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성공 키워드]‘엉뚱한 반항아’ 신정환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신정환의 애드리브는 방송 작가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라고 평가받는다. <경향신문>

방송에서 상호 신뢰와 각자의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 존재한다면, 제아무리 ‘설정’ 상황이라도 서로 기싸움에 혈안이 되어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덜할 것이다. 얼마 전 신정환이 KBS <해피투게더>에서 보여준 박명수와 ‘막말 방송’은 비록 재미를 위한 ‘설정’이라고 하지만 분명 불량하고 무책임한 면이 있다. 막말과 딴지 걸기, 트집잡기식 개그의 정수란 그런 것이었을까.

‘설정’일수록 해피엔딩이 필요하다
방송 초기에는 설정에 충실한 상황 연기였을지 모르겠으나 방송 후반부에서는 표정에 확연히 불쾌함이 드러났다. 방송 후 시청자들은 일제히 신정환을 비난했고, 실시간 방송을 보고 있던 필자는 신정환을 이해하는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넘치면 부족함보다 못하다더니, 재능이 자신의 발을 옭아맨 덫이 된 격이랄까. 화면을 이용해 사적인 감정을 드러낸 그날의 방송은 시청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게다가 그의 표정을 이해받기에는 시청자들이 속속들이 속사정을 모르지 않나.

정서적 부부 같다던 탁재훈이 “그러니까 네가 메인 MC가 아닌 거야”라는 치명적인 한마디를 퍼부었을 때, 그 전까지 (아마도) 설정으로 일관했을 신정환의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 유머의 소재로 툭 내던지는 말로 하기에는 뼈가 있는 그 말에 신정환의 심사가 뒤틀렸던 것일까. 이참에 ‘그만 참고’ 방송을 이용해보겠다는 심산이었을까. 계속해서 개그라고 하기에는 아슬아슬한 말에, 주변 진행자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이후 연이어 이어지는 질타에 대해 신정환 자신도 모 시상식장에서 “사람들을 웃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저 웃자고 보는 프로그램에서 설정 이상의 긴장을 읽게 했던 신정환. 이 사건을 계기로 한 번쯤 자신의 방송 태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이가 한결같이 고분고분한 방송 태도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자신의 함량은 생각하지 않고, 남을 비방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막말 방송을 연출할지라도 마지막만큼은 포용하고 ‘화해’로 장식하는 미덕을 갖추시기를.

훗날 설정이었다고 제작진의 말을 빌려 해명 기사를 낼 게 아니라 <해피투게더> 클로징에서라도 설정이었다고 웃으며 본인의 연기가 어땠냐고 능청을 떨기라도 했다면 이런 질타를 안 받을 텐데.

평소 신정환에 대한 감정은 중복 출연에, 그 위치마저 비슷비슷하더라도 ‘하는 말마다 어쩜 저렇게 웃길까’, 신기할 따름이었다. 방송가 중복 출연의 딜레마에 가장 큰 피해자인 제작진 입장에서도, 신정환식 개그감각이 영특하고 기발해서 모든 걸 용인할 참이었다. 깔끔하게 진행하는 진행자는 많아도 적재 적소에 기발한 양념을 치는 진행자는 손에 꼽힌다.

다른 약재의 효능을 두 배로 만들어준다는 ‘감초’, 말 그대로 신정환만큼 기특한 감초가 또 있을까. 깊이는 차치하고라도 “요즘 미는 게 뭐야”라고 묻는다면, “너 밀어버릴거야”라고 즉각 응수하는 데서 웃음을 주는 재치 있는 입담. 좁은 어깨와 광대를, 거의 인신공격 수준으로 매번 지적당해도 자연스레 웃음으로 되돌리는 순발력. 무겁던 분위기를 단숨에 웃게 만드는 상황대처 능력. 독설의 대가 김구라까지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엉뚱함. 물론 말장난에서 그치는 엔터테이너가 아니라 노래도 춤도, 충실한 그였다.

신정환 특유의 엉뚱함은 시청자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 한때 그가 좋지 않은 일에 연루되어 연예가에서 제명 위기에 빠졌을 때도 “신정환이 제일 웃기니 제발 은퇴만 하지 말아 달라”던 누리꾼의 구명운동이 있을 정도였다. 그처럼 든든한 ‘백’이 있는데, 신정환은 노력만 하면 승승장구 앞날이 보장된 연예인 아니었던가.

‘태클’보다는 ‘성실’로 승부하기를

MBC <라디오 스타>의 멤버들. 왼쪽부터 김국진, 윤종신, 김구라, 신정환. | MBC 제공

문제아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범생도 아닌데, 가만히 두면 왠지 불안불안한 존재. 어린 시절, 반듯반듯한 운동장 안의 규격화한 줄에 맞춰 학생들을 세워놓아도, 꼭 한두 명씩 줄을 이탈하는 말썽꾸러기 친구가 있다. 많이 벗어나지도 않으면서, 꼭 선생님이 지정해준 자리에서 한 뼘씩 비껴갔던 친구들. 신정환(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탁재훈까지)의 이미지가 그랬다.

성실하게 제작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논외로 두고 제작 방향을 짤 수도 없는 상대. 신정환은 제작진에게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10년도 더 거슬러올라가, ‘컨추리꼬꼬’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 <스타데이트> 편을 준비하던 제작진의 말이다. “몰래카메라를 준비하고, 사전 논의에서 충분히 논의하지 않은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가, 그들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제작했다는 이유로 하마터면 소송까지 갈 뻔했다”고.

이후 필자도 컨츄리꼬꼬의 토크쇼를 제작하려다가 중간 과정에서 지쳐 포기한 적이 있다. 소속사의 문제인지 두 멤버의 불화설에 따른 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꽤 여러 단계의 협상을 거쳐 애만 먹고 접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 해가 더 지나 드디어 KBS <체험, 삶의 현장>을 통해 그들을 만났을 때 도대체 왜 그랬냐고 물어볼 참이었다.

그런데 직접 신정환을 마주하고 있자니, 그는 너무 지쳐 있고 침울한 표정이었다. 안쓰러웠다. 질문은커녕 다정하고 살갑게 인사 한 번 못하고 녹화에 들어갔지만, 카메라 앞에서 기가 막히게 또 한 번 ‘웃겨’줬다. 역시 개그 DNA를 타고난 모양이다. 혹은 타고난 ‘프로’였거나.

신정환식 개그가 너무 웃겨서, 혹은 신정환 ‘ 때문에’ 프로그램을 시청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신정환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예능작가 최모씨는 “신정환의 뇌세포를 사후에 보존하고 싶을 만큼, 그 재치의 원천이 궁금하다”는 말을 남겼다.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멘트는 당대 최고의 예능작가도 따라갈 수 없었다는 얘기.

톱스타 성공 키워드

그가 이제는 배꼽 빠지게 웃기는 데서 그치지 말고 조금 더 노련함을 발휘해, 상대방의 결점까지 감싸안는 경지에 오르면 좋겠다. 십수 년 함께 해온 주변 지인들이 한결같이 신정환을 보고 “고맙다”고 말하는 걸 보니 꽤나 인간적인 면모도 있는 것 같다. 숨겨진 미담도 여러 차례 밝혀지지 않았나. 그러니 이제 엉뚱함 그 자체만 몰두하지 말고. 못살게 깐죽(?)대더라도 마지막엔 제일 먼저 손 내미는 훈훈한 방송인이 되길.

<남미영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