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가 만난사람]“20대가 탈토건 한국경제의 주체입니다”

‘88만원 세대’ 혁명 꿈꾸는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발랄하거나 엽기적이기거나.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우석훈 박사를 인터뷰하러 가면서 떠올린 단어들이다. 최근에 읽은 그와 관련된 글을 기억해 보니 ‘오세훈님, 웃겨서 죽겠어요!’ ‘섹스 많이 하는 나라 만들자’ 정도다. 앞의 것은 그가 직접 쓴 칼럼 제목이고 뒤의 것은 그를 인터뷰한 기사 제목이다.

과연 20대의 ‘대변인’이자 ‘대부’다웠다. 우선 그의 나이와 지성과 명성에 걸맞게 꾸미거나 행동하지 않았다. 근사하게 불러줄 직함이 없는 것도 ‘88만원 세대’를 연상케 했다. 교수도 아니고 ‘폼 나는’ 전직도 없기 때문이다. 유일한 현직이라고 할 수 있는 ‘2.1연구소 소장’으로 부르기로 했다.

또 하나 20대스러운 건 말투였다. ‘팬질하고’ ‘생까는 게’ ‘썰렁탕 끓여먹고’ ‘뻑가서’ 등 20대에게서나 들을 수 있는 비어나 은어를 그는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다. 그의 강의에서도 등장하는 이런 표현이 전혀 어색하거나 튀게 느껴지지 않는 것 또한 신기했다.

기존의 어법이나 문법으로 우리 사회나 경제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일까. ‘88만원 세대’를 비롯해 그가 만들어 내는 용어나 표현은 우리 시대를 가장 적나라하게 설명하는 강력한 키워드가 되고 있다. 표현은 발랄하지만 내용은 가공스럽다. 엽기적이기조차 하다.

그의 독특하지만 대중을 사로잡는 ‘공포의 경제학’의 진원지는 어디일까. 최근 5년 동안 20권 가까운 책을 쏟아낸 그의 왕성한 지적 에너지는 또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품고 7월 5일 서울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진행되는 ‘사회과학 방법론 기초’ 공개강좌를 하러 온 그를 미리 만났다.

우 소장은 고교 시절에는 문학, 대학 때는 국악에 꽂혔던 모양이다. 국문학과에 가려고 했는데 ‘등록금을 내줄’ 아버지가 반대했다. 서울대 국문학과에 붙을 정도의 실력이었으니까 아버지와 ‘협상’ 끝에 연세대 상대에 원서를 내놓고 재수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원서를) 넣고 몇 달 놀고 재수하기로 했는데 덜컥 붙는 바람에 그냥 다닌 거예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경영학은 뭘 하는건지 알았는데 경제학은 전혀 몰랐어요.”
‘이런! 하마터면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꿀 경제학자 한 사람의 싹을 자를 뻔 했구나!’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위기는 수없이 발견됐다.
“소설가 김영하 있잖아요. 대학 때 영하와 국악연구회를 했어요. 엄청 열심히 했어요. 너무 재밌어서 대학원 가서 음악인류학 같은 걸 하려고 했죠. 그런데 국악 대학원인데 실기는 피아노를 본다고 그래요. 그래서 포기했죠.”
옛날 이야기를 더 하지 않을 수 없는 게 그것이 지금의 그와 그가 우리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바탕이기 때문이다. ‘뻐꾸기 울던 시절’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학생운동과 관계된 활동도 했습니까.
“친구들 하는 만큼은 했어요. 들어가자마자 반 대표를 했으니까 시험 거부 같은 걸 할 때 앞장선 거죠. 이한열이 죽을 때도 옆에 있었고요. 그때 시신을 탈취한다고 해서 주로 상대 학생들이 지켰거든요. 저는 동기니까 계속 밤새고 있었고, 한열이 아버지 호위하는 일을 맡았어요.”

그러면 전공인 경제학 공부는 언제부터 한 겁니까.
“3학년 2학기 때부터인데, 그때부터는 학교 밖으로 나갔어요. 학생운동을 일찍 정리하고 민중단체 비상근 간사를 했거든요. 서울민중연합 만들 때 서울 홍제동에 있던 거기서 정치경제학교 담당 간사를 했어요. 그게 이재오(전 국민권익위원장) 사무실이었어요. 그쪽 족보를 까면 제가 굉장히 상층으로 올라가요.(웃음)”

프랑스 유학 준비는 언제부터 했습니까.
“안 했어요. 4학년 돼서 할 일도 없어 군대나 가려고 신검을 받았는데 교통사고 병력 때문에 면제가 나더라고요. 그럴 줄 알았으면 유학 준비를 좀 했을 건데…. 국내 대학원에 가려다가 면제를 받고 나니까 생각을 다시 했죠. 그때 (민중 단체들이) 한창 털릴 때였는데 우리 쪽도 수배를 받고 있었어요. 저는 학생이어서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좀 더 있으면 밝혀질 판이었죠. 고민하다가 아버지한테 ‘저 원래 공부할 생각이 없었는데 잠깐 공부할 마음이 들었으니까 돈 대 주면 (유학을) 가고 안 그러면 좀 있다가 감옥 갈 것’이라고 협박을 빡 했죠.(웃음)”
이렇게 해서 1990년 1월 프랑스어라고는 ‘봉주르’밖에 모른 채 무작정 파리행 비행기에 오른 우 소장은 그해 6월 파리10대학에 합격했다. 꼴찌는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거의 꼴찌나 다름없었다.

