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가 만난 사람]“학회 의사 강력히 정부에 전달할 터”

‘생태적’인 국립생태원 바라는 김은식 한국생태학회장

몇 년 전 ‘초등학생 오답지 시리즈’가 인터넷에서 유행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사슴이 거울을 보는 그림을 제시하고 ‘사슴이 ○○○ 봅니다’라는 문장에서 빠진 말을 찾아 쓰라는 문제였다. 초등학생이 답지에 쓴 엽기 오답은 ‘미쳤나’였다. ‘사슴이 거울을 봅니다’와 ‘사슴이 미쳤나 봅니다’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그럴 듯한 답일까.

김은식 국민대 산림환경시스템학과 교수를 만난 뒤 엉뚱하게도 이런 자문(自問)을 해 보았다.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 드라이브에 힘입어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생태학계를 대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생태’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학회가 7개 정도 있다. 이 가운데 3개(한국산업생태학회·한국생태공학회·복원생태학회)는 지난해에 생겼다. 김 교수가 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생태학회는 1976년에 창립됐다. 생태 이야기를 하면서 왜 한물간 초등학생 오답지 우스개가 생각난 것일까.

최근 생태학계 원로 학자들이 ‘뿔’이 난 것 같다. 환경부가 1급 공무원 수준(정확하게는 전문계약직공무원 가급)의 국립생태원건립추진단장 자리를 만들어 민간에다 공모를 하면서다. 국립생태원 건립은 노무현 정부 시절 약 3400억원의 예산을 책정해 충남 서천에 2012년 완공할 계획으로 시작한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생태학계가 술렁이는 까닭은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단장 자리에 현 정권의 입맛에 맞는 특정 인사를 앉히려는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한국생태학회 회장과 세계생태학회 사무총장, 동아시아태평양지역국제장기생태연구네트워크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올 9월 동아시아생태학대회와 국제장기생태네트워크 동아시아 지역 총회를 국내에서 주최하는 데다 2013년 영국생태학회 100주년 기념행사와 함께 열리는 세계생태학대회 준비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7월 14일 서울시내의 한 커피 전문점에서 그를 만나 요즘 뜨고 있는 생태학계에 내연하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 물었다.

생태학회지를 영문으로 발간하고 있더군요. 왜 영문으로 내는지 우선 그게 궁금합니다.
“우리 학회의 숙원 사업이 학회지가 SCI(Science Citation Index, 과학인용색인)에 등재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이거든요. 국문으로는 그게 곤란해서 몇 년 전부터 영문으로 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반작용도 있어요. 생태 연구 결과를 우리말로 쓰지 않고 영어로 내다 보니까 영어로 그 결과를 정확하게 기술하기가 쉽지 않기도 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이번에 낸 게 <생태>라는 잡지인데….”

김 교수는 가방에서 지난 7월 1일자로 창간한 잡지 <생태>를 꺼냈다. 연 2회 발행할 계획이며, 대중을 위한 생태 전문 잡지를 지향한다고 한다. 한국생태학회는 “100여 년 동안 연구실에만 갇혀 있던 ‘생태’라는 주제를 대중과 나누겠다는 포부로 이 잡지를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기본적으로는 회원들이 글을 발표하는 장을 마련한 것이고요. 또 국민과 소통하는 것도 필요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생태에 관심 있는 개인이나 기업이 많은데 그런 분들과 연결하려면 매체가 있어야 하거든요. 학회지를 국문으로 발간하지 않는 대신 사회봉사 겸 소통 겸 해서 잡지를 내게 됐습니다.”

요즘 ‘생태’라는 개념이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생태’라는 말이 들어간 학회가 지난해에만 3개 생겼고, 정부와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 학회는요, 1976년에 창립돼 생태 이름을 가진 가장 오래된 학회거든요. 그리고 우리는 응용생태학보다 순수생태학적인 면을 더 중시해 왔어요. 최근에 사회적 상황이 응용으로 많이 가고 있지 않습니까. 복원생태학이라든가 생태공학·건축생태학 등이 그런 경우이고, 인문·사회과학으로서의 생태학도 있어요. 다양한 차원에서 생태학적 접근이 필요한 상황을 우리가 인정합니다. 생태학의 외연이 넓어지고 있다는 부분을 방증하는 거죠.”

문제는 생태라는 이름을 붙이고 생태적이지 않은 활동을 하는 것일 터이다. 최근에 생태 전문가를 자처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생태라는 이름을 내걸고 정부의 반생태적 정책이나 사업을 지지하거나 뒷받침하는 경우가 그렇다. 김 교수는 이 부분에 대해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우리 학회는 최근에 그러한 응용생태 분야를 수용하기 위해 분과 활동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대한토목학회가 회원 2만명이 넘는 큰 학회인데 지난해 양해각서(MOU)를 맺어서 생태공학 분야 발전을 위해 공동 노력을 하자고 했고요, 역시 회원이 2만명이 넘는 한국정보과학회와도 MOU를 맺고 생태·환경과 정보기술(IT)을 융합하는 특별위원회 활동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일부 응용생태 분야들이 우리 학회에서 각기 떨어져 나가는 것도 인정할 수 있지만 큰 차원, 이를테면 ‘생태과학연합’이라는 틀에서 함께 큰 그림은 함께 그려 나가는 활동도 필요하다는 거죠. 서로 분파가 돼서는 큰 그림을 놓칠 수 있거든요.”

