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의 눈]일자리 창출, ‘수출 중소기업’이 정답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매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너무 당연한 일이다 보니 새로운 대책이 나온다는 자체가 새삼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인데도 왠지 속내가 마뜩지 않다.

이유는 문제 인식에 대한 관점 때문이다. 정부는 성장과 일자리를 위해 이른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주창해 왔고, 그 결과 기업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이 이뤄졌다. 소위 ‘기업 활동의 발목을 잡는 것’은 속속 폐지되거나 개정됐으며, 심지어 범법 기업인에 대한 파격적인 사면까지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정부의 러브콜을 외면하고 있다. 그야말로 짝사랑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기업정책이 수출 대기업 위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역 의존도가 무려 80%에 육박하는 나라다. 그러니 수출 대기업을 육성하는 것은 우리나라 성장에 있어 결정적인 요인이다. 아무도 이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당장 2009년 말 현재 삼성·LG를 비롯한 수출 대기업의 실적은 사상최고치를 기록했고, 그 결과 우리 기업이 세계적인 유수의 기업들을 물리치고 속속 글로벌 리더의 지위를 굳히고 있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자긍심과 실속은 별개 문제다. 지난 세월 ‘수출’ ‘성장’ ‘고용’은 항등식이었다. 1970년대 이후 기업의 수출이 늘어나면서 속속 공장이 지어지고 그만큼 일자리가 증가했다.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은 누구나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사회적 기회는 기업 성장과 더불어 점점 더 늘어나는 선순환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신화는 지나간 역사에 불과하다. 2000년대 들어 수출 대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기업이 속속 해외에 현지 공장을 건설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현지에 생산시설을 지어 관세 부담을 줄이고, 저임금 국가에 생산기지를 건설함으로써 변동비(인건비)를 줄이는 전략으로 돌아섰다. 성장하는 기업에는 외국인의 지분 참여가 늘어났고, 그들의 요구는 순이익을 늘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적 없는 자본에 애국심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설득한다는 것도 그야말로 낭만에 불과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국내에 기회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국내에 공장을 짓거나 고용을 늘렸다는 소식을 들어본지 이미 오래다. 유럽·미국·중국에 대규모 투자가 속속 발표되고, 그곳에 많은 고용을 창출함으로써 감사패를 받았다는 소식이 자랑스럽게 들려 오는 상황은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입장을 역설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현대차의 선전은 김연아의 우승과 다르다. 현대차의 해외공장은 현지에 세금을 내고, 현지 고용을 늘리며, 현지 투자를 확대할 뿐이다.

박경철의 눈

결국 일자리에 대한 해법은 ‘수출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것뿐이다.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굳이 현지에 공장을 지을 필요가 없거나 아직은 그럴 여유가 없는 중소기업들이 수출을 늘리도록 도와줌으로써 비로소 성장과 고용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즉 국내 기업이 성장해 글로벌 톱 플레이어가 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인지 모르지만 국가적으로 보면 골다공증에 걸린 거인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우리나라를 기회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바깥으로 성장한 기업은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도록 두고, 작지만 강한 ‘강소기업’들이 새로운 스타로 발돋움하도록 집중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다. 바로 이러한 가능성이 중소기업으로 우수 인재가 모이는 선순환 구조의 동력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미래다.

<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