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스크린]관객정서 외면한 가학적 폭력만찬

페퍼민트 앤 컴퍼니

연쇄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 ‘장경철(최민식 분)’의 손에 사랑하는 약혼녀 ‘주연(오산하 분)’을 잃은 국정원 경호요원 ‘수현(이병헌 분)’. 그는 무자비하게 해체된 주연의 시신 앞에 오열하며 처절한 복수를 약속하고 천천히 실행해 간다. 그런데 복수가 잔인해질수록 수현은 혼란스럽다. 이런 끔찍한 보복이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공 수현을 조여오는 불편한 의문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이된다. 그렇다. 이렇게 끔찍하고 작위적이며, 무엇보다 관객들의 정서와 공감대는 철저히 외면한 지루하고 사적인 보복극이 갖는 의미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너무 원론적이고 그래서 상투적이기까지 한 의문의 답은 의외로 쉽게 도출된다. 당연히도 문제는 작품의 가장 기본적인 시발, 그리고 본질에 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이 작품은 제한상영가 판정을 두 차례나 받아 이목을 모았다. 개봉에 있어 사실상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국내영화가 이 작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대형상업영화로는 유례가 없었던 일이라 더 큰 화제가 되고 있는데 어림 1분 30초 가량의 장면을 들어내고서야 간신히 연소자 관람불가 판정을 받아내고 개봉일을 맞추게 되었다. 이 같은 해프닝은 개봉 전날에야 조급하게 치러진 언론시사라는 흔치않은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수선스런 경황들로 인해 관객들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정보만 접한 채 관람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이는 차라리 제작사 측엔 호재라 해야겠다.

국내에선 대중적이지 않지만 피칠갑 난자극이나 과잉 복수극은 서구에선 나름의 전통과 계보를 지닌 장르로 철저한 ‘B급 정서’에서 시작되었다. 넉넉한 제작환경을 갖지 못한 영세 영화인들의 자구책 또는 태생적 자유분방함에서 시발된 이런 영화들은 그들 스스로에겐 유일하고 효과적인 생존전략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기성 시스템의 매끈한 작품에 흥미를 잃은 특정관객들을 겨냥한 전문적인 분야로서 발전해 나갔다. 이런 작품들은 어쩔 수 없이 무명배우들의 저렴한 연기와 과장된 전개와 비약을 감내해야만 했고, 이로 인한 현실과의 극명한 괴리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B급 정서 고유의 카타르시스라는 독특한 풍미를 자아내는 요소이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이 같은 괴리가 영화적 허구의 철저한 증명으로서 자칫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도 있는 현실과의 혼란을 예방하고, 목격자의 불쾌감을 최소화하는 안전장치로도 든든히 작용한다는 점이다.

감독 김지운은 데뷔작 <조용한 가족> 때부터 B급 정서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낸 인물이기도 하다. 이후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발표된 후속작들은 감각적 영상과 적절한 스타시스템을 활용한 말끔한 외양을 통해 관객들에게 크게 어필하며 흥행에 성공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단점 역시 일관되게 언급되어왔는데 장르 개성의 풍성한 재미나 감독 본인만의 일관된 연출색을 찾기 힘들다는 한계가 그것이다. 이번 작품 <악마를 보았다> 또한 연장선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이번엔 감히 함부로 접근해선 안될 ‘하드고어’의 영역을 넘보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명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갈수록 흉포해져 가는 사회상을 반영하고,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며 변질되어 가는 개인을 거론한다. 하지만 이런 주제들을 공감하기에 영화는 너무나 표면적이고 관객 개개인의 공감까지 끌어내기엔 이기적이며 얄팍하다. 모처럼 스크린에 복귀한 이병헌과 최민식은 혼신의 연기를 보여주지만 그들의 광기 어린 모습은 의미를 상실한 채 불편함만 가중시키는 역효과로 변질될 뿐이다.

그러고 보면 두 번의 제한상영가 판정이 충분히 설득력 있다해도 무리는 아닐 듯 싶다. 삭제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허구의 카타르시스도, 창의성의 쾌감도, 통찰력 있는 문제의식도 어느 하나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이런 가학적 폭력만찬이 부여받을 수 있는 가치란, 결국 피학적 취향을 가진 소수의 특정관객들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환영받을 이유가 없을 테니 말이다. 일말의 애착도 없이 과장된 흉내내기로만 조리된 이 B급 요리는 그 재료와 담아낸 그릇이 너무 고급스러워 더욱 불편하다. 그냥 공허함의 한가운데에서 찬란하게 비상하지도 못하고 용감하게 착지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유영하고 있을 뿐이다.

제목: 악마를 보았다(I Saw The Devil)

제작연도: 2010년

러닝타임: 141분

장르: 범죄, 스릴러

감독: 김지운

주연: 이병헌, 최민식, 전국환, 천호진

개봉: 2010년 8월 12일

터치 스크린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최원균<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