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눈]“정치권, 너나 잘하세요!”

강기갑, <PD수첩>, 박근혜, 정운찬, 정몽준, 장광근, 민주당, 국민참여당…. 지금 나열한 이름들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 갈등 구조를 상징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갈등 없는 사회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 존재하는 갈등들이 우리 사회의 성숙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인지는 반문하고 싶다.

지금 문제가 되는 정치권과 사법부, 행정부와 사법부 사이의 갈등만 봐도 그렇다. 한 번쯤 법적 일을 치러본 사람은 그런 경험을 했겠지만 항상 자기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항소하고, 또 그런 이유 때문에 사법체계는 모든 이에게 세 번의 기회를 주고 있다. 그런데 지금 법원의 판결을 두고 ‘이념적 판결’이라고 말하며 사법부 개혁을 주장하고, 대법원장을 비난하고, 심지어 판사를 탄핵 소추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판결의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은 사안을 보는 시각과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엄연히 항소라는 제도를 두고 있고, 실제 항소를 함에도 이런 주장들이 나온다면 독립된 주체로서의 사법부의 권위는 상당 부분 훼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이라는 근본적 제도로부터 파생되는 갈등은 역시 제도적 절차에 의해 풀어가야 한다.

이 뿐만 아니라 지금 여당 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야당들끼리의 갈등 역시 사회적으로 불필요하다. 여당 내에서 일어난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세종시 문제라는 정책을 둘러싼 문제 같아 보이지만 그 내면을 보면 당권, 더 나아가 대권을 둘러싼 투쟁에 불과하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갈등 역시 야권내 헤게모니, 더 나아가 대권의 역학구도와 관계있는 갈등이다. 이렇게 보면 여당 내의 갈등이나 야권 내의 갈등의 공통점은 모두 헤게모니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의 본질이 권력 추구라고는 하지만 권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권력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당연히 있어야 할 사회적 갈등의 해소라는 측면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런 종류의 갈등은 한국사회의 성숙을 위한 불가피한 갈등이라기보다 한국 사회의 성숙을 방해하고 지연시키는 갈등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종류의 불필요한 갈등이 다른 중요한 사회적 갈등의 해소 기회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성숙을 위한 필수적 조건은 바로 제도에 대한 권위의 인정이다. 자신의 입장에 따라 제도를 인정하거나 부인하고 또 고치려 든다면 그 사회의 제도적 권위는 점점 추락할 수밖에 없다. 행정중심 도시에 관한 특별법 문제도 그렇고 오늘날의 사법부 판결에 대한 문제들이 바로 그런 예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상황을 정치권이 오히려 부추기고 있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정치권이 사회적 갈등의 해소가 아니라 사회적 갈등의 증폭에 기여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고,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당연히 제도적 권위는 약화될 뿐만 아니라 제도의 의미마저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 상태에서는 적나라한 헤게모니 투쟁만이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되며, 여기에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 설자리는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정치권이 주장하는 사법부 판결과 사법부 내부에 대한 문제 제기는 또 하나의 권력 추구 목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 정치권이 추구해야 할 것은 스스로의 위상 정립과 이에 기반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즉 헤게모니 투쟁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 해소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자신들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못한데 사법부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정치권에 해 줄 말은 ‘친절한 영자씨’의 말밖에 없다. “너나 잘하세요!”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