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인터넷 도박 한 번 빠지면 멈출 수 없어

사이버 공간 특성상 더 강한 중독성… 감독 사각지대로 사기성·불법성 만연

카드 게임 중 두 장의 카드를 더한 수의 끝자리가 9에 가까운 쪽이 이기는 게임이 ‘바카라’다. 강원랜드 등의 카지노에 가면 볼 수 있는 게임이지만, 요즘은 언론매체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 불법 도박 때문이다.

경찰 집중단속에도 여전히 활개
9월 28일, 불법 인터넷 도박장을 개설해 1년 만에 1000억 원 이상 챙긴 운영자 4명이 구속됐다. 이들은 필리핀 마닐라에 ‘바카라’ 게임장을 설치하고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통해 도박 장면을 생방송하면서 접속자들을 상대로 판돈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연이어서 11월 19일 야구선수 출신 MC 강병규씨도 인터넷 불법 도박으로 패가망신했다. 검찰은 강씨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인터넷 도박에 빠졌고, 26억 원 정도를 도박 사이트에 송금해 ‘바카라’를 해왔다고 발표했다. 강씨도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인터넷 도박 혐의를 일부 시인했다고 전해졌다.

인터넷 불법 도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05년 말 ‘바다이야기’ 광풍이 불면서 집중 단속을 펼친 결과 오프라인 도박장이 온라인으로 옮겨간 형국이다. 이에 경찰청은 10월 18일부터 11월 17일까지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집중 단속해 1681명을 입건하고 729개 도박 사이트를 폐쇄 조치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하지만 경찰의 단속 의지와는 별개로 인터넷 불법 도박 사이트는 여전히 인터넷 바다에서 순항 중이다.

기자는 인터넷 도박 사이트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보기 위해 게임물등급위원회에서 모니터링하고 있는 불법 도박 사이트에 접속했다. 회원 가입을 하기 위해 운영자가 만든 불법 도박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했다. 게임방에 입장하면 바카라는 4개로 분활되어 있는 화면이 나온다.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딜러의 모습, 게임 테이블, 승률 확인 화면 그리고 우측 하단에는 채팅창이 달려 있다. 실시간으로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딜러의 옆에는 이 나오는 TV가 설치되어 있다.

주소를 찾아 들어가 본 결과, 바카라·포커·맞고·릴게임(바다이야기 종류)·경마 등 다양한 종류의 게임이 있다. 즉 오프라인에서 할 수 있는 도박이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도박서 돈 따는 것은 불가능”
게임 화면을 보면서 궁금한 것이 입금을 국내 은행 계좌로 하는 것과 운영자의 연락처(이메일이나 휴대전화 번호)가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국내 계좌라면 수사해서 운영자를 잡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기획수사팀 박찬엽 경위는 “화면에 노출되어 있는 계좌는 대부분 대포통장을 이용한 것”이라며 “노출된 연락처 역시 대포폰을 이용하기 때문에 수사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캡처한 사진. 인터넷 도박은 바카라·릴· 포커·맞고·경마 등 오프라인에서 할 수 있는 도박을 모두 구현하고 있다.

인터넷 불법 도박 사이트를 감시하는 대표적인 곳은 3곳이다. 게임물등급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다. 게임물등급위원회는 모니터링한 자료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나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수사 의뢰나 차단 의뢰를 요청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수사를 의뢰하거나 각 ISP업체에 차단 요청을 할 수 있다.

게임물등급위원회 사후지원팀 강소라씨는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 왜 빠지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처음에는 돈을 따게 하기 때문”이라며 “그때부터 사행심에 빠지는데, 인터넷 도박으로 돈을 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요즘 인터넷 도박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바다이야기 등의 아케이드 시장을 강력하게 단속하면서 인터넷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고 덧붙였다.

