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가 만난 사람]“거창한 환경운동이 아니라 작은 실천부터”

환경운동가로 나선 시의원 하지원 에코맘코리아 대표

“원래 막히는 월요일은 대중교통 이용하고요, 불의 날 화요일은 에너지를 절약… 콘센트의 코드만 뽑아도 10%씩 (전기가) 절약되는 거 아시죠? 물의 날 수요일은 물 절약하고요, 나무의 날 목요일은 나무에 물 주고 나무로 만든 종이컵이나 종이 타월 아껴 쓰고요. 그 다음에 금요일은….”

어떻게 말을 하면서 얼굴에 웃음기가 잠시도 가시는 법이 없을까. 하지원 서울시의원은 미소가 타고난 듯하다. 아무리 진지한 얘기도 웃으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한 ‘날마다 기후행동’ 캠페인을 열심히 설명하면서 한순간도 미소를 거두지 않는다. 인터뷰 동안 사진 기자가 찍은 200여 장의 사진을 다 살펴보아도 정색한 표정이 한 장도 발견되지 않았을 정도다.

하 의원은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소속 의원이자 서울시 거버넌스 기구인 서울기후행동(CAP)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서울시를 환경친화적 도시로 만들고 생활 속에서 이산화탄소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아 국회 기후변화포럼에서 수여하는 ‘대한민국 녹색기후상’ 등 여러 상을 받았다.

지난 4월 19일 그는 환경운동가로 공식 데뷔(?)했다. 지방선거 출마를 포기하고 (사)에코맘코리아라는 단체를 만들어 대표직을 맡았다. 이날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창립식에는 이만의 환경부 장관과 최열 환경재단 대표 등 1000여 명이 참석했다. 정부기구(GO)와 비정부기구(NGO)의 환경 관계자들이 함께 참여해 성황을 이루기는 최근 들어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유엔이 정한 세계 환경의 날(6월 5일)을 맞아 이 색다른 환경운동가를 만나 보았다. 풀뿌리 정치를 하다가 뒤늦게 전업 환경운동가로 뛰어든 이력이 특이한 만큼 기존의 환경운동과는 다른 시사점이 있지 않을까 해서다.

첫 인상부터 다른 느낌이었다. 연분홍 재킷과 미색 주름 스커트를 입은 화사한 차림부터가 그랬다. 밝은 표정과 생기발랄한 말투에서도 때로는 투사가 돼야 할 환경운동가의 분위기를 읽을 수 없었다. ‘미소 짓는 환경운동가’와의 인터뷰는 5월 25일 오후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근처 서울시립미술관 앞뜰에서 시작됐다.

왜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았습니까.
“이산화탄소를 줄이려면 실천이 중요하잖아요. 서울시나 시의회에서 하는 건 한계가 있어서 에코맘코리아를 만들어 나간 거죠. 거기에 전념하려고요.”

에코맘코리아가 지향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에코맘의 맘이 엄마(mom)잖아요. 맘은 마음이기도 하고요. 가정에서부터 환경운동을 하자는 거죠. 모든 사람이 에코 마음이 될 때까지 함께 생각하고 실천하자는 뜻이에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그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은 것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합니까.
“시의원이 돼 제가 환경 쪽을 한다니까 주변에서 마구 말리더라고요. 환경하는 사람이 자동차를 타고 다녀? 옷을 저렇게 입어? 이런 식으로 지적받을 것 투성이라는 거예요. 저는 환경운동이란 게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무채색 옷을 입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버스만 타고 다녀야 되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벽이 높으면 사람들이 포기하게 되거든요. 자동차를 열 번 타던 사람에게 여덟 번 타게 만들고, 여덟 번 타던 사람에게 여섯 번 타게 만들고…. 그런 식으로 줄여나가는 게 중요해요.”

자동차도 필요할 때는 타고, 화장도 열심히 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그런 거죠. 99%의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환경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환경운동을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는 것이에요. 즐겁게 할 수 있어요. 집도 선선해야 오히려 건강해요. 감기도 안 걸리고요. 음식도 그래요. 수입품 같은 것보다 근처에서 나는 걸 먹는다든가 집 앞에 상추를 심어서 먹고…. 사람들이 환경 하면 지구를 살리는 일이라고 거창하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내 가족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에요.”
하 의원의 환경운동은 ‘작은 것부터 쉽고 즐겁게’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이 참여하게 되면 작은 것이 모여서 큰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2007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제13차 당사국총회(COP13)에 다녀와서 CAP를 만들었다. 에코맘코리아의 모태가 된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CAP의 탄생 과정과 활동 내용을 보면 앞으로 에코맘코리아가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가늠할 수 있다.

