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3월 15일 자정.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에밀 하샤는 베를린 빌헬름 거리에 위치한 제3제국 총통관저에 있었다. 당시 독일군은 파죽지세로 체코슬로바키아의 턱밑까지 진군했다. 하샤는 히틀러를 만나기 위해 총통관저 내부를 걸어가는 동안 “얼굴이 창백해지고 초조함과 어지러움을 느꼈다.”
<거대건축이라는 욕망>
데얀 수딕 지음·안진이 옮김· 작가정신·2만8000원
히틀러의 총통관저는 의도적으로 방문객들을 주눅들게 하기 위해 설계됐다.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가 설계한 총통관저는 폭은 좁지만 길이는 무려 400m에 달했다. 중간중간에는 극적이고 장대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거대한 조형물을 배치했다. 총통의 집무실은 그 끝에 있었다. 총통관저 내부공간이 주는 심리적 효과는 한 마디로 위압감이었다. 하샤는 히틀러를 만난 지 몇 시간 후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히틀러는 거대건축에 집착했다. 패전으로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베를린을 짓누를 듯 거대한 건축물들이 지배하는 제국의 수도 ‘게르마니아’로 개조한다는 구상도 마련해놓고 있었다. 영국의 건축비평가 데얀 수딕은 <거대건축이라는 욕망>에서 히틀러의 거대건축 집착을 “건축의 공간적 규정력을 통해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고자 했던 히틀러의 결심”이라고 말한다.
건축을 정치적 선전의 도구로 삼았던 것은 히틀러만이 아니다. 거대건축에 대한 집착은 이념을 가리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적대국으로 독일과 싸웠던 소련에서는 스탈린이 수도 모스크바를 자신의 입맛대로 개조하고 있었다. 독일과 함께 유럽 파시즘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중국의 마오쩌둥 등 자신의 나라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했던 다른 독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독재자들은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며 자신의 의지만으로도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건축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고 말한다.
거대건축 집착이 비단 독재자들에게서만 발견되는 현상도 아니다.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은 파리 외곽에 규모면에서 샹젤리제의 개선문을 능가하는 신 개선문을 세웠다. 저자는 논의를 더욱 확장한다. 정치권력만이 거대건축에 집착했을까. 정치권력만 권력은 아니다. 자본권력 또한 권력이다. 대부호들 또한 정치권력자들 못지않게 거대건축을 사랑했다. 거대자본이 전 세계 대도시에서 끊임없이 지어올리고 있는 초고층 빌딩이 그 증거다. 요컨대 거대건축에 대한 집착은 권력의 흔적을 물질적 형태로 새겨놓기를 원하는 세상 모든 권력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속성인 것이다.
저자는 “(건축의) 기원은 실용적인 행위에 있을지라도 건축은 인간 심리의 강력하고 특별한 발현이다”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건축에는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심리상태가 그대로 표현되게 마련”인데 건축가들 또한 이러한 권력의지와 부지불식간에 타협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저자는 “건축가들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든 간에 결국 자기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건축가를 고용하는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충동에 의해 움직인다”고 말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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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커지는 채 상병 의혹
‘이채양명주’ 의제로 올려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