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가 만난 사람]“4년중임제 득보다 실이 많아요”

국회 헌법 개정 자문 활동을 마감하며 김종인 전 보건사회부 장관

대통령은 왜 하나같이 끝이 불행할까. 세상이 다 바뀌고 있는데 유독 정치만은 왜 옛날 그대로일까. 이런 의문을 품는 국민이 있다면 신문을 잘 안 보는 사람이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헌법 때문이다.

1987년에 만들어진 지금의 헌법이 문제가 많다는 데는 많은 이가 동의하고 있다.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로 대표되는 이른바 ‘87년 체제’는 민주화에는 크게 기여했지만 정치 발전은 그다지 가져오지 못했다.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되고 대선·총선·지방선거 시기가 일치하지 않는 등 헌법 체계에 중대한 결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백번 고치는 게 맞다. 실제로 그런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개헌 논의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내내 불거졌다 잠복하기를 되풀이한 정국의 뇌관이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개헌 필요성을 직접 제기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법기관인 국회는 23년 동안 헌법의 자구 하나 손대지 못하고 있다.

헌법을 왜 고쳐야 하는지, 어떻게 고치는 게 좋은지에 대한 답이 없어서가 아니다. 18대 국회 전반기에 가동된 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내놓은 모범답안도 있다. 지난해 8월에 발표한 연구자문보고서는 6·2 지방선거 이전이 적기라고 개헌 시기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국회는 개헌특위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전반기를 마감하게 됐다.

「Weekly 경향」 창간 18주년을 맞아 국회 헌법연구자문위원장인 김종인 전 보건사회부 장관을 만났다. 근사한 주제를 택하고 싶었는데 국가 체제와 국민 생활의 근간이 되는 헌법 문제를 다루는게 거기에 부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개헌 논의는 6·2 지방선거의 향배에 따라 정국의 표면으로 떠오를 수 있는 뜨거운 사안이기도 하다. 5월 18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대한발전전략연구원에서 만난 김 전 장관은 뜻밖의 말을 했다.

“개헌이 잘될 것 같아요? 6·2 지방선거 이전에 하는 것이 정치 일정이나 여러 가지를 고려해 가장 좋겠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얘기한 것이지 그게 되리라고 생각해 한 건 아니에요. 헌법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 자체가 근본적으로 정상이 아니에요.”

김 전 장관은 헌법과 묘한 인연이 있다. 헌법연구자문위원회에 위촉된 전문가 가운데 유일하게 경제학자다. 그런데 위원장을 맡았다. 민정당 의원 시절인 1987년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경제분과위원장으로서 지금의 헌법을 만드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자신이 참여해 만든 헌법을 20여 년 지난 뒤에 개정하기 위해 다시 연구·자문을 한 인연이 특별하다. 그런데 정작 개헌 문제에는 매우 냉소적인 입장을 보였다.

“헌법을 왜 개정합니까. 사회 변화, 세계 변화, 의식 변화에 맞춰 모든 국가 법률의 기초가 되는 헌법을 바꾸는 것 아니에요. 시대 변화에 따라 기본권을 어떻게 헌법 속에 구체적으로 반영할 것인가, 민주주의를 심화하기 위해 헌법이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느냐, 어떻게 법치국가로서 기반을 확고하게 할 것인가 등 이런 게 헌법의 기본 정신이고 요체란 말이에요. 그런데 까닥하면 이런 것과 관계없이 권력구조나 한번 바꿔 보자는 것 아니겠어요?”

김 전 장관은 기자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답변을 시작했다. 첫마디만 듣고도 질문의 의도를 파악할 정도로 문제를 꿰뚫고 있어서일까. 질문할 틈도 없이 그의 말은 계속됐다.

“대통령이 임기 말이 되면 무슨 아쉬움이 있는지 중임제니 원포인트 개헌 등을 얘기해요. 원포인트 개헌이라는 말 자체가 엄청나게 모순이 있는 거예요. 김형오 국회의장이 헌법 개정을 생각한 게 더 이상 불행한 대통령들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그게 왜 그렇게 됐겠어요. 단임제를 중임제로 하거나 이원정부제로 간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죠.”

헌법연구자문위원회는 권력구조와 관련해 제1안으로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권력을 분점하는 이원정부제, 제2안으로 대통령제 원형에 가까운 정·부통령 4년 중임의 대통령제를 제안한 바 있다. 김 전 장관은 이 두 가지 안을 다 부정했다. 문제는 권력 구조에 있는 게 아니라 대통령 스스로에게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헌법에 있는 권력구조가 나빠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된 게 아니에요. 그 권력 구조에 있는 사람이 지나치게 그걸 비민주적으로 생각하고 오용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죠. 대통령이 막강한 권한을 자제하려고 하지 않고 행사하려고 하니까 주변의 친인척도 거기에 영향을 받고, 그러다 보니까 전직 대통령이 불행하게 된 거예요. 그런 것 때문에 헌법을 고쳐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건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봐요.”