CAP(캡)을 만든 직접적인 동기가 무엇입니까.
“COP13에 갔다 와서 느낀 바가 있었어요. 한국은 맨 높은 사람끼리 회의하고 기업인하고만 토론해요. 서울에는 공장도 없잖아요. 집이랑 사무실, 교통 부문이 이산화탄소 배출의 70%거든요. 개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높은 분들끼리만 얘기하니까 서울에 있는 사람들은 기후변화가 바로 자신의 문제인지 모르는 거예요. 그저 북극곰이 죽는 걸로만 생각하는 거죠. 모든 시민이 함께하고 즐겁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행동(action)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쉽고 즐겁고 재밌게 할 수 있습니까.
“이름부터 쉽게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CAP(Climate Action Partnership)이 라고 했어요. 캡이 모자잖아요. 뜨거운 지구의 모자가 돼 그늘을 만들어 주자, 그런 당신은 캡짱이다, 이런 뜻을 담았어요. 배출총량거래제(cap and trade)라는 것도 있잖아요. 이걸 풀이하다 보니까 서울기후행동이 된 거예요. 처음에 서울시·민간·기업의 3자 파트너십으로 하다가 서울시에서 거버넌스로 하자고 해서 녹색서울시민위원회로 들어가게 된 거죠. 재밌게 잘했어요. 지난해에 대통령상도 받았고요.”
CAP은 글머리에 소개한 ‘날마다 기후행동’ 캠페인, 아파트(Apartment)·빌딩(Building)·학교(Classroom 또는 Campus)의 에너지를 절감하는 ‘에코-ABC’ 사업, 온실가스 배출 원인을 진단하고 지도·관리하기 위한 ‘CO2 닥터’ 양성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기후행동과 관련한 콘서트를 개최하고 노래를 제작하고 캠프도 열었다. 하 의원은 또 의정활동을 통해 환경과 기후변화와 관련한 많은 정책 제안을 했다. 서울시 환경지수 및 기후변화대응지수 개발, 탄소마일리지 제도 시행, 음식물쓰레기 처리 방법 개선책, 도심 비둘기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제안, 학교 내 천연 잔디 사업 등 정책이 그의 손을 거친 것이다.

의정 활동에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보람을 느끼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상상어린이공원과 음식물쓰레기 처리 방법 개선이에요. 상상어린이공원은 3년 동안 약 1500억원을 투입해 서울시내 300곳에 친환경적이고 상상력과 창의력이 가득한 놀이터를 조성하는 것이죠. 음식물쓰레기는 지금과 같은 수거 방식으로는 사료나 비료로 재활용할 수 없어요. 새로운 과학적 처리 방법을 제안해 2년 동안 서울시에서 연구했고, 현재 시범사업도 마친 상태예요.”
하 의원이 직업적으로 환경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서울시의원에 당선되면서였다. 그 이전의 이력을 보면 환경과 거리가 멀다. 이화여대 체육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에서 스포츠마케팅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력을 보니 환경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데, 원래 어떤 직업을 가지려고 했습니까.
“의사가 되려고 했죠. 고등학교 때 이과였어요. 어렸을 때 소꿉놀이는 안 하고 의사놀이만 했거든요.”

뜻밖이네요. 그런데 왜 체육학과에 갔죠?

“많은 사람이 환경에 관심이 있는데 몰라서 실천을 못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알려드리고 싶어요.”

“아빠 후배 중에 교수가 있었는데 그분이 왜 의대에 가려고 하느냐고 물었어요. 사람의 근본을 알고 싶다고 대답했어요. 그러니까 그분이 그래요. 의학은 부러진 곳 붙이고 찢어진 곳 꿰매는 것이지만 스포츠의학은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라고요. 그 말이 확 와 닿았어요. 그래서 체육학과에 가게 된 거죠.”
그게 잘못된 선택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첫 학기 해부학 수업에서였다. 쥐를 해부하는 시간이었다.
“저는 사진에 있는 쥐도 못 만져요. 그날 토하고 눈물·콧물 다 뺐어요. 그동안 저는 관념 속의 의사를 생각한 것이었어요. 실제 의사는 저의 성향이 아니었어요. 그때부터 사회과학에 관심을 가졌죠. 그때가 1987년이었으니까….”
당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던 하 의원은 거기서 농성하던 선배·동료들을 지원했다.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그때 생겼고, 앞으로 기회가 닿으면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수정한 진로가 스포츠마케팅이었군요.
“대학을 졸업한 뒤 경영학으로 전공을 바꾸기로 하고 미국에 갔는데 스포츠마케팅박람회를 보게 됐어요. 거기서 자극을 받았어요. 국내에는 아직 스포츠마케팅 개념이 들어오기 전이어서 석사 학위는 그것과 가장 근접한 스포츠사회학으로 하고 박사 과정에서 스포츠마케팅을 전공하게 된 거죠. 제가 이화여대 스포츠마케팅 1호 박사거든요.(웃음)”

