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가난은 결코 네 책임이 아니야!

<완득이>

완득이는 세상의 모든 불행을 안고 산다. 아버지는 척추장애인. 어머니는 필리핀인. 그나마 어릴 때 그를 버렸다. 장애를 가진 삼촌도 있다. 잘 살리가 없다. 기초생활수급을 받는다. 완득이는 고2. 한참 반항기가 심할 때다. “가출을 위한 모든 조건이 다 갖춰졌다”는 완득이의 생각은 틀린 게 아니다. 완득이는 이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완득이>(2011)는 달동네에 사는 도시빈민을 제대로 응시한다. 가난, 장애, 다문화가정 등 현대판 도시빈민의 코드는 다 갖췄다. 영화가 무거울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면 오산이다. 가난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동화 같은 옥탑방 이야기도 아니다.

힘든 삶을 오롯이 그리면서도 웃음이 있다. 사회 부조리에 대해서는 꼼꼼한 비판을 가한다. 한 마디로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무거운 주제를 끌고나가는 힘이 탁월하다.

영화는 완득이(유아인 분)와 담임인 ‘똥주’ 선생(김윤석 분)의 시각을 따라간다. 완득이 옥탑방 옆에는 똥주 선생이 산다. 똥주 선생은 완득이가 수급받은 햇반을 뺏어 먹고, 불시에 들이닥쳐 소줏잔을 나누기도 한다. 완득의 출생 비밀을 공개하는 것도 똥주 선생이다. 완득이는 이런 똥주 선생이 싫다. 똥주 선생만 없으면 언제든 비뚤어질 수 있을 텐데.

완득이는 태어날 때부터 비주류였지만 똥주 선생은 주류를 스스로 거부했다. 중소기업 사장의 아들이면서 고등학교 사회선생이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를 지켜주기 위해 교회의 전도사가 됐고, 성적 줄세우기를 거부하는 괴짜 선생이 됐다.

‘부르주아’의 아들 똥주 선생은 가난을 어떻게 볼까. 그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주목했다.

똥주 선생은 학생들에게 묻는다. “카를 마르크스는 생각했지. 왜 가난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도 가난하고 부자인 놈들은 쳐노는데도 부자일까?”

주류경제학은 경제현상을 ‘개인’에게서 시작한다. 사회는 매우 공정하다. 자신이 잘하면 부자가 되고, 못하면 빈자가 된다. 사회를 탓하는 것은 변명일 뿐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사회’에서 시작한다. 자본가가 있고 노동자가 있다. 개인은 사회계급에서 벗어날 수 없다. 노동자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자본가에게 착취를 당한다. 그가 창출한 가치보다 낮은 임금을 받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그 차액을 모아 더 큰 부자가 된다. 이것이 카를 마르크스가 보는 ‘부자는 계속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계속 가난해지는’ 이유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개인’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에 밀려 곧 사멸될 것 같았다. 그런데 금융위기가 터졌다. 극적으로 부활했다.

금융위기 초창기 때 개인을 탓했다. 부동산에 열광한 개인의 탐욕이 문제였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대출을 권해 버블을 일으키고 열심히 일해 일군 부를 파생상품 하나로 거둬가버리는 금융시스템이 뒤에 있었다. 금융위기에도 이들은 떵떵거리며 살았다. 원래부터 개인은 이길 수가 없는 시스템이었다. 월가 점령시위는 그래서 시작됐다.

33대 0. 서울대 내 주류경제학자와 비주류경제학자의 숫자다. 지난 2008년 김수행 교수 퇴직 이후 서울대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은 명맥이 끊겼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고2 수업에도 나오는데 말이다.

똥주 선생은 완득에게 외친다. “가난한 걸로 쪽팔린다고 생각한 게 쪽팔릴 거다”. 가난은 네 책임이 아니니 기죽지 말라는 의미다.

영화 속 경제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무너진다고 밝혔다. 공황으로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에 의해서다. 마르크르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한 해법으로 ‘복지’를 내세우고 있다. 양극화를 해소하고, 내수 기반을 키워 안정적인 성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복지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한계에 봉착한 지금, <완득이>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