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금주의 눈]‘폭력’을 양산하는 사회

현대 사회가 무감각한 폭력을 양산하는 데 적합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경쟁 위주 사회에서는 일상에서 느끼는 억압과 좌절감이 쉽게 공격성으로 연결된다.

지난해 이맘때 미국 대학 내에서 일어난 한인 대학생의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별다른 인연도 원한도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무감각한 폭력성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도 이유 없고 예측 불가능한 폭력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올봄에는 연약하고 방어 능력이 없는 아동이나 여성을 상대로 한 끔찍한 범죄로 사회 전체가 들썩였다.

이런 범죄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뚜렷한 동기 없이 자행된다는 점에서 더욱 경악스럽다. 특히 다른 정신질환과 달리 사회생활을 하는 데 무리가 없어 주변 사람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가운데 일말의 죄의식 없이 이렇듯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반사회적 성격장애자, 사이코패스들에 주목하게 된다.

이들은 분노 때문에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는 심리학적 주장이 있다. 주기적으로 끔찍한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온 남성들의 생리적 반응을 조사해보면, 폭행을 가하는 순간 이들의 심장 박동 수는 높아지기보다 오히려 낮아진다고 한다. 이들은 남을 공격할 때 그 어느 때보다 침착해진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더 고통스럽게 할 수 있을지, 그래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자신에게 굴복시킬 수 있을지 얼음처럼 차가운 판단을 할 뿐이다. 한 예로 21명의 노인과 여성을 살해한 유영철의 경우 범행을 위해 해부학 책까지 구해서 독학하고, 시신을 훼손할 때 비장한 클래식(반젤리스의 ‘콜럼버스 1492’)을 들었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시를 썼다고 한다.

또 사이코패스는 다른 사람의 정서에 대한 신호를 잘 처리하지 못한다. 슬픔 혹은 고통이 담긴 표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공격적 행동을 억제하고 멈추도록 만든다. 그러나 이런 정보를 입력, 처리하는 대뇌 부위에 이상이 있으면 얼굴 표정이 보내는 신호에 무감각해지고 자신의 공격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며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이런 특성은 상당히 일찍부터 나타날 수 있다. 실제 서구에서는 사이코패스 성향이 의심되는 아동이 저지른 살인 사건이 여러 번 발생했다. 지루함을 못 이겨 이웃 아동 3명에게 총을 난사한 16세 소녀, 사람이 익사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옆집의 3살짜리 아이를 물에 빠뜨리고 의자에 앉아 죽는 모습을 관찰한 9세 소년 등이다. 심리학자 에이드리언 레인(Adrian Raine)은 어린 나이에 사이코패스의 전조로 나타나는 특성을 연구했다. 3세에 얼마나 공포 반응을 많이 보이는지, 스트레스 상황에서 부정적 정서를 잘 통제하는지 측정하고 25년 후 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사이코패스 성향을 살펴보았다.

곽금주의 눈

그 결과 어렸을 때 공포 자극에 대한 반응이 적고 자기 통제를 잘 못할수록 이후 더 강한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러한 성향이 발현되는 데는 무엇보다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사이코패스에 의한 범죄가 증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로 현대 사회가 무감각한 폭력을 양산하는 데 적합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경쟁 위주 사회에서는 일상에서 느끼는 억압과 좌절감이 쉽게 공격성으로 연결된다. 특히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사회 모든 분야가 돈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잠깐 뒤처지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낙오자가 되어 버리는 분위기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 사회의 일상화된 위협, 폭언, 무시와 방임 등 억압된 공격성의 표출은 모두 ‘폭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목적을 위해서라면 별다른 죄책감 없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은 아닌지, 암암리에 그런 행동을 용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