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탁이 만난 사람]“자연 다큐에서 연출하면 국제 망신 ”

새 박사 윤무부

새들이 먹이를 찾아 부산하게 움직이면 며칠 뒤 비가 온다. 항구에 괭이갈매기가 몰려오면 어김없이 태풍이 닥친다. 종달새가 하늘 높이 올라가 울면 얼마간 날씨가 좋다. 비오는 날에는 새들이 짝짓기를 하지 않는다. 기상청 예보를 듣지 않아도 이렇게 새들의 움직임만 보면 조류학자 윤무부 박사(68·경희대 명예교수)는 날씨를 감 잡을 수 있다. 새가 날씨와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평생동안 지켜보아온 덕분이다.

윤 박사의 삶에서 새는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다. 새에게 빠져 새와 동고동락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고, 새를 쫓아다니며 새처럼 훨훨 나는 인생을 꿈꿨다. 그래서인지 윤 박사의 얼굴에는 어린아이 같은 순진무구함이 배어 있다. 억센 주름살 사이로 맑고 깨끗한 영혼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는 만나는 이들에게 옛날 훈장들이 자기처럼 공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조두(鳥頭·새대가리), 이보다 더 못한 사람을 계두(鷄頭·닭대가리)라고 했다며 농담을 한다. 실제로 새와 무관한 일에 대해 그의 기억력은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새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으면 결코 잊는 법이 없다.

한때 우리는 TV 화면에 새들이 퍼드득 날아오르는 장면이 나오면 조건반사적으로 “곧 윤무부라는 새 박사의 해설이 뒤따르겠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만큼 윤 박사는 새에 관한 한 거의 독보적인 존재이다. 그런 윤 박사의 얼굴이 한동안 TV에서 사라졌다. 2006년 12월 뇌경색으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그는 2개월쯤 병원에 누워 있었으며, 일어난 뒤에도 1년가량 제대로 걷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도 새를 보아야 한다는 일념이 있었기 때문인지 빠른 회복세를 보여 올해 들어서는 강연도 다니고 탐조(探鳥)활동도 다시 시작했다.

최근 윤 박사는 KBS 환경스페셜의 일부 장면이 조작됐다는 놀라운 의혹을 제기했다. 담당 PD는 “조작이 아니다”고 부인했으나 KBS는 감사에 착수했다. 시청자들은 “자연 다큐멘터리를 조작하다니 실망이다”는 쪽과 “윤 박사가 공연히 트집 잡는 것”이라는 쪽으로 갈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윤 박사는 자기 주장에 얼마나 확신이 있기에 그처럼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을까. 이번 주 ‘이종탁이 만난 사람’이 윤 박사를 찾아간 것은 이 문제를 포함해 그의 새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서다. 인터뷰는 지난 7월 27일 서울 동대문구 윤 박사 자택에서 있었다.

그의 안내를 받아 들어선 곳은 109㎡(33평형) 짜리 주공아파트다. 발을 들여놓으면서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유명 교수 집치고 너무 좁은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 공간에 그의 50년에 걸친 연구 성과물이 쌓여 있다. 전국을 누비며 찍은 새 사진 60만장, 동영상 필름 1300여 다발, 새소리를 담은 녹음테이프 320종이 일련번호와 함께 책장에 빼곡이 진열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새는 모두 이 방 안에 있다”는 게 윤 박사의 설명이다. 여기에 수십 개의 카메라와 새소리를 채집하는 집음기(集音機) 등 고가장비가 방과 마루에 즐비하다.

이렇게 귀중한 자료를 집에 두어도 괜찮습니까. 찾기도 어렵고, 혹시 문제라도 생기면 어떡하죠?
“자료마다 번호를 매겨두었고, 또 내 머릿속에 다 있으니까 괜찮아요. 나중에 아들에게 물려주어야죠. 당초 이 새소리를 가지고 세계 유일의 인터넷 박물관을 만들어 볼까 했는데 내 고향인 거제시 관계자들이 와서 한동안 검토하더니 재미가 없다며 외면하더군요.”

아드님이 미국에서 새 연구를 한다던데 공부를 마칠 때가 된 모양입니다.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조교 생활을 하고 있는데 올해 안에 박사 학위를 받나 봐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새를 보러 다니고 커서도 새가 좋다고 하더니 이제 연구자로서 공인(公認)을 받는 것이지요.”
윤 박사의 아들 종민씨가 박사가 되면 국내 최초의 새 박사 부자(父子)가 탄생하게 된다. 애써 수집한 자료를 남이 아닌 아들에게 떳떳하게 물려줄 수 있어 기쁘다는 표정이 윤 박사 얼굴에 역력하다.

