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20세기형 인간’의 ‘21세기적 살인’

<이형사님 수사법>

강남구 세곡동 비닐하우스촌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물론 실제가 아닌 허구다. 작가 겸 연출가 장우재가 사건 발생지역을 하필 세곡동으로 설정한 것은 그 동네가 바로 ‘강남구’에 속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적 욕망이 포화 상태를 이룬 강남구에서 세곡동은 마치 섬처럼 둥둥 떠 있다. 살인 사건은 비닐하우스가 밀집된 그 동네 텃밭에서 발생했고, 범인으로 지목된 피의자 고씨는 강남경찰서 강력1반에서 취조를 받는다. ‘강남구’라는 화려한 바다에서 남루한 섬처럼 살아온 고씨는 문예지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긴 했지만 한번도 문명(文名)을 떨쳐보지 못한 ‘찌질한 시인’이다.

이쯤 되면 그에게 연민을 가질 법도 하다. ‘비록 사람을 죽이긴 했지만, 사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식의 연민 말이다. 하지만 이 연극은 다르다.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이 연민을 가질 틈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충격적인 연쇄 살인이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묘사되고, 강력1반의 형사들은 민중의 지팡이라기보다 야바위꾼에 가깝다. 50대 중반의 반장은 조작수사의 달인, 유일한 여자 경찰인 이형사는 허구헌날 나이트 클럽에서 죽치는 ‘날나리’다.

무대는 강력1반 수사실. 2시간 가까이 정신없이 펼쳐지는 언어의 유희 속에서, 관객이 기억해야 할 포인트는 대략 세가지쯤으로 보인다. 하나는 작가 겸 연출가 장우재가 은근히 감춰놓은 가치적 이분법. 이를테면 그것은 강남구 속의 세곡동, 김민기와 아이돌 그룹 2NE1, 시를 쓰는 것과 춤을 추는 것 등으로 변주되면서 대립항의 구도를 형성한다. 말하자면 도저히 접점을 찾기 어려워진 20세기와 21세기, 그 측량할 길 없는 ‘차이’를 드러낸다.

또 하나의 열쇠는 ‘왜 죽였나?’라는 것, 나머지 하나는 요절복통 코미디로 흘러가는 강력1반의 ‘야바위 수사법’이다. 그래서 연극이 중반으로 치달을 즈음, 두 명의 인물을 향해 자연스레 관객의 시선이 꽂힌다. 한 명은 살인 당사자로 지목된 고씨, 또 한 명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야바위 수사법으로 모든 자백을 받아내는 미모의 이형사다.

고씨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김민기의 ‘상록수’를 부르며 무대로 등장한다. 사실 그는 이 연극에서 가장 웃기는 캐릭터다. 꾀죄죄한 몰골로 무대에 선 고씨는 시를 쓰고 고추밭을 가꾸는 전형적인 ‘20세기형 인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21세기적 살인자’로 변했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미모의 이형사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표정으로 조작 수사를 펼쳐 결국 자백을 받아낸다. 살인 동기는 고씨의 콤플렉스. “키높이 깔창을 깔아도 170cm가 되지 않는” 고씨는 “여자들이 날 자꾸 내려다보니까” 발목 절단 연쇄살인을 저질렀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아주 천연덕스럽다. “당신은 키 큰 여자를 보면서 그런 생각한 적 없냐?”고 관객을 향해 되묻는다. 그러자 강력1반 반장이 “이거야말로 진정한 21세기형 살인 동기”라며 환호작약한다.

문화내시경

<이형사님 수사법>은 21세기를 역설적으로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다. 말도 안되는 일들이 시시때때로 벌어지는 비논리와 무개념의 세태를, 웃음과 유희의 기법으로 2시간 내내 조롱하고 야유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연극의 리듬. 처음부터 끝까지 알레그로 템포로 흘러가다보니 2시간이 좀 버겁다. ‘좋은 배우’ 윤상화가 테크닉이 지나치게 앞선 연기를 펼치는 것도 섭섭한 뒷맛을 남긴다. 12월 12일까지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2관.

<문학수 경향신문 문화부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