“딱 붙는 게 묘미라고 할까요. 시험은 오랫동안 준비해서 1등 하는 것보다 꼴찌로라도 그때그때 통과하는 게 좋더라고요. 그때 떨어졌으면 제 인생이 많이 바뀌었을 겁니다.”

생태경제학이라는 특이한 전공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원래는 심리학·철학·경제학 세 가지를 묶어서 통합 학위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동구권이 붕괴되고 나서는 정치경제학으로는 학위를 받기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통합 박사는 못하고 생태학을 더 얹은 거죠.”

그때 이미 생태경제학이라는 학문이 등장한 겁니까.
“학회가 1989년에 생겼어요. 1992년 리우환경회의를 계기로 기존의 경제학으로는 환경 문제를 풀기 어렵다고 해서 새로운 접근들을 막 시작했거든요. 그 전에 환경경제학은 상당히 오래 되고 잘 알려져 있었는데 학계에서 그걸 더 확장해서 생태학 자체를 경제학에 접목시키자는 흐름들이 생기던 초창기였죠. 지금은 생태경제학 학회지가 유명 저널이 됐어요. 상당히 뿌리를 내렸죠.”

우리나라 지성계, 특히 학계가 지닌 놀라운 능력 가운데 하나는 쉬운 내용을 어렵게 설명할 수 있는 재주라고 할 만하다. 우 소장의 말과 글은 이와 정반대인 것 같다. 그는 생태경제학을 어떻게 설명할까.
“경제 활동이 커지면 생태계가 깨지게 돼 있잖아요. 그런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니까 깨지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러려면 경제도 뭔가 바뀌어야 되겠죠.
옛날에는 시장을 만들어 주거나 가정만 조정하면 되는데 그것보다는 복잡하다, 이런 얘기죠. 지금은 기후변화 부문에서는 중추 학문이 된 편이죠. 지구 생태가 망가지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잖아요.”

우 소장의 현재 대표 직함은 지난해 12월부터 맡은 2.1연구소 소장이다. ‘섹스 많이 하는 나라 만들자’는 기사에 따르면 2.1연구소 이름은 1.19명인 우리나라 출산율을 인구 대체 수준인 2.1명까지 끌어올리자는 뜻을 담고 있다. 이사장은 현대자동차 사장 출신의 이계안 전 의원(민주당)이다.

2.1연구소가 출산율 2.1명이 되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겉으로는 그래요.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진짜 유래가 또 있어요. 이계안 전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설 때 민주당 내 지지율이 2.1%였거든요. 보통 사람 같으면 까먹고 싶은 숫자잖아요. 그걸 자기는 절대 안 까먹겠다는 뜻이에요. 독한 인간이에요.(웃음) 그러니까 두 가지 의미가 다 있는 거죠. 출산율을 중심으로 복지 문제를 보는 것 하고 최초 지지율을 기억하는 것….”

우 소장과 이 전 의원은 15년 전 직장 상사와 부하로 만났다. 우 소장은 1996년 박사 학위를 받고 현대그룹 산하 현대환경연구원에 과장(연구위원)으로 취직했다. 이 전 의원이 전무 시절이었다. 우 소장은 당시 현대그룹 58개 계열사의 환경 문제를 총괄 관리하는 일을 했다.
“그때 3년을 함께 일한 적이 있었어요. 오래된 관계죠. 야당 계열 연구소니까 자기 이름을 걸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고, 특히 경제를 한 사람 가운데 어디에 소속된 사람은 못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한테 부탁을 한 거죠. 저는 막 하니까.(웃음)”

어찌 보면 환경에 가장 부담을 주는 게 인구 아닙니까. 생태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출산율을 높이는 일을 하는 건 무슨 까닭입니까.
“균형인 상태가 불균형인 상태보다 문제를 해결하기가 훨씬 쉽거든요. 지금같이 급격하게 변화가 되면 세대 간 불균형이 굉장히 심해지잖아요. 아래 세대가 가난하면 지불 능력이 약해지니까 오히려 문제를 풀 수 없게 되는 거예요. 인구가 줄어드는 경향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굉장히 오랜 시간에 걸쳐서 부분 균형을 맞추면서 가야 하거든요.”

아, 그런 점에서도 세대간 불균형 문제가 우 소장의 중요 관심사가 된 것이기도 하겠군요.
“예를 들어 ‘88만원 세대’ 같은 것도 대표적인 생태 논의거든요. 생태경제학 안에 세대간 형평성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앞의 놈이 너무 쓰면 뒤의 놈이 써야 할 걸 빼앗아 가는 것 아니에요? 그 논리를 그대로 산업경제에 적용한 거죠.”