오는 9월 경북대 상주 캠퍼스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생태학대회와 국제장기생태연구네트워크 동아시아 지역 총회를 주최하는데 요즘 국제 생태학계의 큰 흐름은 어떻습니까.
“국제 생태학계 차원에서 봤을 때 개발 사업의 부작용이 워낙 심각하니까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성 과학(Substainability Science)을 해 나가느냐가 항상 중요한 이슈가 돼요. 전 지구적인 화두인 지속 가능성, 이걸 과학적으로 해 나가는데 있어 생태학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죠. 이번 회의의 주제인 녹색성장 문제, 생물다양성 보전 등도 국제 생태학계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입니다.”

세계 생태학계의 큰 흐름과 달리 지금 국내 생태학계의 뜨거운 이슈는 아무래도 4대강 사업이나 국립생태원 인사를 둘러싼 문제가 아닐까 싶었다. 이 대목에서 묻기도, 답하기도 껄끄러워 보이는 본론으로 들어갈 타이밍을 포착했다.

국내 생태학계는 그보다 더 급한 현안이 있잖습니까. 국립생태원건립추진단장에 현 정부의 환경 파괴적인 사업을 적극 찬성한 인사가 내정돼 있고, 지금 그를 뽑기 위한 공모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국립생태원이 생태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연구하는 곳이잖아요. 추진단장이 누구냐에 따라 앞으로 위상이라든가 모습이 바뀔 것이라고 보거든요. 정말 중요한 사항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계에서 국립생태원에 거는 기대나 의미를 말해 주십시오.
“지금까지 생태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연구환경이) 상당히 열악했거든요. 요즘은 생물학의 연구가 아주 작은 수준, 즉 세포 이하로 가는 상황이잖아요. 생태학처럼 문제를 크게 보는 게 필요하거든요. 국립생태원은 생태학 전문 인력을 키울 수 있는 중요한 장이자 생태학이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터전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우리 학계에서 하고 있어요. 그 기초를 놓는 역할을 단장이 하게 됩니다. 단순히 국가 경쟁력 차원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우리 생태학의 위상을 끌어올릴 비전을 제시하고 그런 도전을 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얘기되고 있는 분은 그런 것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보고 있습니까.
“그 부분이 조금… 어려운 상황인데요. 한 개인을 얘기하면 뭣 하고 더 훌륭한 분이 많지 않을까, 이 정도 얘기하죠.”

그런 입장을 생태학회에서 정부 고위층에 전달한 걸로 들었습니다. 실제로 전달했습니까.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었고, 청와대 고위에 있는 분에게 우리 의견을 아주 강하게 이야기한 거죠.”

정부 고위층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녹색은 뭐냐면요, 생명의 색이거든요. 우리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살아야 할 그걸 하는 게 녹색이거든요. 빨간색과 파란색이 사회의 중요 이슈인데 거기에 녹색을 집어넣으면 생명과 자연이 살아나는 상황이 되는 거죠”

“제가 공식적인 반응을 받은 바는 아니고, 다른 분이 접촉을 해 봤는데 상당히 강하다는(입장이 강경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한국생태학회는 2008년 2월 21일 ‘한반도대운하사업에 대한 한국생태학회의 의견’을 발표한 바 있다. 학회는 의견서를 통해 대운하 사업을 ‘한반도의 전반적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수 있는 가공할 자연 파괴 행위’로 규정하고 ‘사업 추진 측에 의해 사용된 그릇되거나 왜곡된 생태적 자료에 대한 정정’과 ‘사업 계획의 즉각적인 폐기’를 요구했다.

지난해 9월에는 ‘이명박 대통령님에게 올리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학회는 이 글에서 “강에 수많은 보를 설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계획·시행하고 있는 지금의 4대강살리기사업을 포기할 것”을 주문했다. 그 대신 필요하다면 학회가 실질적으로 강을 살리고 녹색성장 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4대강 사업 계획이나 시행 과정에서 전문적인 생태학자의 참여가 거의 없었다는 지적이 있는데 실제로 그렇습니까.
“공식적으로 우리한테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 없었고요. 찬성하는 상황인 때에는 (그런 요청이) 많이 있는데… 토론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도 없었죠.”

