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코미디 뮤지컬, 비틀어보는 재미

스팸어랏

재미있는 영어단어 중에 파이토네스크(pythonesque)라는 형용사가 있다. 엉뚱하고 초현실적이며 4차원 같은 사람이나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말을 직역하면 ‘파이톤스럽다’는 뜻이다. 바로 영국의 6인조 코미디언 그룹인 ‘몬티 파이튼’의 이름을 원용해 만든 단어다. 우리로 치자면 ‘심형래 같다’ 혹은 ‘정준하스럽다’ 쯤 되는데, 엄연히 영어사전에 등록된 표준어다.

패러디 뮤지컬 ‘스팸어랏’에 출연한 주인공들(왼쪽이 박영규).

‘몬티 파이튼’은 1970~80년대 주로 영미권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들이 만든 대표적인 TV 프로그램으로 ‘몬티 파이튼의 플라잉 서커스’가 있다. 우리의 ‘웃찾사’나 ‘개콘’쯤 되는 코미디물로 영국 BBC에서 총 65회 방영되는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원래 영어 표현의 ‘Flying Circus’란 하늘 위의 공중 곡예라는 뜻이지만, 정작 서커스나 곡예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프로그램 시작과 끝에 높은 계곡에서 몸을 던지는 투신(?) 개그가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면 시작과 함께 뛰어내려 피투성이가 된 몬티 파이튼의 한 멤버를 카메라가 다시 비춰준다. 한참 만에 카메라를 발견한 그가 “또 뛰어내려?”라고 대사를 뱉을 때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다. 조금은 해괴하지만, 해학과 풍자, 비유를 통해 웃음을 자아내는 영국식 엽기 코미디의 전형이라 부를 만하다. 밀고 쓰러지는 몸 개그와 말장난의 스탠딩 개그를 적절한 상황극으로 꾸며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요즘 국내에서 막을 올린 코미디 뮤지컬 ‘스팸어랏’은 바로 이들이 만든 영화를 무대용으로 각색한 것이다. 기본 줄거리는 영국의 전설속 군주인 아서왕이 성배를 찾아 모험을 펼친다는 내용인데, 물론 ‘파이토네스크’하게 비틀어보는 재미가 묘미다. 덕분에 원탁의 기사는 오합지졸의 ‘당나라’ 군대로 묘사되고, 용맹하기로 유명한 랜슬롯은 커밍아웃을 하는 동성애자로 그려진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는 사실 잔뜩 봇짐을 맨 채 뒤따르는 하인이 코코넛 열매 껍질로 두드려 내는 소리이며, 하늘에서 들려온 성스러운 계시의 장면은 속옷이 보이니 위를 치켜보지 말라는 하느님의 호통으로 대체된다. 물론 ‘웃자고 하는’ 설정이요 우스갯소리다.

원래 영화 제목은 ‘몬티 파이튼과 성배(Holy Grail)’였는데, 뮤지컬로 만들어지면서 더욱 익살스럽게 바뀌었다. 아서왕이 살았다는 성 이름인 ‘캐멀럿’에 고기 통조림인 ‘스팸’을 붙인 것으로, ‘몬티 파이튼’이 스팸을 자주 개그 소재로 활용한 것에서 유래된 표현이기도 하다. 풀어서 말하자면 ‘스팸 많이(Spam-a-lot)’라는 뜻도 된다.

우리말 공연 소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우려들이 제기되기도 했다. 영미권 특유의 유머 코드가 우리 관객들에게 제대로 소통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막을 올린 지금, 기우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개그맨보다 웃긴 탤런트라는 박영규나 초반에 무대를 함께 꾸몄던 정성화의 연기도 안정적이지만, 쉴 새 없이 대사를 쏟아내며 익살을 이어가는 조연들의 연기가 한국식 적용을 완성해낸 느낌이다.

문화내시경

쌉싸래한 뒷맛도 빠트리지 않았다. 브로드웨이의 히트 뮤지컬을 만들어야 한다는 미션에는 ‘지킬 앤 하이드’나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헤드윅’ 그리고 ‘헤어스프레이’ 패러디 캐릭터들의 배꼽 잡는 익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스타가 없으면 흥행이 안 된다는 노래에선 현실 풍자가 주는 통쾌함마저 느껴진다.

원종원<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jwon@s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