우 소장은 현대환경연구원을 거쳐 에너지관리공단, 국무총리실 등에서 유엔 기후변화협약 협상 등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한 일을 했다.
2003년부터 2년 동안은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으로서 녹색당 운동에 깊이 참여했다.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귀국한 지 10년만인 2005년부터였다.

그동안 책을 낸 걸 보면 그걸 어떻게 다 낼까 싶은데, 그런 에너지가 어디서 나옵니까.
“저는 데뷔가 굉장히 늦은 편이었거든요. 현대에 있을 때도 제 이름으로 책을 쓰기가 어려울 거 아니에요. 저 월급을 주는 사람에 반하는 얘기가 굉장히 많이 있을 텐데 그래서 못 썼고, 정부에 있을 때도 정부 방침에 반대되는 얘기들도 있는데 회의할 때 그런 얘기를 하는 건 괜찮지만 책으로 낼 수는 없잖아요. 학위를 처음 받고 왔을 때 누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한국 사회가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을 해야 한다, 그래야지 까불면 죽는다…. 어느 날 보니까 제가 9년을 그러고 있더라고요. 10년째 될 때 내기 시작한 거죠. 옛날에 냈어야 될 것들, 묶여 있던 것들을 한 번에 정리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임시연습장’이라는 우 소장의 블로그를 보니까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팬클럽을 링크해 놓았던데….
“굉장히 재밌는 사람이고요, 노회찬만한 사람을 한국 사회가 또 만들기가 어려울 거예요. 인민노련 시절에 조직부장을 하다가 감옥도 갔다 오고 한국 사회에서 노동운동 정치세력화의 산 증인이면서 결과물이거든요. 저한테는 역사적인 사건이죠. 인제 팬질을 하려면 웃기거나 재밌거나 해야 되잖아요. 책 내면 내가 열 권씩 사 줄게, 뭐 그런 관계라고 할까….”

그런데 진보신당은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발기인까지는 참여했는데 진보신당이라고 이름을 다는 순간 도저히 함께 못 하겠더라고요. 저는 진보에다 이름 얹은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나는 진보적이지 않아요. 무슨 무슨 사회당이나 좌파신당 정도면 꼭 생각이 안 맞더라도 도와 주겠는데 말이죠.”

좌파와 진보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요.
“진보는 보수하고 반대죠. 그런데 좌파 가운데에도 보수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죠. 저 같은 경우는 굉장히 고전적인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급진적으로 바뀌는 것이 싫어요. 좌파나 생태주의이던 적은 있지만 진보라고 하면 진보가 뭐냐, 진짜 진보냐, 가짜 진보냐… 아, 복잡해!.”

정확하게 얘기하면 생태좌파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 정도 되겠죠. 방점은 좌파에 더 찍히고…. 저 같은 경우에는 별명이 많아요. 강남에 살 때는 ‘강남좌파’라고 해서 그 소리 듣기 싫어 (강북으로) 이사한 건데 지금은 ‘구라파좌파’라고…(웃음). 우파들이 그렇게 부르더라고요.”

‘명랑좌파’라고도 하던데, 스스로는 어떻게 부릅니까.
“저는 빨갱이라고 그러죠. 빨갱이 뭐?”

지난 3월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이 출범했는데,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등을 통해 20대 운동론을 주창한 당사자로서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생길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등장할 줄은 몰랐어요. 제가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가 없거나 사라지지는 않는 거잖아요. 조금 먼저 얘기했다고 해서 그걸 내가 한 거다고 ‘뻥 깔’ 수는 없죠.”

그렇지만 나름대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는 않습니까.
“요즘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서보다 생각이 더 나가 이게 한국의 제3의 운동 같은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1980년대 후반의 민중운동, 1990년대 중·후반의 시민운동 이후 나타난 새로운 흐름이라는 거죠. 청년유니온은 시민운동인지 민중운동인지 구분이 잘 안 돼요. 그러니까 제3의 운동 같은 건데, 이게 잘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본의 아마미아 카린이 ‘알바계의 잔 다르크’라고 불리고 있는데… 한국에도 이제 잔 다르크가 나오게 생겼네, 이거?(웃음)”
우 소장이 집요하게 20대를 대변하고 그들을 추동하는 까닭은 바로 그들이 한국 경제의 희망인 ‘탈토건 세대’라고 보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에게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할 것을 주문한 그는 앞으로 낼 ‘생태경제학 시리즈’에서는 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본다.

지금의 20대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습니까.
“20대는 토건에 익숙지 않는 첫 세대예요. 옷 사면 되게 오래 입죠. 버스 타고 다니고 자가용도 거의 없어요. 어차피 집이 없으니까 큰 집에 살지도 않고요. 삶 자체가 생태적이에요. 여기에 새로운 흐름이 나오면 한국 경제의 탈토건이란 게 움직일 거예요. 그들이 바로 탈토건 한국 경제의 주체입니다.”

신동호가 만난사람

“세대별 노동조합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등장할 줄은 몰랐어요. 제가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가 없거나 사라지지는 않는 거잖아요. 조금 먼저 얘기했다고 해서 그걸 내가 한 거다고 ‘뻥 깔’ 수는 없죠.”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