인터넷 불법 도박 사이트는 최근 부쩍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게임물등급위원회가 본격적으로 모니터를 시작한 5월부터 모니터 건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도박정보 심의현황 자료를 봐도 도박사이트에 대한 조치가 늘어났다. 2005년 시정 요구 건수는 224건에 불과했지만, 2006년 3572건, 2007년 4027건, 2008년 10월 현재 4176건으로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차단해도 운영자들은 우회로를 이용하면서 계속 운영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나 사이버테러대응센터 등의 기관이 KT나 하나로 등의 ISP(Internet Service Provider·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를 통해 사이트 접속 폐쇄 조치를 내려도 프록시 서버(proxy server·다른 네트워크 서비스에 간접적으로 접속할 수 있게 해주는 네트워크 서비스)나 서브 디렉토리 등의 우회로로 운영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불법정보심의팀장 한명호씨는 “많은 도박 사이트가 도박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배포하고 있다”면서 “이 프로그램에는 프록시 서버와 속도를 올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어서 도박하는 데 별 지장이 없도록 해놓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프로그램 서버를 동남아시아 섬에 두는 경우도 많고, 운영자들이 국내와 해외를 오가면서 활동하기 때문에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이트 차단해도 우회로 운영 지속

전문가들은 오프라인 도박보다 인터넷 도박이 더 무섭다고 지적한다. 인터넷 도박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이버 공간이 갖는 다양한 특성 때문에 중독 문제에 매우 취약한 도박 유형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도박 게임 이용자의 심리사회적 특징’이라는 논문에서 경상대 이민규 교수(심리학과)는 “인터넷 도박은 개인의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질 수 있어 시공간적 제약을 거의 받지 않으므로 접근성과 가용성이 가장 높은 수준의 도박이다”면서 “업무나 학업 등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충남대 김교헌 교수(심리학과) 역시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 때문에 자기 조절에 실패하기 쉽기 때문에 도박 중독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또 인터넷 도박은 게임의 승률을 높이는 사기성과 사이트에 공시한 승률을 조작하는 불법성을 전혀 감독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서울대 간호대학 이지영 교수도 “인터넷 도박이 심각해지고 있지만 아직은 구체적인 조사나 자료가 부족한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박찬엽 경위는 “인터넷 도박 시장의 전체 규모가 1조 원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와 있고 단속 실적도 늘어나고 있다”면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것도 도박에 빠지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국내의 대표적인 ISP업체들은 사이트 차단을 좀 더 강력하게 하기 위해 장비를 도입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한명호 팀장은 “지난해부터 장비 도입을 준비해왔는데, 올해 말이면 대표적인 ISP업체는 설치가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장비를 도입하면 지금보다 훨씬 강력하게 차단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법이 정의하는 도박과 도박죄

형법 제246조와 제247조가 도박에 관한 조문인데, 도박죄는 ‘재물로써 도박한 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한다. 단 일시 오락 정도에 불과한 때에는 예외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습도박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도박개장죄에 대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즉 상습도박이 도박개장죄와 마찬가지로 중한 죄로 인정되는 것이다.

2008년 10월 ‘내기 골프의 도박성’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를 살펴보면 ‘도박의 의미는 재물을 걸고 우연에 의하여 재물의 득실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에서 ‘우연’이라는 것은 주관적으로 당사자가 확실히 예견 또는 자유로이 지배할 수 없는 사실에 관하여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다. 경마나 경륜의 경우에는 특별법으로 허용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명절에 친지나 친구와 함께 소액의 화투를 치는 것은 일시 오락 정도에 불과해 도박죄가 되지 않는다.

법원은 어디까지 놀이고, 어디까지 범죄인지 구별하기 위해서 도박자의 사회적 지위 및 재산 정도, 판돈의 규모, 그 밖에 도박에 이르게 된 경위 등 모든 상황을 고려한다. 인터넷 도박 역시 형법 246조에 의거해서 처벌받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심의국의 한명호 팀장(법학박사)은 “판례를 종합해보면 4가지 요건이 충족되면 인터넷 도박죄와 도박개장죄가 성립한다”면서 “4가지 조건은 재물성, 우연성, 환금성, 영리성”이라고 설명했다. ▲재물성은 무통장 입금이나 휴대전화 결제 등을 통해 현금이나 사이버머니를 도박에 재물로 거는 것을 말한다. ▲우연성은 우연적인 승부인 것을 말한다. 어른과 아이의 팔씨름처럼 결과가 뻔한 것은 우연성이 아니다. ▲환금성은 승부를 통해 누적된 금액이 현금으로 환전되거나 금전적인 가치가 있는 것으로 교환되는 것을 말한다. ▲영리성은 사이트 운영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느냐 마느냐를 말한다. 대부분 사이트가 사용자에게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도박개장죄가 성립한다.

인터넷 도박 사이트 운영자의 수익은 어떻게 될까. 법원은 수익금을 회수하기 위해 추징금이나 몰수보전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