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OI의 여론스코프]일본 대중의 ‘변화 열망’

지난 일본 총선은 그야말로 정치적 쓰나미였다. 54년 동안의 자민당 독주 체제가 허물어졌다는 것이 그렇고, 창당한지 고작 13년 된 민주당이 압도적인 과반 의석을 차지한 것이 그렇다. 정치에서 영원한 승자도, 불변의 체제도 없음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그동안 일본은 아시아의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지목돼 왔지만 사실상 자민당 1당의 보수 독점체제가 이어져 왔기에 민주주의 공고화 측면에서는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민주주의 국가라 하면 선거경쟁이 있어야 하고, 그 결과가 사전에 정해져 있으면 안 된다. 선거 결과의 불확실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담 프셰보르스키는 소수파가 선거경쟁을 통해 다수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그 민주주의가 지속가능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일본은 구체적인 의석비율까지는 아니지만 자민당이 제1당이 된다는 선거 결과를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고, 이것이 변한다는 생각도 거의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라고 보기는 힘든 면이 있었다. 새뮤얼 헌팅턴은 정권 교체가 2, 3회 있어야 민주주의 공고화로 이행될 수 있다고까지 했으니 이 때문에라도 일본을 섣불리 민주주의 선진국가로 부르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집권정치세력의 교체를 가져왔고, 일본에서도 소수정치세력이 다수정치세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대중의 변화 열망은 그렇게 강한 것이다. 그 어떤 조직력도 자금력도 대중의 마음을 이기지 못한다.

흥미로운 것은 여당이 된 일본 민주당이 한국의 정치 상황을 보면서 참고할 만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이번 일본 민주당의 돌풍은 지난 2004년 총선에서의 열린우리당을 기억나게 한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집권당이기는 했으나 선거 전에는 의석수가 불과 47석에 불과했다. 그러나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국면과 겹치면서 열린우리당은 과반 의석을 차지하게 됐다. 표에서 보듯이 선거 전후 열린우리당과 일본 민주당의 의석수를 보면 양쪽 모두 어마어마한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민주당 돌풍은 열린우리당과 흡사
당 내부 모습도 그렇다. 열린우리당도 당내 구성원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지금 일본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이다. 공산당에 가까운 이념을 지니고 있는 정치인도 있고, 자민당 출신의 보수 정치인도 수두룩하다. 당 대표인 하토야마 유키오 역시 자민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인물이다.

열린우리당은 정당 기율이 흔들리면서 분열과 내부 갈등으로 지지도가 곤두박질쳤다. 변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담아내는 데 실패했다. 보수세력의 정치 공세에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일본 민주당 역시 우려되는 바다. 구성원들의 다양성과 노선의 일치를 조화시킬 수 있을지, 변화를 갈구하는 대중의 바람을 담아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보수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이겨낼 수 있을지.

두 번째 일본 민주당 내부적으로는 한나라당을 보면 유익할 듯 싶다. 권력의 정점에는 늘 한 사람만 앉게 되어 있는 법이다. 2명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나라당에는 이른바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동거하고 있다. 바로 친이와 친박이다. 이들 세력간 갈등이 해소된다고 보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골이 깊다.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표면적인 갈등은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지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일본 민주당을 들여다보면 현 대표인 하토야마가 있고, 선거의 귀재라고 불리는 오자와 이치로가 있다. 실제 당내에는 오자와 인맥이 상당하다. 중의원과 참의원을 합하면 120명에 이를 정도다. 하토야마와 오자와 간의 갈등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KSOI의 여론스코프

일본 민주당이 정권교체를 이뤘다. 그러나 이런 급격한 변화는 위험한 요소도 많다. 대중의 높은 기대치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대중의 냉소로 돌아올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과거 열린우리당과 현 한나라당이 향후 일본 정치를 읽는 데 유용한 렌즈가 될 것 같다.

<윤희웅 | KSOI 정치·사회조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