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경이만난사람]“뇌로 세계평화 이룬다”

이승헌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총장(55)을 인터뷰하며 세 번 놀랐다.

첫째 그는 도무지 ‘티’를 내지 않았다. 단학 창시자, 전세계에 400만 회원을 거느린 단체의 지도자, 대학원 총장, 지난해만 국내외에서 2400억 원이 넘는 수입을 올린 기업체의 경영인 등 그의 숱한 직함에 어울리는 카리스마·엄숙함·신비함 등으로 자신을 연출하지 않았다. 편안한 니트스웨터 차림이어인지 그는 마치 ‘당신의 풍요로운 노후를 보장해드립니다’란 카피의 보험광고에 나옴직한 넉넉한 중년신사였다. 눈빛 역시 ‘섬광이 번뜩이는’ 것이 아니라 마냥 평화롭기만 했다.

둘째 그는 ‘쉬운’ 말만 썼다. 단학과 천부경에서 최첨단 ‘PET-MRI’(뇌영상 장비)에 이르기까지, 또 복잡한 뇌의 구조를 설명하면서도 참 쉽고 간결하게 표현해서 지적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게 했다. 유난히 어려운 전문용어나 외국어를 구사하는 이들과 인터뷰할 때면 손과 머리에 쥐가 나고 돌아서면 막막하기만 하다. 물론 이 총장의 철학과 이론을 완벽히 이해했다는 뜻은 아니다.

셋째 그는 지나치게 ‘솔직’했다. ‘깨달음’을 전파하는 명상가이며 이젠 세계적인 석학들이 존경을 표하는 학자이자 평화운동가니 자신의 과거를 적당히 신비하게 포장할 법도 하련만 과거나 현재도 별로 미화하지 않았다. “난 평범한 사람이다” “학교 때 숱하게 ‘땡땡이’를 쳤고 공부도 못해 나중에 겨우 야간대학에 들어갔다” 등의 과거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깨닫고 난 후에 ‘천부경’을 보니 이미 우리 조상들은 수천 년 전에 다 깨치셨더라”는 식이다. 심지어 “사이비종교 교주로 오해하는 이들도 있어서 은근히 걱정했다”란 말에도 “(그런데도 인터뷰를 하니) 굉장히 용감하구먼”이라며 웃었다. 그래서 더욱 ‘도사’ ‘지도자’ ‘세계적 사업가’ 등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되어온 그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평화롭고 평범하고 솔직한 중년신사

주로 미국 애리조나주 새도나의 일지명상센터에 머물던 이승헌 총장이 올 여름은 한국에서 시간을 보냈다. 7월 말부터 제주신문 초청세미나, 포항공대 강의 등으로 분주했고 뇌영상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조장희박사(가천의대)도 만났다.

조 박사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최고권위인 과학학술원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X레이, MRI, CT 등과 같은 선상에 있는 PET(양전자방출단층 촬영장치)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한국인 중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과학자로 꼽힌다. 지난해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 소장으로 영입된 조 박사가 올 3월 이 총장이 운영하는 뇌과학연구원과 공동연구협약을 체결했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눈으로 확인하고 실험으로 입증된 사실만 믿는 과학자가 어떻게 초자연적 명상과 뇌호흡을 전파하는 이 총장과 손을 잡았는지 의아했기 때문. 당시 기자회견에서 조 박사는 “지난 2년간 뇌과학연구원과 교류하며 많은 검정작업을 거쳐 HSP의 효과를 인정하게 됐며 흔히 ‘초과학’이라지만 단지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일 뿐, 열린 마음으로 더 연구하면 된다”고 말했다.
HSP(Hightened Sensory Perception)란 고등감각인지력. 뇌의 인지기능을 고도로 훈련시키면 인간의 오감을 뛰어넘은 그 이상의 감각이 발현되어 눈을 가리고도 책을 읽고 색깔을 알아낸다. 지난 4월 코엑스에서 열린 제1회 국제브레인HSP올림피아드는 그런 훈련을 받은 학생들이 총출동한 행사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조 박사는 하버드의대, 독일 지멘스사 등의 협조를 얻어 첨단영상기기를 도입해 명상과 HSP의 세계를 신경과학적·물리학적으로 구명할 예정이다.

