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탁이 만난 사람]해운대 영화감독 윤제균

“천만명 돌파요? 천운에 달렸죠”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 <해운대>가 또 하나의 기록을 향해 쾌속질주 중이다. 지난 7월13일 개봉한 이후 연일 관객을 부르더니 14일 현재 825만명을 넘어섰다. 그동안의 흥행 추이를 감안하면 8월20일을 전후해 1000만명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관객 1000만명 고지에 오른 영화는 여태껏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 등 4편밖에 없다. <해운대>가 1000만명을 넘긴다면 한국 영화 사상 다섯 번째, <괴물> 이후 3년만의 기록이 된다.

<해운대>는 12세 이상 관람이 가능한 영화다. 우리나라에서 12세 이상 인구는 3950만명. 이들 중에는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만사 제치고 극장으로 달려가는 열혈 영화인도 있지만 죽을 때까지 극장 근처에도 가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영화 보기를 친구와 밥 한 끼 함께 먹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기 전에는 절대 지갑을 열지 않는 사람도 있다. 1000만 관객이란 이런 다양한 집단을 통틀어 4명 중 1명이 보았다는 얘기다. 뜨거운 여름철, 그것도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런 인파를 부르는 작품이라면 그 자체로 경외의 대상이 될 만하다.

흔히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한다. 다른 장르와 달리 종합예술인 영화에서는 지휘자의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뜻이다. <해운대>를 만든 윤제균 감독(40)은 어떤 지휘를 어떻게 했기에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이번주 ‘이종탁이 만난 사람’이 윤 감독을 찾아간 것은 영화제작의 그 막전막후를 들어보기 위해서다. 인터뷰는 관객이 750만명을 넘어 역대 흥행순위 9위에 랭크되던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있었다.

우선 축하드립니다. 요즘 이런 인사 많이 받으시죠? 인터뷰하느라 바쁘실 것도 같고요.
“예, 태어나서 이렇게 인터뷰를 많이 해보긴 처음이어서 정신없습니다. 얼떨떨합니다.”

영화가 대박날 것이라고 예상했나요.
“보신 분들에게 실망감을 안겨드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 호응해 주실 지는 몰랐습니다.”

어떤 점이 성공요인이라고 보시나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외형상 할리우드 못지 않은 블록버스터이면서 내용에선 할리우드 영화에 없는 사람 냄새가 난다는 점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관객들이 좋아하고, 이런 대형 작품을 우리도 만들 수 있다는 데 또한 만족해하는 것이죠.”

영화 전문가들의 평점은 인색한 것 같습니다.
“제가 흥행 위주 감독이라고 해 언론이나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말을 별로 못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칭찬을 많이 해 주시네요. 개인적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인정받는 날이 오겠죠.”
윤 감독이 이렇게 에둘러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데뷔작인 <두사부일체>를 비롯해 <색즉시공>, <1번가의 기적> 등에서 놀랄 만한 흥행 성공을 거뒀지만 영화계에선 그를 상업적 코미디에나 능한 ‘쌈마이’(일본 가부키에서 우스꽝스런 역을 하는 조연급 배우) 감독쯤으로 치부했다. 영화계 주류에 끼워주지 않은 것이다. <해운대>도 영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재난 영화라면서 재난은 안 보이고 코미디만 보인다”, “재난 영화가 아니라 영화가 재난이다”는 등의 악평이 나돌기도 했다. 물론 이런 악소문은 개봉 후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윤 감독이 “개인적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이라고 한 것은 당시의 섭섭함을 여유있게 표현한 것이다.

1000만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갈 것으로 보나요.
“1000만 고지라는 것은 감독으로서 평생 한 번 올까 말까한 기회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하늘이 내린다고 생각합니다. 천운에 달린 것이지요. 설령 1000만에 못미친다 해도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영화계에 의미있는 사건을 만들어 냈다는 데 만족합니다.”

영화 촬영 과정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초대형 쓰나미 장면을 어떻게 찍었나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규모가 큰 것은 컴퓨터 그래픽(CG), 작은 부분은 특수세트를 만들어 실제 촬영해 조합했어요. CG는 할리우드에서 소스를 가져와 한국 CG업체 컨소시엄에서 완성했고, 특수촬영은 하나 하나 배워가며 제 손으로 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경험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국내 모든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도 파도치는 바다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답이 안 나왔습니다. 풀장 세트를 만들고 파도를 발생시키려면 얼마나 큰 수조(水槽)가 있어야 하느냐에 대해 누구는 지름 10m의 공간이 필요하다, 누구는 50m는 돼야 한다며 갑론을박하는 거예요. 가로·세로 50m짜리 특수세트 짓는데 땅 파고 콘트리트 치고 방수처리 하려면 3개월에 10억원이 든다고 해요. 그런데 미국에 알아보니 우리 돈으로 1억원도 안 든다는 거예요. 그럴리가 하며 못미더워하니까 중간에 소개해준 사람이 무조건 오라고 해요.”

