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의 눈]통치와 정치의 조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좋은 정치가 통치 성공의 필요조건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새롭게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통령이 통치와 정치를 조화시키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새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자못 크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최근(2월 1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직무 수행에 대해 ‘잘 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77.2%로 높게 나온 것이 이를 입증한다. 하지만 이러한 장밋빛 기대는 기형적인 새 정부 출범으로 그 빛이 바래고 있다. 새 정부의 조직 개편 협상이 ‘해양수산부 폐지-여성부 존치’를 접점으로 극적으로 타결됐으나 새 정부 출범 후에도 참여정부 장관들이 자리를 지키는 불편하고 어색한 동거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왜 신·구 권력 간의 해괴한 동거가 발생한 것일까. 여야가 4월 총선을 의식해 한치의 양보도 없이 힘겨루기를 해서 상황이 악화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권에서 종종 목격되는 통치와 정치에 대한 인식의 부조화다. 통치와 정치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둘은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통치(governance)는 국정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정책을 결정, 집행하는 행위에 비중을 둔다. 반면 정치(politics)는 국민의 다양한 여론을 수렴하고, 정책에 대해 민심의 반응을 살피는 더욱 포괄적인 개념이다. 만약 대통령이 통치에만 신경 쓰고 정치를 무시하면 독선과 독재에 빠지기 쉽다.

과거 군부 통치 시절의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이러한 유형에 속했다. 억압과 배제를 근간으로 민의를 수렴하지 않고,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만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통치는 못하면서 정치만 잘 하려고 노력하는 대통령은 포퓰리즘에 빠질 개연성이 크다. 국민이 요구하는 성과는 만들어내지 못한 채 오로지 인기영합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정책에만 매몰되어 시간이 흐르면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된다. 민주화 이후 출범했던 일부 통치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번 정부 조직 개편안을 둘러싸고 이명박 대통령은 여론을 수렴하면서 끝까지 타협하고 협상하는 정치보다 국정 운영의 파행을 막는 통치에 더 많은 비중을 둔 것 같다. 결과적으로 정치는 없고 대치만 있는 불행한 사태가 연출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갖는 선입견은 통치는 잘 할 것 같은데 정치는 잘 할지 확신이 안 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치를 못하면서 통치를 잘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러한 선입견은 현실화될 수 없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좋은 정치가 통치 성공의 필요조건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새롭게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통령이 통치와 정치를 조화시키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김형준의 눈

‘폭력’을 양산하는 사회

KSOI가 이명박 새 정부에 가장 우려되는 점에 대해 질문한 결과 ‘충분한 수렴 없는 무리한 정책 추진’이라는 응답이 37.0%로 가장 높게 나왔다.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강력한 추진력과 성과 중심의 리더십을 지향하면서 정치보다 통치에 매몰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 이명박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졌다. 국민의 우려와 불안을 불식시키고 성공하는 정부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고 통치 못지않게 정치를 중시해야 한다. ‘탈여의도 정치’를 잘못 해석해 정치를 혐오하며 멀리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탈여의도 정치의 본질은 정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제 모습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김형준<명지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