생태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4대강 사업의 반생태적인 점을 지적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말하는 분도 있더군요. 그런데 ‘생태학자’라는 이름을 내걸고 4대강 사업 추진에 적극 참여하는 분이 있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특정인을 거명하며) 충격이었죠. 잘 아는 사이고, 그 전에는 문제점도 많이 이야기한 걸 봤거든요. 생태학을 대변하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적 입장에서 판단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국립생태원건립추진단장이 7월 말에 결정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학회 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할 계획입니까.
“시간을 두고 생각해도 될 상황인데 너무 급하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는데요. 공식적으로 대응해서 그 결과를 지켜보려고 합니다.”

학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우리 의사를 적극적으로 정부에 전달한다… 이 정도로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우리 생각은요, 이를테면 심사 과정에서라도 국립생태원건립위원회의 의견이 반영됐으면 합니다.”
국립생태원건립위원회는 정부에서는 환경부 차관, 민간에서는 남상호 대전대 부총장이 공동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이상한 것은 생태학 분야의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학회의 회장이 그 위원회에서 배제돼 있다는 것이다.

국내 생태학계를 대표하는 학회의 회장이 위원회에 안 들어가 있는 게 이상합니다.
“넣었는데 뺐다고 그러더라고요.(웃음)”

한국생태학회가 정부로부터 소외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한 것 때문이 아닐까요. 그게 우리 학회를 경원시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이 인터뷰 후 한국생태학회는 전임 회장단을 포함한 임원진이 모여 두 가지 결정을 했다고 한다. 국립생태원건립추진단장 후보를 학회에서 추천하기로 한 것이 그 하나다. 생태학을 알고, 생태학 발전에 대한 신념이 강하고, 생태원 조직과 국가 발전에 도움을 줄 사람이면서 행정 능력도 아울러 갖춰야 한다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두 번째는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해 9월에 열리는 동아시아생태학대회에서도 의제로 삼아 논의하기로 한 것이다.

지질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생태계의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 인간에 의한 생태계 파괴가 심각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인류세’니 ‘제6의 멸종’이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생태학자로서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이 놓치고 있는 생태적 무지 또는 실수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현 대통령이 제시한 저탄소 녹색성장은 굉장히 중요한 화두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녹색보다는 빨간색과 파란색, 즉 우리가 말하는 레드오션과 블루오션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진짜 중요한 녹색성장을 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다시 한 번 국민에게 제시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겉만 녹색이지 속은 녹색이 아니라고 보고 있거든요.”
김 교수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난감하게도 거꾸로 인터뷰어에게 질문을 던졌다.
“신 기자는 녹색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머뭇거리고 있는데 그는 ‘생명’이라고 답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자연의 색깔인 빛의 삼원색(빨강·파랑·초록)을 대비하면서 진정한 녹색의 의미를 설명했다.
“녹색은 뭐냐면요, 생명의 색이거든요. 우리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살아야 할 그걸 하는 게 녹색이거든요. 빨간색과 파란색이 사회의 중요 이슈인데 거기에 녹색을 집어넣으면 생명과 자연이 살아나는 상황이 되는 거죠. 지금 정부는 파란색 성장과 관련된 얘기를 녹색성장이라고 하는 겁니다. 혼동하고 있는 거죠. 우리에게 엄청난 그리고 새로운 기회가 오고 있는데 녹색의 의미를 해석하지 못하고 파란색, 블루오션을 녹색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지난해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4대강 사업의 대안으로 ‘그린오션 전략’을 제시한 것이군요.
“빨간빛과 파란빛 두 개만 합치면 무슨 빛이 나오는지 압니까. 빨간빛과 파란빛의 가운데 빛인 마젠타(magenta, 자홍)밖에 안 나와요. 빛이 어두워요. 그런데 녹빛을 집어넣으면 자연 빛이 딱 나오죠. 빨간빛하고 연계시키면 노란빛이 나오고 파란빛하고 연계시키면 시안(cyan, 청록)이라는 빛이 나오거든요. 다양한 차원에서 기회가 나오는 ‘그린오션’이 되는 겁니다.”

운하 사업이 아니라는데 운하 건설의 전단계 사업이라는 의심을 받고, 빨강·파랑을 녹색이라고 하는 상황이로군요.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가 생각납니다.
“그렇죠.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는 거죠. 정말 중요한 개념을 제시해 놓고 진짜 녹색은 하지 않잖습니까. 저희는 세 가지 e를 말해요. 빨간색이 경제(economy)라면 파란색은 환경(environment)입니다. 또 하나의 e는 녹색인데 그게 생태(ecology)예요. 이렇게 감히 말합니다. 생태는 뭐냐, 우리도 살고 자연도 살아서 다음 세대가 살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해 가는 것입니다.”

신동호가 만난 사람

진나라 2세 황제 호해(胡亥)와 역신 조고(趙高)에 얽힌 ‘지록위마’ 고사는 초등학생 오답지 우스개보다 더 수준이 낮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이 선생님이라면 답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사슴이 거울을 보는 것일까, 거울을 보는 사슴이 미친 것일까.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