실제 가 보니 어떻든가요.
“할아버지 한 분이 조수 한 사람을 데리고 주차장으로 가요. 거기에 반지름 10m 정도의 원을 그려 말뚝을 박고는 양철판을 잇대어 둥근 모양의 담을 쳐요. 담장 안에 두꺼운 비닐을 깔고 블루메트를 두른 뒤 물을 붓는 거예요. 그러고는 다 됐다고 해요. 세트가 너무 허접한 것 아니냐고 했더니 ‘캐리비언 해적’, ‘퍼펙트 스톰’과 같은 영화를 그렇게 찍었다는 겁니다.”

어렵게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간단하더라는 얘기네요.
“그렇죠. 일종의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것이었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쉬운데 해본 적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렇게 배워와서 찍었죠. 이제는 할 수 있습니다. 계약서에 기술 이전 부분을 넣어 가져왔기 때문에 국내에서 필요한 누구에게도 다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왜 비싼 돈 주고 미국 가서 미국 사람과 CG 만들었느냐’고 하는데, 참 억울합니다.”

촬영 장소를 구하는 데도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스토리 주 무대인 미포항의 시장통 가게를 보고 세트라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 횟집입니다. 그 미포항이 참 절묘한 곳이에요. 카메라 앵글을 왼쪽으로 조금만 돌리면 고층 빌딩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조금만 돌리면 영락없는 어촌이에요. 촬영 장소를 물색하다 우연히 그곳에 발길이 닿았는데 보는 순간 ‘바로 여기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장소 섭외에 들어갔는데 할머니 열 분이 횟집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어 한 분 한 분 설득해 모두의 동의를 받는 데 꼬박 석달이 걸렸습니다.”

“국내 모든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도 파도치는 바다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답이 안 나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일종의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것이었어요.”

<해운대>를 본 사람은 짐작하겠지만 윤 감독은 초·중·고교를 부산에서 나온 부산 토박이다. 해운대 밤바다를 사랑하고, 롯데 야구를 응원하는 부산갈매기다. 영화에서 뜬금없이 야구경기 장면이 나오는 것도 그의 야구사랑 때문이다.

“제가 롯데 골수 팬이거든요. 이대호 선수가 나오는 장면이 극의 전개 흐름과 별 상관없다고 지적하는데, 저는 어떻게든 꼭 넣고 싶었습니다.”

그가 자기 멋대로 영화 속에 집어넣은 것은 또 있다. 연희(하지원 분)네 횟집 상호를 피천득의 호를 따 ‘금아’(琴兒)라고 지은 것이다. ‘금아횟집’이란 간판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세 번 나오지만 클로즈업되지는 않아 보통 관객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윤 감독의 제작 의도가 함축돼 있다.

“시나리오를 쓸 때 우연히 수필가 피천득의 글을 읽었는데 ‘인생이란 작은 인연과 오해를 풀기 위해 사는 것’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어요. 여기에 필이 꽂혔죠. 재난을 다루되 재난 그 자체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통해 감동을 주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금아횟집’은 이 영화를 상징하는 핵심 키워드인 셈이다. 이런 중요한 단서를 살짝 감춰 놓은 것이다.

관객들이 그걸 알아차릴 것이라고 생각했나요.
“호기심이 좀 발동했죠. 감독 중에는 그런 상징물을 감춰 두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거든요. 저도 그런 셈인데, 개봉 3주가 됐을 때 누군가 용케 찾아내 인터넷에 올렸더군요.”

재난영화이면서 재난 장면은 마지막 40분밖에 나오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었군요.
“그런 셈이죠. 저는 할리우드 영화의 구성 틀을 따라가기가 싫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에는 계산된 플롯이 있어요. 약-중-강으로 고조되면서 꼭 영웅이 등장하죠. 제 영화를 할리우드에서 만들었다면 메가 쓰나미를 예고한 김휘 박사(박중훈 분)가 영웅으로 그려졌을 거예요. 그러나 저는 한 사람의 영웅보다 다양한 사람의 관계가 감동을 준다고 보았죠. 그래서 재난 장면을 뒤로 밀고 사람 관계를 먼저 그린 겁니다. 그 바람에 재난 분량이 적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분량은 <노잉>이나 <투모로우>와 비슷합니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셨죠? 어떻게 쓰게 됐나요.
“처음 구상한 것은 2004년 동남아 쓰나미를 보면서였습니다. 100만 인파가 몰리는 해운대에 저런 쓰나미가 오면 어떻게 될까 생각했죠. 그래서 고교 친구와 같이 써보자 마음 먹고 작업에 들어갔어요. 우선 해운대 피서객과 인근 주민들을 상대로 인터뷰부터 했습니다. 그렇게 200커플 이상의 스토리를 수집했어요. 이를 벽에 붙여 놓고 토론하면서 하나씩 줄여나갔습니다. 기자 커플, 배달원 커플, 경찰관 커플 등이 붙었다 떨어졌죠. 마지막으로 남은 게 해운대 주민 커플(설경구·하지원), 재난전문가 커플(박중훈·엄정화), 피서객 커플(최형식·강예원)이었어요. 등장 인물이 많으면서 딱히 주인공이 없는 극본은 그래서 만들어진 겁니다.”

