹고 규칙적으로 식사하는 것 등’ 이다. 한 노부부가 전국건강장수 부부선발대회에 참가, 손을 잡은 채 춤추고 있다.

치아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게나 고기도 잇몸을 이용해 먹는다. 가족들이 틀니를 권했지만 “틀니는 필요없다”고 해서 포기했다. 표 할머니는 8시에 잠자리에 들어 아침 6시면 일어난다. 노인 치고는 꽤 길다. 늘 푹 잔다. 표 할머니의 특징은 매사가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화를 거의 내지 않는다. 며느리(80)는 물론 손자며느리(36)까지 데리고 살지만 고부갈등은 없다.

표 할머니는 지금도 건강하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병원에 가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술·담배를 멀리해온 표 할머니는 그 흔한 감기 한번 걸려본 적이 없다. 30세 아래인 며느리는 골다공증과 고혈압 등으로 고생을 하지만 시어머니인 표 할머니는 아직도 정정하다. 표씨는 특히 눈이 좋다. 지금도 증손자들과 어울려 TV 보는 것을 좋아한다. 표 할머니는 또 가족들과 차를 타고 외식하러 가는 것을 좋아한다. 차멀미를 하기는커녕 차를 태워달라고 조르기까지 한다.

표 할머니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가족이나 손님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것이 어려울 뿐 일상생활에 불편한 것이 없다. 화장실도 혼자 다녀오고 옷도 스스로 갈아입는다. 요즘도 밥에 넣을 완두콩을 직접 깔 정도로 기력이 왕성하다. 지난 5·31 지방선거 때는 가족과 함께 인근 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 나가 투표도 했다.

표 할머니는 50년 전에는 남편과, 16년 전에는 장남과 각각 사별하는 등 아픔도 몇 번 겪었지만 늘 좋은 쪽으로만 생각한다.

“살다 보면 나쁜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지만 좋은 일이 더 많은 법이여.”

집에서 담근 포도주 즐겨 마셔

표 할머니는 앞으로도 좋은 일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큰손자가 잘 커서 환갑을 앞두고 있다. 내후년에는 큰손자의 환갑잔치에도 참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23세인 큰 증손자는 대학을 휴학하고 군복무 중이다. 지금의 건강상태를 유지한다면 고손자를 보는 것도 꿈만은 아니다.

전국 최고령자로 알려진 만 111세의 엄옥군 할머니.

함께 사는 손자 한상남씨(43)는 “할머니는 ‘112년 성상을 거치면서 남편과 큰아들을 잃는 아픔도 겪으셨지만 좋은 일이 더 많았다’며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신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할머니는 밥을 많이 퍼 드려도 늘 정해진 양만 드신다”며 “과식을 하지 않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장수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 엄옥군 할머니 역시 온화하고 낙천적인 성품과 규칙적인 식사습관 때문에 장수한다고 가족들은 생각한다.
엄 할머니는 시력과 청력이 떨어져 조금 불편하지만 일상 생활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의 건강 상태를 최근까지 유지했다. 요즘 들어 거동이 불편해 주로 집에서 누워 지내지만 107세 때까지 걸어다니는 것은 물론 노래와 춤까지 즐겼다고 한다.
엄 할머니는 지금도 식사를 거르지 않는다. 고기, 생선, 나물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잘 먹지만 젊은 시절부터 과식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평소 집에서 담근 포도주를 즐겨 마셨는데 이것이 건강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엄 할머니는 평생 흡연을 하지 않았으며 팔순 때까지는 충남 홍성에서 농사를 지었다.

엄 할머니의 장수에는 가족력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4자매 가운데 막내로 언니들 모두 95세 이상 장수했다. 40년 전 쯤에 사별한 남편과의 사이에 2남2녀를 두었으며 77살인 큰딸 등 딸 2명과 작은아들이 살아 있다.

엄 할머니와 함께 사는 손자며느리 차영희씨(57)는 “104세 때 장출혈로 잠시 병원신세를 진적이 있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질병 없이 살아오셨다”며 “늘 편안한 마음으로 사신다”고 말했다.

천안의 조연호 할머니는 오랫동안 음주와 흡연을 한 데다 고기를 즐겨 먹는 등 다른 고령자들과는 약간 다른 생활습관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68세의 며느리와 2명의 손자 내외 등 8명의 가족과 함께 사는 조 할머니는 20대부터 즐겨온 술과 담배를 10여 년 전에 끊었다. “금주와 금연을 해야 오래 산다”는 가족들의 권유를 받아들여서다.

조 할머니도 끼니를 절대로 거르지 않는다고 한다. 음식은 육식과 채식을 다 좋아하며 특히 개고기와 닭고기를 즐겨 먹는다. 다만 생활은 매우 철저해 지금도 저녁 7~8시면 반드시 잠자리에 들어 다음날 오전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마을을 한바퀴 돈 뒤 가족들을 깨운다.

산책을 할 때는 지팡이를 들고 가지만 실제 짚고 다니지는 않을 정도로 정정하다. 감기는 물론 아파서 병원을 찾은 적도 거의 없다.

<대전·천안·서산/윤희일 기자 yhi@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