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남극일기 인간의 심리, 공포지수

극한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두려움이 없을까.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설봉 앞에 선 알피니스트, 대규모 차량 폭파 신을 앞둔 스턴트맨, 시동을 막 걸고 장애물을 노려보고 있는 오토바이 레이서들에게 “당신들은 정말 무섭지 않으냐”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산악인 박영석 대장 일행이 안나푸르나 남벽 신루트를 개척하다 끝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박 대장의 비보를 접하면서 떠오른 영화가 <남극일기>(2005)다. <남극일기>의 오프닝 크레딧에는 ‘탐험 슈퍼바이저 박영석’이라는 이름 석 자가 뚜렷이 나온다.

임필성 감독의 <남극일기>는 6명의 남극탐험대원들이 ‘도달 불능점’에 도달하기 위해 분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도달 불능점이란 남극대륙 해안으로부터 가장 먼 지점에 있는 땅으로 해발 3800m의 고지다. 최저기온은 영하 80도. 1958년 소련 탐험대가 처음 도달했다. 당시는 미·소 냉전 때였다. 소련은 여기에 보스토크 기지를 지었다. 미국이 남극점에 지은 아문젠-스코트기지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탐험대장은 최도형(송강호 분)이다. 민재(유지태 분)는 팀의 막내다. 눈 속에서 80년 전 영국 탐험대의 ‘남극일기’를 우연히 발견한다. 일기 속 영국 탐험대는 6명. 한국 원정대와 같은 수다. 불길한 감이 든다. 원인 모를 이유로 대원이 쓰러지고, 크레버스에 빠지고 블리자드가 불어닥친다. 탐험대 내 분열까지 생기면서 팀워크가 깨진다. ‘죽을 수 있다’는 공포는 환영과 환청을 몰고 온다. 남극 불능점 도달은 이들에게 이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의 공포는 대상을 모를 때, 희망이 사라졌을 때 극에 달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경제는 심리다. 공포심이 닥칠 때는 무슨 수를 써도 이겨내기 힘들다. 2008년 금융위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얼마나 될지 모르는 파생상품에 대한 두려움’은 전 세계 금융을 공포에 빠뜨렸다.

투자에 대한 공포심리를 지수로 만든 게 있다. 빅스(VIX·Volatility Index)지수다. 빅스지수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옵션이 향후 30일간 얼마나 움직일 것인지, 그 기대치를 지수로 만든 것이다.

빅스지수가 ‘30’이라면 앞으로 한 달간의 주가가 30% 등락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빅스지수가 클수록 주식시장은 더 크게 출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시장이 불안정하다는 의미니까 투자자들은 갖고 있는 주식을 팔아치운다. 증시가 떨어진다. 반대로 빅스지수가 낮으면 시장이 안정됐다는 얘기다. 투자자들이 주식을 사러 들어온다. 통상적으로는 주식시장이 오른다. 이 때문에 빅스지수를 공포지수(Fear Index)라고 부른다.

빅스지수는 20∼30이 평균 수준이다. 20 이하는 ‘흥분구간’, 40 이상은 ‘공포구간’이라 부른다. 흥분구간에서는 주가가 오르고, 공포구간에서는 주가가 내린다. 그런데 빅스지수가 50을 넘어서 ‘극공포’에 이르면 다시 주가가 오른다. 투자자들이 “이제는 바닥”이라고 생각해 주식을 사서 들어오기 때문이다. 역대 빅스지수는 2008년 10월이 가장 높았다. 장중 89.53을 기록했다.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한 직후였다.

우리나라에도 공포지수가 있다. V-코스피지수다. 코스피200 옵션가격을 이용해 KOSPI200 지수의 변동성을 나타낸다.

“저 흰색. 사람들은 저걸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지. 하지만 저 밑에 얼마나 많은 피가 고여 있는지, 자연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르고 말야.”

영화 속 경제

남극탐험대장 최도형은 남극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최 대장의 충고는 주식시장에도 적용된다. 주식시장에서 흘러다니는 돈은 아름답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개미들이 피눈물을 쏟았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아직도 주식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른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