시나리오는 얼마만에 완성했나요.
“2년 정도 걸렸습니다. 탈고하고 난 뒤에도 20번쯤 고쳤거든요. 투자사가 제 원고를 가지고 일반인을 상대로 모니터하는데 여기서 높은 점수를 받을 때까지 계속 고쳤습니다. 시나리오에 목숨을 걸었죠.”

그래서 130억원이 드는 제작비 투자도 받아낸 건가요.
“그것 받는 데 또 1년이 걸렸습니다. 재난영화를 우리나라에서 만들 수 있겠느냐, 코미디 감독이 그걸 만들 수 있겠느냐 하는 불신 때문이었죠. 투자자 입장에서 그런 걱정을 하는 거 당연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동영상으로 콘티를 제작해 세 차례 프레젠테이션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을 감독이 직접 하는 경우는 아주 드문 예입니다. 그런 열정과 진정성이 투자자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합니다.”

윤 감독은 열정과 진정성이라고 했지만 그의 영화 인생은 거짓말 같은 기적의 연속이다.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LG애드에 다니던 1998년 8월 그는 한 달 무급휴직을 하게 된다. IMF 때 흔히 있던 전 직원 순환 휴직이었다. 넉 달 전에 결혼해 10평짜리 반 지하방에서 신혼살림을 하던 그는 “돈 없이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글을 썼다. 자기 얘기를 일기식으로 적은 시나리오 ‘신혼여행’. 그런데 이게 태창흥업 공모전에서 대상을 탔다. 시나리오는 물론 학교 다닐 때 이렇다 할 습작 한 번 해보지 않은 그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전까지 정말 단 한 번도 시나리오를 써 본 적이 없습니까. 처음 써서 대상을 탄다는 게 가능한 얘기입니까.
“영화를 보기는 많이 보았지만 시나리오를 쓴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시나리오는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희곡을 다 배우잖아요. 영화는 대략 120신으로 구성됩니다. 이게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다섯 단계로 나눠지죠. 여기에 맞게 줄거리 쓰고 발단 15신, 전개 20신 하는 식으로 나눈 다음 일상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있는 그대로 적으면 그게 시나리오입니다. 그래야 리얼하니까요.”
신혼여행이 다른 사람 손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는 두 번째 시나리오를 썼다. 그게 <두사부일체>다.
“이번에는 시나리오는 통과됐는데 감독을 찾을 수 없었어요. 한 달이 지나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해보겠다고 했죠. 경험은 없지만 데모판을 만들어 한 달 동안 쫓아다니며 설득했더니 믿어주더군요. 그렇게 감독에 ‘잇뽕’(영화계에서 데뷔를 뜻하는 일본식 은어)했습니다.”
남들은 몇년씩 감독 뒤따라다니며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그는 숨 한 번 안 쉬고 건너뛰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데뷔작에서 관객 330만명이라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종탁이 만난 사람

영화는 종합예술인데 견습과정 없이 곧바로 감독을 할 수 있나요.
“모르는 것은 숨김없이 인정하고 하나하나 묻고 또 물었어요. 모든 스태프에게 존댓말을 썼죠. 그리고 정말 잘해 보려고 하는데 도와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진정성을 보였더니 통하더라고요. 감독은 마스터가 아니라 디렉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만든 5편의 영화 중 4편을 흥행에 성공했으니 돈을 많이 벌지 않았을까. 팬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을 생략할 수 없다.
“많은 사람이 물어보는데요, <두사부일체> 때 얼마 받은 줄 아세요? 연출료로 2000만원 받은 게 전부입니다. 그 영화 투자사는 20억원 벌었는데도요. <해운대>는 그와 좀 다른 구조지만 저의 전체 수입을 직장인의 연봉에 비춰 생각하면 대기업의 차장보다 조금 밑도는 수준일 겁니다.”

<글·이종탁 출판국 기획위원 jtle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