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눈]한나라당판 막장드라마

스스로가 결백하다는 것을 밝히는 과정이 결여된 상태에서 ‘피해자’라고 주장만 하는 것은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요사이 한나라당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기도 안찬다. 한쪽은 마치 자신들이 민주화 투사라도 된 듯 “국민을 위해서”라는 주장을 하며 자신들에 대한 ‘조사’를 성토하고 있고, 반대쪽은 “너희는 깨끗하냐?"라며 이를 갈고 있다.

이런 싸움을 보며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먼저 정두언 의원을 비롯한 친이 소장파들이 “정치인 사찰”이라고 주장한 대목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 대표를 맡고 있는 이정희 의원이 지난 5월 발의한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안)’을 보면 고위공직자의 범주에 국회의원이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통념상으로 보나, 이정희 의원의 법안을 보나 국회의원이 고위공직자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번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에서는 이들 의원의 부인들이 경영하는 사업체에 대한 제보가 잇달았기 때문에 조사를 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일 제보가 실제 들어왔다면 청와대나 사정기관의 입장에서는 ‘조사’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인데, 이런 가정 하에서 본다면, 지금 친이 소장파의 주장은 여러 측면에서 모순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청와대나 사정기관이 고위공직자에 대한 비리 제보가 들어오면 손 놓고 가만 있으라는 말인지, ‘사찰’ 받은 당사자라고 주장하는 의원들은 대답해야 한다. 만일 조사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고위공직자 비리는 그냥 넘어가도 된다는 것인지 궁금해지고, 조사해야 한다고 답한다면 스스로가 왜 피해자인지부터 떳떳하게 밝혀야 한다.

즉 스스로가 피해자이고, 그들의 주장처럼 이것이 ‘사찰’로 국민들에게 비쳐지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가 제보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밝혀야 하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다. 이들이 결백한데도 조사했다면 이들은 정말로 피해자이고, 이것은 정치사찰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스스로가 결백하다는 것을 밝히는 과정이 결여된 상태에서 ‘피해자’라고 주장만 하는 것은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진짜 ‘민간인 사찰’ 피해자는 돈 잃고 직장 잃어도 힘이 없어 울분을 삼키고 있는데, 이런 피해자를 두고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주장만 되풀이하면, 이는 문제의 핵심, 즉 ‘사찰’ 문제를 오히려 흐리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사찰문제를 좀 더 확실히 잡기 위해서라도 이들 소장파의 결백성은 반드시 증명되어야 한다.

만일 이런 과정이 없다면, ‘사찰’ 주장이 권력투쟁의 수단과 명분으로 전락될 것이고, 그렇다면 이는 힘이 빠지고 있는 권력을 때려 ‘배’를 갈아타거나, 줄을 다시 서서 공천이나 받자는 의미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반대편이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나 이상득 의원 쪽도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이상득 의원은 본인이 배후인지 아닌지를 공인으로서 밝혀야 할 의무가 있고, 청와대는 민간인 사찰 문제를 알았든 몰랐든 일단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자로서 사과해야 한다. 사찰이란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인 사찰 문제가 정말 ‘조사’였는지 떳떳하게 증거를 가지고 밝혀야 한다. 도대체 어떤 제보가 들어왔고, 그 제보를 확인하기 위해 어떻게 조사했고,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럴 자신이 없다면 이는 ‘조사’가 아닌 ‘사찰’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신율의 눈

결론적으로 한쪽에서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신들 행위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판 막장드라마의 종말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우리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을 좀 알아줬으면 한다. 눈 가리고 아웅은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