김 전 장관은 이원정부제에 대해서는 전문가 사이에서조차 오해가 있다고 말했다. 이원정부제 국가라고 하는 오스트리아·포르투갈·핀란드 등은 실질적으로 내각제인데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는 것이고, 프랑스는 이원정부제라기보다 막강한 대통령 권력 중심의 정부 형태로서 많은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크 랑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국제 심포지엄에서 프랑스 헌법은 절대 모방하지 말라고 충고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겨우 기회를 잡아 질문을 던졌다.

4년 중임제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별로 도움이 안 되겠네요.
“4년 중임제는 절대 하면 안 된다고 봐요. 물론 좋은 대통령이 나와서 8년까지 하면 나라로서도 좋을 수 있는데, 나쁜 대통령도 다 8년 하려고 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초기 4년 임기 동안에는 만날 선거운동만 하게 될 거예요. 거기서 발생하는 나라의 비용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주장하는 입장이에요.”

헌법과 인연이 많습니다. 1987년 개헌특위에서도….
“경제분과위원장 노릇을 했는데 그때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우리는 일을 하면 적당히는 못 하는 사람이죠. 사실 지금의 헌법을 만들 적에 여러 가지로 변화를 많이 가져온 거예요. 단임제라든가 헌법재판소가 그렇죠. 헌법재판소는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오늘날에 와서 기본권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잖아요. 국민이 헌법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도 일조하고요. 요즘 국회의원을 하는 정치인 가운데 헌법재판소나 법원 판결이 자기 뜻에 맞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를 없애려고 들고, 그 다음날로 사법개혁하자고 하는데 이런 정치 풍토에서는 헌법 개정이 제대로 될 수 없어요.”

이른바 ‘87년 체제’를 만든 지금의 헌법을 되돌아봤을 때 어떤 평가를 할 수 있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헌법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거듭 말하지만 나라를 이끌어온 사람들, 절대 권력을 쥔 대통령이 권력에 대한 탐욕이 너무 많아서 결국 다 불행해졌기 때문에 헌법 탓을 하는 거예요. 대통령이 임기 5년 동안 나라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간다고 겸허한 마음을 지녀야 해요. 정당에 재량을 베풀고 사법부를 존중해야 민주주의도 발전하고, 국민 기본권도 보장되고, 쓸데없는 불행도 겪지 않는 거지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헌법을 고쳐 놔도 소용없어요.”

국회 헌법연구자문위원장으로서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결과보고서를 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인 입장이군요.
“아니, 국회 자체가 여태까지 헌법특위도 구성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오늘날 정보라는 건 정부나 어떤 기관만 소유하는 게 아니라 국민도 다 갖고 있어요. 헌법을 개정하는 모습을 국민이 납득하지 않으면 국회의원 3분의 2의 의결을 거치더라도 국민이 받아들인다는 보장이 없어요.”

김 전 장관은 시대 변화에 맞게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재규정하고 글로벌 시대, 다문화 시대의 요구를 헌법에 포함시키는 개헌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만 이런 중요한 요소가 권력 구조 문제 때문에 헌법에 반영되는 길이 막히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개헌은 언제 가능하다고 봅니까.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원포인트 개헌을 한다고 해서 국회 본회의에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원포인트 개헌을 하려면 임기 말에 국민이 ‘아, 저런 대통령은 한번쯤 더 했으면 좋겠다’고 할 때 하라고 말이죠. 대통령이 임기 2년만 지나면 이미 국민에게서 떠나는데 억지로 하려면 뻔하잖아요. 사회 혼란밖에 날 게 더 있겠어요?”

김 전 장관은 노태우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으로서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 매각을 유도하는 5·8조치를 통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1987년 개헌특위 때는 재벌 규제가 가능하게끔 헌법에 근거 조항을 포함시켰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헌법 119조 2항이 그것이다.

재벌 경제에 비판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 소신을 갖게 된 배경이 무엇입니까.
“재벌에 비판적인 게 아니라 재벌이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고 본 거죠. 경제력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 영향력까지 갖게 된다는 것이에요. 정부가 사회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법을 만들면 위헌이라고 헌법재판소로 가져갈 것 아니겠어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최근에 만든 의료보험에 대한 법 있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헌법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거듭 말하자면 나라를 이끌어온 사람들, 절대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권력에 대한 탐욕이 너무 많아서 결국은 다 불행해졌기 때문에 헌법 탓을 하는 거예요.”