갑자기 쓰러져서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건강은 어떻습니까.
“자동차 운전을 하면 안 된다고 해 어디 갈 때 아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을 빼면 큰 문제가 없습니다. 어제도 귀한 새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부여에 내려가 촬영을 하고 왔습니다. 동영상을 찍어왔는데 한번 보실래요?”
그러면서 화면에 비춰주는데 천연기념물인 붉은배새매다. 새끼 두 마리가 둥지에서 앙증맞게 노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찍혀 있다.

이런 모습을 어떻게 카메라에 담습니까.
“둥지 가까운 나무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새에게 들키지 않는 곳에서 원격 조종합니다.”

사람이 다가가면 새들이 놀라지 않나요.
“어미가 화장실에 간다든지 해서 없을 때 살그머니 설치합니다. 새들도 하루종일 집에만 있지 않거든요.”

KBS 환경스페셜 제작진도 그렇게 기다려서 촬영을 했을텐데,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저는 한눈에 알 수 있어요. 평생을 했잖아요. 우선 수리부엉이에게 불빛을 비추는 상식 이하의 장면이 있어요. 그리고 토끼가 움직이질 않아요. 다시 보니까 묶어놨어요. 토끼는 낮에 활동하고 밤에는 가만히 자거든요. 그런데 자는 애를 깨워서 묶어 놓았더라고요. 또 중간에 내가 NHK에서 본 장면이 나오는 거예요. 자료화면이라는 설명 없이 그렇게 하면 안 되거든요.”

윤 박사가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환경스페셜 가운데 지난 3월 5일 방송된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 등 2편이다. 수리부엉이 편은 3년에 걸쳐 제작했다고 해 특히 화제가 됐고, 시청률도 13.3%로 높았다. 당시 내레이터는 “수리부엉이가 과연 날쌘 토끼를 사냥할 수 있을까. 제작진은 그 장면을 생생히 목격했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그 토끼가 묶인 상태였다는 것이다. 담당 PD도 토끼를 묶어 놓은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수리부엉이의 사냥술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세트를 설치하고 먹잇감으로 유인해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한다.

“새는 환경에 아주 민감해요. 개발이 되면서 새가 많이 사라졌어요. 옛날에는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새가 무척 많아요. 안타깝죠.”

제작진은 “밤에 활동하는 동물의 사냥 장면을 포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런 세트 촬영은 불문율이고 관행이다. 영국 BBC에서도 그런 식으로 촬영하지만 시청자들에게 그 과정을 낱낱이 알리지는 않는다”고 항변합니다. 박사님이 그걸 모르실 리 없을텐데 왜 문제삼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런 관행은 없어요. 내가 BBC 것을 포함해 세계 각국의 다큐멘터리 DVD를 500여 개 가지고 있는데 어디서도 못봤어요. 만약 있다면 증거를 대라고 하세요. 그러면 내가 (그 방송사에) 연락할 거예요. 그건 큰 문제예요. 국제 망신이에요. 세계에 다 나가는데 야단날 거예요.”

그러면서 윤 박사는 뜻밖의 테이프 하나를 틀어 보여줬다. 환경스페셜 제작진이 문제의 수리부엉이를 촬영하는 모습이 담긴 테이프이다. 어떤 PD가 윤 박사에게 공(空) 테이프로 쓰라고 주고갔는데 틀어보니 공교롭게도 문제의 촬영 장면을 찍은 필름이었다는 것이다.

“저것 보세요. 토끼를 묶어놓고 왔다갔다 하잖아요. 수리부엉이가 토끼를 사냥하러 땅으로 내려오는 장면을 찍어서 컴퓨터로 몇 번이나 편집합니다. 자세히 보면 토끼가 묶여 있어 수리부엉이가 채 가지를 못해요. 내려왔다 올라갈 때 발에 아무것도 없잖아요. 이것도 조작하는 거예요.”

이런 관행이 있다면 윤 박사의 문제 제기로 우리는 다큐멘터리 세계의 은밀한 속살을 처음 알게 되는 셈이다. 그렇더라도 묶인 토끼를 ‘날쌘 토끼’라고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아무튼 KBS가 감사를 벌인다고 했으니 이에 대한 감사 결과를 지켜보도록 하자. 이 논란은 이 정도에서 접고 다른 화제로 넘어가자.

따오기를 중국에서 들여온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셨잖아요. 왜 잘못입니까. 멸종한 새를 복원하면 좋은 것 아닌가요.
“따오기는 우리 환경에서 살 수 없어요. 이미 새 장에서 몇 대를 살았기 때문에 면역이 약해요. 먹이도 없고 천적도 없어요. 한마디로 복원이 불가능한 겁니다. 국민 세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면 결정하기 이전에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조류학자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중학교 윤리교사 말만 듣고 들여오면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중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했군요. 이명박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했는데 실제 써 보냈습니까.
“그렇죠. 그랬더니 환경부 사무관하고 경남도청의 과장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청와대에서 그쪽으로 넘긴 모양이에요. 그래서 올 봄에 (편지를) 다시 보냈는데 이번에는 아무 반응이 없어요. 그래서 다시 또 쓸 생각이에요.”