“20년에 걸친 임상결과 100명에게 뇌호흡훈련을 시키면 25%의 사람에게서 HSP능력이 생기고 집중력·기억력·창의력 등과 더불어 심신안정과 체력증가 등의 부수적 효과가 향상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뇌호흡이란 수련을 통해서 자신의 뇌속에 들어가는 정보를 깨워 뇌세포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겁니다. 뇌속의 정보와 감정을 통제하는 단계를 거치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가 아니라 누구나 수련만 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HSP, 즉 건강(Health), 행복(Smile), 평화(Peace)로운 뇌를 개발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뇌를 가진 사람들은 살인이나 전쟁을 하지 않겠지요. 뇌를 잘 다스리는 것은 개인의 행복이고 국가경쟁력이며 결국 세계 평화의 지름길입니다.”

한심하게 행동해서 ‘무뇌아’라고 욕먹는 이들도 있지만 인간은 누구나 뇌가 있다. 가장 중요한 생명기능에서부터 고차원적인 인지기능까지 모든 것을 관장하지만 우리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기 때문에 평소 우리는 뇌를 잊고 살아간다.

이젠 식욕을 자극하는 것도, 수많은 정보를 척척 기억해내는 것도, 잔혹한 살인계획도 모두 뇌가 지령하는 일임을 과학자들이 밝혀내고 있다.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최근 ‘우리는 왜 사랑하는가’란 책에서 둥둥 떠다닐 듯한 행복의 극치를 맛보게 하고, 목숨까지 거는 숭고한 사랑조차 우리 뇌에서 슬쩍 분비하는 호르몬의 영향임을 임상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쭈글쭈글한 회색의 뇌속에 천국과 지옥, 악마와 천사가 공존하며 멍청하고 게으르게 살거나 지혜롭고 성실하게 사는 것 역시 뇌가 선택하는 일. 뇌영상을 촬영하면 분노에 가득 찬 사람과 주변이 평화로운 사람은 뇌모양이나 빛깔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 총장은 뇌가 우리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뇌의 주인임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뇌를 다스려 타인에 대한 친화력과 호감을 기르는 것이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입니다. 또 뇌를 어떻게 활용하고 두뇌감각을 어떻게 깨우냐에 따라 일상의 정보처리를 훨씬 더 생산적이고 창조적으로 할 수 있죠. 그러려면 뇌의 물리적인 느낌을 느끼고, 뇌의 에너지를 느끼고, 마지막으로 뇌를 드나드는 정보들을 의식하는 3단계 훈련이 필요합니다. 생각만이 아니라 물리적 자극을 주고 몸을 움직여 가며 체조를 하고 운동을 하는 것은 뇌의 감각을 깨우는 좋은 방법입니다. 몸과 정신을 함께 써야 진정한 효과가 납니다.”

세계적 석학으로부터 ‘뇌전문가’로 인정받고 수백만 단학 수련자들에게는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는 이승헌 총장. 스스로도 ‘한심한 청춘’이었다고 고백했고,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공원에 나가 ‘사람들과 놀아줬다’는 그가 이렇게 변모한 비결은 뭘까.

우리의 정신문화를 파는 벤처사업가

그는 1950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다. 몸이 약하고 소심한 아이였단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한번쯤 회의를 품다가 그냥 덮어두는 ‘나는 왜 사는가’란 의문을 어릴 때부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것. 열네살 때 가기 싫다는 친구를 설득해 동네 저수지에 수영하러 갔다가 친구가 물에 빠져 죽은 후 그는 죽음의 의문과 공포에 빠졌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데 왜 살아야 할까. 난 왜 이 세상에 태어났고 나는 누구인가”
그런 생각만 하니 공부를 열심히 할 이유도 못느꼈다. 당연히 성적은 엉망. 교장이던 아버지는 혹시 아들 공부에 도움이 될까싶어 우등생인 친구와 함께 하숙을 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친구에게 ‘어차피 죽을텐데 공부는 왜 하냐’고 물어대 오히려 그 친구를 염세주의자로 만들어 성적을 떨어뜨렸다. 대학시험도 번번이 떨어졌다. 약한 몸 때문에 배운 태권도만 즐겁게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산소에서 대성통곡을 하셨다. 막연히 할머니가 죽어서 슬픈 것이 아니라 한심한 자식 때문에 우신다는 것을 느꼈다. 자식노릇하며 효도 한번 해보자고 결심, 야간대학에 들어가 임상병리를 전공했고 결혼해서 아들도 둘 낳았다. 20대 말에 고서점에서 ‘태극권’이란 책을 만지는 순간, 전기에 감전된 듯 강렬한 기운을 느꼈다. 그후 새벽 4시에 일어나 명상도 하고 몸수련도 했다. 어떤 경전을 읽어도 막힘 없이 의미가 들어왔지만 ‘왜 사는가’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태권도장을 운영하며 모은 돈으로 집을 사서 아내에게 주고 그는 모악산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21일 동안 먹지도 자지도 눕지도 않고 죽음의 경계까지 가는 극한 체험을 했다. 어느 순간 머리가 터져나갈 듯한 고통과 공포를 느꼈고 생명에 대한 애착까지 놓아버리자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란 물음에 ‘나는 천지기운이다’란 말이 흘러나왔다. 깨달은 것이다.

