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제자백가 사상의 상호작용 들여다보기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넘나드는 대중적 철학 저술로 주목을 받아온 철학자 강신주씨가 제자백가의 사상지도를 그리는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를 시작했다. 1권 <철학의 시대>는 모두 12권으로 완간할 예정인 이 방대한 시리즈의 프롤로그에 해당한다.

<철학의 시대>
강신주 지음·사계절·1만5000원

저자는 철학의 현장성과 현재성을 강조해온 철학자다. 2000년 전 중국에서 발흥한 제자백가의 사상을 지금 이 시대에 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여는글에서 “우리는 상처받을 가능성을 줄여주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상처받을 가능성을 증폭시키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저자는 후자라고 본다. 제자백가가 활약하던 춘추전국시대가 바로 그랬다.

전쟁과 살육이 난무하던 시대를 살았던 제자백가는 “인간이 상처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줄여주는 길을 모색했다. 그 모색의 결과가 그들 각자가 나름의 방식으로 도(道)라고 명명한 사상이다. 요컨대 저자는 이 시리즈를 통해 오늘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제자백가를 통해 찾아보려는 것이다.

저자가 향후 제자백가의 사상을 되짚는 방식이 전복적 해체와 재구성이 될 것이라는 점은 이 책에서부터 뚜렷하게 드러난다. 제자백가라고 하면 흔히 유가, 묵가, 도가, 법가, 명가 등의 학파 이름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저자는 정작 제자백가가 활동하던 춘추전국시대 당시에는 이런 식의 구분법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학파 구분을 만들어놓은 것은 한 제국시대의 역사가들이다. 문제는 후대 역사가들이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적 파노라마를 구획하는 과정에서 제자백가 사상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거세해버렸다는 점이다. <사기>의 중심 저자 사마천과 <한서>의 중심 저자 반고는 한 제국의 녹봉을 먹는 관변 역사가의 입장에서 제자백가를 다뤘다. 그 결과는 유학에 절대적 비중을 두면서 다른 사상을 상대적으로 폄하하거나 본의를 왜곡하는 해석으로 드러났다.

저자는 한 제국 시기에 나온 <회남자>, <사기>, <한서>에 기술된 제자백가 관련 내용을 대조함으로써 이 같은 주장을 논증한다. 후한시대 사서인 <한서>에서 유학은 제자백가 중 최고의 학설로 평가되지만, 전한시대 사서 <사기>만 봐도 사정이 다르다. 사마담-사마천 부자가 대를 이어 저술한 <사기>에서 사마담은 도가의 학설을 가장 높이 평가한 반면 사마천은 공자의 학설을 우위에 뒀다. 그러나 한 제국 초기 사서 <회남자>에는 학파 구분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학파 구분과 유학의 상대적 우위는 한 제국에 이르러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신간 탐색

이 때문에 저자는 “제자백가의 사상을 제대로 음미하기 전에 제자백가에 덧씌워진 한 제국의 아우라를 지워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장자> ‘도척’ 편의 화자에게 국가는 “관제를 통해 사람들을 억압하는 폭압적 기구”다. 저자는 “도척의 역사철학에 끌리고 있는 사유의 편린들을 끌어모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억압되고 은폐되었던 인간의 자유를 노래하는 사유”를 되찾는 길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제자백가 사상지도 그리기가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예고하는 대목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