비둘기를 유해조수로 지정한 것에 대해서도 잘못됐다고 비판했는데 그건 왜 그렇습니까.
“비둘기가 많다고 하는데 사실은 많지 않아요. 몇 군데 모여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겁니다. 예전에는 많았는데 먹이도 안 주고 물도 안 줘서 (개체수가) 줄어들었어요. 비둘기가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근거도 희박해요. 그런 기록도 없고 논문도 없어요.”

비둘기가 모여 있는 곳에선 골머리를 앓는 게 사실이잖아요.
“그렇다고 평화의 상징을 잡아 죽입니까. 비둘기를 쫓으려면 비둘기가 앉는 곳에 판자를 비스듬하게 놓으면 돼요. 그러면 앉지를 못해 그곳에 못 옵니다. 이에 앞서 유해조수로 지정된 까치도 그래요. 영천의 한 사과농장에서 까치 때문에 피해가 크다고 연락이 와 가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보니까 까치가 먹은 사과는 몇 개 안 돼요. 까치 피해라면 부리로 쫀 자국이 있어야 하거든요. 프랑스에선 포도밭에 늑대나 여우가 와서 따먹어도 다 그냥 놔둡니다. 위(胃)가 요만한 짐승이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어요. 좀 여유가 있어야지요.”
새가 인간을 조금 불편하게 하더라도 웬만하면 감수하고 함께 사는 길을 찾자는 뜻으로 들린다. 새 박사의 진한 새 사랑이 느껴지는 말이다.

언제부터 새를 좋아했습니까.
“고기잡이 하는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 아버지는 저에게 저 새가 괭이갈매기다, 바다찍박구리다 하며 가르쳐 줬어요. 그때부터 새를 좋아하게 되었죠. 초등학교 4학년 때 성적이 50명 중 41등이었어요. 공부는 안 하고 새만 보러 다녔죠. 고무신이 닳아 다 떨어지도록 산으로, 들로 쏘다녔어요. 하루는 무척 예쁜 새를 발견했지요. 그게 후투티였어요. 그 새를 보면서 평생을 새와 함께 살겠다고 결심했어요.”
윤 박사의 명함에는 배경으로 후투티가 찍혀 있다. 후투티는 예전에는 흔했으나 지금은 보기 드문 새다.

TV에 나와 새에 대해 해설하시는 것을 볼 때마다 품은 의문이 있는데 이 기회에 질문해도 될까요. 순식간에 하늘로 올라가는 새를 보고, 또 비슷비슷한 새 소리를 듣고 어느 새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평생을 했는데 그걸 왜 몰라요. 새 그림자만 보아도 무슨 새인지 다 알 수 있어요.”

그럼 눈 가리고 새 소리 테이프를 틀어줘도 맞힐 수 있나요.
“물론이지요. 다 알아요.”
이 대목에서 취재진이 “외람되지만 정말 해봐도 되겠느냐”고 묻자 윤 박사는 흔쾌히 수락했다. 320여 개 테이프 가운데 하나를 윤 박사가 볼 수 없도록 하고 골라 틀었는데 ‘오대산 굴뚝새’라며 정확히 맞혔다.

평생 새를 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습니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많이 찾는다는 간단한 진리예요. 사람도 성공하려면 부지런해야 해요. 나는 아프기 전에는 새벽 3~4시에 일어났어요. 요즘은 6시에 일어납니다. 또 하나, 높이 날기 위해선 몸을 가볍게 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새에겐 방광이 없어요. 노폐물이 생기면 몸 밖으로 바로 배출합니다. 버려야 산다는 거죠.”

50년 동안 새를 지켜보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무엇입니까.
“새는 환경에 아주 민감해요. 개발이 되면서 새가 많이 사라졌어요. 옛날에는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새가 무척 많아요. 안타깝죠.”

이종탁이 만난 사람

새 보금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대운하에 반대한다고 한 적이 있는데, 4대강 사업은 어떻습니까.
“1990년대에 강릉 경포호에서 원형 보전을 한다며 바닥 퇴적물을 3m가량 파헤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갯벌의 썩은 물이 나와 물고기들이 죽었어요. 이곳에 고니가 2000마리쯤 왔다갔다 했는데 그 이후 한 두 마리밖에 안 와요. 4대강 정비한다며 바닥을 준설하면 마찬가지예요. 새들을 쫓아내는 거예요. 생태 전문가에게 자문도 하지않고 자연환경을 염두에 두지 않는 4대강 사업에 나는 반대합니다.”

<글·이종탁 출판국 기획위원 jtle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