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엽의 눈]일그러진 우리들의 고위공직자

불법비리의 전력이 있으며 그것이 인사 때마다 반복되는 것은 국민들에게 최고 공직사회와 국가공공성에 관한 해석의 틀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질서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주고받는 아주 작은 몸짓과 언어에도 반영되어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 함께 탄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눈길을 피한다. 애써 천장을 쳐다보거나 층수를 알리는 번호버튼을 뚫어져라 보고, 어떤 이는 아예 바닥에 고개를 내리꽂기도 한다. 아주 좁은 공간에서 서로에게 무관심을 표현함으로써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예의로서의 무관심, 질서로서의 무관심에 동조하지 않고 어느 한 쪽이 빤히 쳐다본다거나, 느닷없이 “아침은 뭐로 드셨나요?” 라고 말을 건네게 되면 엘리베이터 안의 질서는 파괴되고 상황은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캠퍼스에서 만난 친구가 지나가면서 “오랜만이야! 나중에 커피 한잔 하자”라고 인사할 때 “그래, 반가워”라고 응답하지 않고 정색을 하고 다가가서 “커피가 아니고 율무차로 하면 안 되겠니”라고 응수해 보라. “안녕” 하면서 지나치는 친구에게 굳은 표정으로 다가가 “너는 정말로 내가 안녕하기를 바라는 거니”라고 응답해 보라.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당혹감’은 그러한 상황 이전의 몸짓과 말, 혹은 무심한 표정이나 말없이 유지되는 공간조차도 질서를 구성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사람들은 특정한 상황에 대한 각자의 ‘해석틀’을 가진다. 일상에서 사람들이 혼란을 갖지 않는 것은 각자의 해석틀 가운데 기본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병원의 진료상황에서 사람들은 의사에게 신체의 일부를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의사와 간호사, 환자는 진료상황에 대한 해석틀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유된’ 해석의 틀을 사회를 운영하기 위한 기본윤리로 문서화한 것은 법이 되고, 문서화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따르게 되는 것이 관습이요 관례이다. 가족윤리는 가족이 만드는 상황에 대한 해석의 틀이 모인 것이다. 학교의 학칙과 사제 간의 예절이 그러하고, 직장 내의 윤리와 규범이 그러하다.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는 헌법과 법률은 국가구성원으로서의 국민 개인들이 공유하는 해석틀의 모둠일 수 있다. 개인들이 공유하는 해석틀은 이렇듯 아침에 출근하며 이용하는 엘리베이터 공간에서부터 국가운영의 원칙에 이르기까지 사회질서를 구성하는 미시적 단초이다. 이러한 연유에서 국가운영의 원칙을 반복적으로 거스르는 것은 개인들에게 당혹감을 누적시킴으로써 해석틀을 바꾸라는 ‘위협’이 될 수 있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고위공직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이번에도 예외 없이 불법의 파노라마가 이어졌다.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탈세와 선거개입, 위장취업에 부적절한 망언 등 청문회마다 새로운 비리항목이 추가된다.

사람들은 최고의 공공선이라는 국가를 운영하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나름의 해석틀을 갖고 있다. 고위공직자가 한두 번 위법하는 일이 있다면 사람들이 공유한 일반적 해석틀을 크게 손상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정부 들어 고위공직자 가운데 병역의무를 치른 이를 찾기 어렵고, 예외 없이 불법비리의 전력이 있으며 그것이 인사 때 마다 반복되는 것은 국민들에게 최고 공직사회와 국가공공성에 관한 해석의 틀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조대엽의 눈

불법행위 없는 ‘무능력자’는 공직 진출이 어려운 세상이라는 우스개가 현실이 되면 개인은 혼란스럽고 질서는 헝클어지고 만다. 청문회 얼마 전에 대통령은 뜬금없이 ‘공정한 사회’를 강조했다. 대통령의 ‘주관주의’는 야권과 시민사회에 국가공공성에 대한 대안의 해석틀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극단적 주관주의는 상호적 허무주의를 낳아 사회통합의 에너지를 고갈시키게 된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더 ‘헝클어진 사회’가 되어야 하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