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일본 우정 개혁, 총리 바뀌어도 ‘GO’

일본 지방의 한 우체국.

일본의 집권 민주당 정부가 흔들리고 있다. 연립정부의 한 축이던 사민당이 등을 돌리며 떨어져 나갔고,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당내 비판에 시달리다 못해 간 나오토 부총리에게 자리를 넘겨주며 중도 하차했다. 이렇게 되면 하토야마 내각에서 역점을 두고 추진해 온 우정개혁, 즉 우정민영화 되돌리기는 어떻게 될까.

하토야마 정부는 지난해 여름 집권하자마자 우정민영화 되돌리기 정책을 가장 먼저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영화 되돌리기를 공약으로 내걸고 선거를 치렀고, 이를 염원하는 전국 우체국장들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압승을 거두었기에 공약을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하토야마 정부는 민영화를 전면 중단하는 내용의 우정개혁법안을 마련, 이번 6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3월 발표된 개혁 법안은 민영화에 의해 1개의 지주회사와 4개의 자회사로 쪼개진 일본 우정을 1개의 모회사와 2개의 자회사로 통합하는 것으로 돼 있다. 지주회사와 우편사업 및 우편국 회사를 하나로 합치고, 그 아래에 은행(우체국예금)과 생명(우체국보험) 회사를 둔다는 내용이다. 이들 회사의 대다수 주식을 시장에 매각해 민영화한다는 기존 방침을 접고 정부가 운영키로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방안에는 별다른 이의가 없다. 민영화 되돌리기가 지난 선거에서 중요 공약 가운데 하나였던 만큼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공감대가 집권세력 내에 있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가메이 시즈카 금융우정상이 개혁 법안을 발표하면서 우체국 예금의 가입 한도를 현재 1인당 1000만 엔(약 1억2000만원)에서 2000만 엔으로 두 배 올리겠다고 한 것이다. 그는 우체국이 공공기관 역할을 하기 위해선 운용 가능한 금융자산이 더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시중은행들은 우체국으로 예금을 빼앗길 것을 우려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이에 집권 세력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면서 당내에서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가메이 우정상은 예금 한도 인상안 발표 전에 내각에 보고했다고 주장하고, 하토야마와 일부 각료는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하며 국민 앞에 볼썽 사나운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가메이 우정상과 정면 충돌한 당사자가 이번에 총리가 된 간 나오토라는 점이 눈에 띈다.

“예금 한도 인상안은 총리의 승인을 다 받은 것이에요.”(가메이)
“총리(하토야마)는 모른다고 말합니다.”(간 나오토)
“제가 내각에서 보고하지 않았습니까.”(가메이)
“저도 듣지 못했습니다.”(간 나오토)
“그래요? 그렇다면 당신 귀가 나쁜 것 같네요.”(가메이)
집권 각료들이 야당 인사와 함께 TV 토론을 벌이던 중 이처럼 험한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일본 국민들은 경악했다. 사안에 대한 찬반 의견을 떠나 집권 세력이 이처럼 콩가루 집안 모양을 보여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이 양상만 보면 간 신임 총리 체제에선 우정개혁법안 처리가 난망해진 것같다. 그러나 이는 오해다. 민주당은 하토야마 총리가 사퇴하기 직전인 5월 31일 이미 중의원 본회의를 열어 가메이 장관이 낸 우정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간 부총리도 반대하지 않았으며, 연립정권에서 탈퇴한 사민당도 찬성표를 던졌다. 참의원 통과만 남겨 놓게 된 것이다.

자민당은 물론 반대다. 자민당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으로 아버지 지역구를 물려받아 세습의원이 된 고이즈미 신지로를 본회의 질문자로 내세워 반대토론을 벌이는 등 저지에 나섰으나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일본 우체국의 공공성 찾기는 이제 시간문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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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우체국 예금회사는 우리나라와 달리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2009년 말 현재 총 자산이 195조 엔, 예금잔액이 176조 엔이다. 여기에 보험까지 합하면 300조 엔, 우리 돈으로 3600조원을 굴리는 일본 최대의 금융기관이다. 이 거대한 금융기관을 민간에 넘기지 않고 국가에서 운용키로 했다는데 일본인들은 적이 안심하고 있다.

<이종탁 경향신문 사회에디터 jt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