교수가 되려고 했습니까.
“참 운이 안 따랐어요. 장상 총장과 인터뷰까지 했는데 그 다음날 총리에 내정됐어요. 게다가 논문 지도교수께서 돌아가셨어요. 인터뷰는 없던 일이 되고 챙겨줄 사람도 없게 된 거죠.”
실의에 빠져 있던 하 의원에게 ‘서울시’에서 제안이 왔다. 젊은 여성 중심으로 위원회를 만드는데 위원장을 외부에서 영입한다는 것이었다.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하고서야 그 주체가 서울시청이 아니라 한나라당 서울시당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할 생각이 없다고 했더니 생각해 보고 15일 뒤에 결정하래요. 신랑한테 얘기도 안 했죠. 그런데 15일이 지난 뒤 진짜 연락이 왔어요. 그제야 신랑한테 물어 봤죠. 대답이 뜻밖인 거 있죠. ‘당신은 잘할 거야, 당신 같은 사람이 해야 세상이 바뀌지.’ 예전에 사회 문제에 관심도 가지고 참여도 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던 것도 있고 해서 그 말을 듣고 용기가 생겼어요.”
하 의원은 한나라당 서울시당 차세대여성위원회 위원장에 맡았고,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비례대표 1번으로 서울시의원에 당선됐다. 2008년에는 중앙당 차세대여성위원장에 임명된다.

시의원 활동을 하면서 스포츠마케팅에서 기후변화로 다시 관심을 돌리게 됐군요.
“전공으로 보면 그렇죠. 그런데 제가 중·고등학교 때 별명이 뭔지 아세요? ‘환경부 장관’이었어요.(웃음)”

어, 그건 어째서죠?
“지금 미국 뉴욕에 계시는 삼촌이 그때 국내 환경 관련 연구소에 근무했어요. 라면 한 개에서 나오는 국물이 욕조에 세정제 넣는 것보다 더 물을 오염시킨다고 들었어요. 그걸 안 다음부터는 라면 먹을 때도 물도 반, 수프도 반만 넣어서 거의 물 없이 끓여서 먹어요. 국물을 버리지 않으려고요. 친구들한테 잔소리도 많이 했어요. 사회인이 돼서는 남자들이 캔이나 병에 담배꽁초를 버리면 난리가 나죠. ‘내가 항상 말했잖아, 그걸 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이 필요하고, 에너지가 많이 드는지….’ 그런 게 제 생활이었어요.”

그래서 상임위 가운데 환경수자원위를 택하게 됐군요.
“생각지도 않게 시의원이 됐는데 가서 보니 환경을 다루는 상임위가 있는 거예요. ‘아, 이거다’고 생각했어요. 온 시민과 함께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은 가진 것도 하나도 없는데 웬 쓰레기는 그렇게 많고, 에너지도 얼마나 펑펑 씁니까.”

실제로 시의회에서 환경 문제를 다뤄 보니까 어땠습니까.
“지방의회에 온 게 정말 잘 온 것이었어요. 지방의회 경험이 나를 성숙하게 했고, 많이 배우게 했고, 시민을 알게 해 주었어요. 제가 논문을 쓸 때는 그게 세상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했는데 시의회에서 하는 일은 그런 고민이 필요 없었어요. 다 시민을 위한 것이니까요.”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환경이라는 건 금방 눈으로 보이는 게 아니잖아요. 정책을 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만큼 예산도 많이 들고요. 정책 결정이 중요한 거죠. 2년차가 됐을 때 정확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이거 그냥 하면 안 되겠구나,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 의원은 현재 세종대 지구환경과학과 기후변화 전공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세종대 기후변화센터 운영위원장도 맡고 있다.

에코맘코리아가 추구하는 생활실천운동 가운데 어떤 부분에 가장 주력할 겁니까.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환경에 관심이 있는데 몰라서 실천을 못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알려 드리고 싶어요. 엄마들한테 어떻게 하면 된다는 걸 알려 주는 에코맘스쿨도 있지만 엄마들 자체가 선생님이 되는 에코맘 리더를 양성하는 과정도 있어요. 그 엄마들이 초등학교에 에코키즈클럽이라는 걸 학교별로 다 만들 거예요. 보이스카우트처럼 말이에요. 저희는 프로그램 콘텐츠를 제공하고 원하는 경우 강사도 파견하려고 해요.”

신동호가 만난 사람

‘한국의 앨 고어’가 되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
“어디서 그런 얘기 들었어요.(웃음)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싶은 게 제 생각이에요. 행복은 소통하는 데서 오고, 소통의 근본은 자연과의 소통이거든요. 사람과의 소통, 자연과의 소통, 저는 그런 걸 이루고 싶어요. 환경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이고, 그것은 자연을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한 소소하고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요. 이런 점에서 ‘한국의 앨 고어’가 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할게요.”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