그가 아픈 이를 만지기만 해도 나았다거나 흐르는 폭포를 거슬러 올랐다는 전설적인 일화, 한때는 ‘미륵’이라고 불렸다는 소문도 있다. 그런데 그는 깨달음을 얻은 거룩한 성자, 심심산골의 은둔자가 아니라 보통 아저씨 모습으로 살던 동네로 다시 돌아왔다. 깨달음을 나누고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거창하게 표현하면 삶에 대한 의문이지만 어릴 때부터 뇌에게 말을 걸고 뇌와 논 거죠. 그런데 머릿속에서 폭발이 일어난 듯한 깨달음의 순간에 뇌회로에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걸 알았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강력한 에너지에 의해 뇌가 순간적으로 진화했다고나 할까요. 내 육체가 아닌 어느 곳에서 어떤 힘이 나를 완전히 컨트롤하는 우주의 뇌가 내 뇌와 연결되었음을 느꼈습니다. 내가 숱한 수련법을 개발했지만 창조자는 아닙니다. 우리 뇌는 우주정보의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된 터미널과 같아서 정보창고를 열어 꺼내오면 되거든요. 저는 자기 몸속에 갇혀 그런 세계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천지기운을 전달해주기만 하는 겁니다.”

마냥 굶거나 면벽 묵언수행 등 온몸을 혹사하는 고행수련이 아니라 내 뇌만 잘 움직여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이승헌 총장의 복음에 금방 행복해졌다. 그런데 그건 또 쉬운 일인가.

그가 깨달은 것은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깨달아서 얻은 천지기운을 주변에 알리고 나눠 온 몸으로 실천하는 것. 그의 깨달음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우리의 홍익인간 정신과 일치한다. 그래서 그는 단학을 현대적으로 연구보급하는 데 앞장섰고 거액을 들여 ‘국학원’을 건립했으며 우리의 시조인 단군상을 만들다가 엉뚱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국내에선 ‘사이비’로 비난받기도 했으나 하버드대, MIT대 등에선 그를 초청해 강의를 듣고 그의 책 ‘힐링소사이어티’는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가 깨달음을 얻은 25년 전, 안양 한 공원에서 만난 중풍환자를 시작으로 그는 현재 400만명 이상에게 천지기운을 전하며 인간사랑·지구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해마다 1000명의 지도자를 배출하는 미국 애리조나 새도나에 일지명상센터를 비롯, 세계 6개국에서도 ‘휴먼테크놀로지’로 포장된 뇌호흡을 수련하는 이들이 온몸과 뇌로 대한민국의 창조정신을 깨우친다. 그이야말로 우리의 정신문화를 파는 벤처사업가이고 한류의 주역이다. 그를 대신해 단월드 경영을 책임지는 차동훈 대표는 “2015년까지 전세계에 3만6000개의 단센터를 설립, 1억 명의 지구인을 양성할 계획”이란다. 맥도날드만큼 많은 센터를 통해 우리 정신문화를 팔고, 전세계 평화공동체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너무 평화롭게 자신의 철학과 어린시절 이야기까지 전하던 이승헌 총재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별로 건강이 안 좋아 보이는군요. 뇌의 편도가 많이 부풀어 있어요. 아마 스트레스도 심하고 여러 가지를 많이 참은 것 같은데… 몸도 움직이고 뇌도 수련 좀 하세요. 우리가 뇌와 몸의 주인인데 그렇게 방치하면 안 되지요.”

유인경이만난사람

정말 그랬다. 항상 잔머리만 굴리고 천박한 정보로만 가득 채운 나의 뇌, 삼보일배 고행은커녕 ‘삼보탑승’으로 조금도 움직이려들지 않는 나의 몸에 너무 죄스러웠다. 내 몸과 뇌에 진심으로 사죄한 후 협박도 했다. “주인만 믿지말고 알아서 똑똑하고 창의적인 뇌, 건강하고 날씬한 몸으로 거듭나거라….”

<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