이미 1936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에 양원을 통과해 대통령의 사인까지 난 것 아닙니까. 당시 미국 이익집단이 위헌 소송을 제기해 위헌 판결을 받아 없어진 거예요. 80년 가까이 못 하다가 이제 겨우 했는데 이번에도 또 위헌 소송을 내는 것 아닙니까? 말하자면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해 그 조항을 둔 거예요.”

김 전 장관은 지금의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만든 의료보험제계를 입안한 공로자이기도 하다.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인 1975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근로자를 위한 종합대책을 수립하는 위원회에 참여했다. 미국에서도 어려운 의료보험제도를 우리나라가 일찍 실시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한 몫 했다.

“노사문제 등을 망라해 정책 건의를 하는 것이었으니까 당시로서는 그 논의가 지난한 일이 아니겠어요? 제대로 진행이 안 되죠. 그래서 이왕 하는 거니까 마지막으로 뭘 하나라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내놓은 게 의료보험이었는데 심한 논쟁과 우여곡절 끝에 박 대통령한테 보고했어요. 지금 모든 나라가 한국의 의료체제에 대해 부러움을 가지고 있잖아요. 내 아이디어 하나가 대한민국 백성이 돈 없어서 병원에 못 가는 일은 없게 만들어 줬으니까 지금도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김 전 장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제부총리 하마평에 오른 경제통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비서실장·국무총리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세제에 초점을 맞춘 부동산투기 억제책, 건설을 통한 경기 부양책, 금융규제 완화책 등 역대 정부의 정책에 대해 날선 비판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손자로서 할아버지 못지않게 강직한 성품이라는 평을 듣고 있으며, 경제 등 정책 전반의 높은 식견으로 여야를 넘어 ‘러브콜’을 받아 왔다. 최근 한 부동산 전문가는 “김종인 경제부총리 발탁 실패가 노무현 정권의 운명을 갈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 이래 인사가 있을 때마다 하마평에 올랐는데….
“그건 나하고 관계 없어요. 나는 그래요. 국민의 정부의 정식 제의를 받고 안 한 사람이지만 자리라는 게 일을 할 수 있을 때 가는 것이지….”

일할 여건이 안 되더라도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기여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일을 안 해 봤으면 모를까 일을 해 본 이상 그렇게 일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요. 보면 그래요. 저 사람들 무슨 용기를 갖고 저런 자리에 가나? 가서 하는 짓을 보면 한심한 거요. 그래서 나라가 발전이 안 돼요.”

이번 정부에서도 비서실장과 국무총리 후보로 거명됐잖습니까.
“아, 그건 자기네들이 그냥 모양새 갖추기 위해 떠들었던 거지. 나는 관심도 없고 신문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어요.”

자문을 구하지도 않습니까.
“자문은 무슨…. 자문을 구할 사람이면 나라를 이렇게 끌고 가지도 않겠죠.”

정운찬 총리의 정치적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사람 얘기는 하지 맙시다. 내가 보기에는 총리 돼 가지고 그리 행복한 것 같지도 않은데….”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습니까.
“지금 나이가 70이 됐는데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건 없고 다음 대통령 하나는 제대로 된 사람을 만들었으면 하는, 그 생각을 해요.”

어떤 사람이 대통령감입니까.
“아직은 눈에 띄지 않아요. 이번 선거 끝나고 올 가을쯤 가면 한두 사람씩 대통령 후보감이 튀어나올 거요. 그때 나름대로 엄정하게 평가해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전부 투입해 도와주려고…. 물론 본인이 그걸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겠지만…. 그 짓이나 하려고, 허허.(웃음)”

대통령감은 어떤 자질과 조건을 갖춰야 합니까.
“우선 안보에 대한 의식이 투철해야 해요. 그 다음에는 개방화 사회니까 글로벌 개념에 대한 인식이 철저해야 되겠죠. 또 나라가 굉장히 다양해졌어요. 세대 간, 지역 간 등등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돼요. 그리고 경제입니다. 경제라든가 투자·저축에 대한 개념이 뚜렷해야 해요. 마지막으로 나라 장래를 생각해야 하니까 교육에 대한 개념이죠. 이 여섯 가지 조건을 갖춘 사람이어야 해요.”

김 전 장관은 여기에다 우리나라의 특수성 때문에 특별히 주문하는 게 더 있다고 했다. 권력과 물욕에 대한 탐욕이 크지 않을 것, 주변이 복잡한 사람이 아닐 것, 이익집단과 연관관계가 없을 것 등 세 가지 조건이다.

신동호가 만난 사람

“다음에는 그런 사람이 나와서 한번쯤 나라의 질서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카테고리의 사람이 나타나면 우리 같은 사람이 헌신적으로 노력할 겁니다.”

<글·신동호 경향신문 기획위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