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무력한 가장, 폭력에 무너진 가정

(주)에이브이에이 엔터테인먼트

제목 차가운 열대어

영문제목 cold fish

제작국가 일본

등급 18세 관람가

상영시간 144분

장르 스릴러, 공포

개봉일 2012년 9월 21일

언젠가 소노 시온은 “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지만, 또 미움받고 싶기도 하다. 나는 변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영화는 대개 과잉되어 있고, 종종 느닷없는 사색에 잠기거나 얼렁뚱땅 모호하게 완결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그가 지금 현대 일본영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가 된 것은 그의 영화 속에서 번번이 되풀이되는 폭력이 실은 공동체의 붕괴와 그 와중에 소외된 개인들을 향한 깊은 연민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영화는 역설적이다. 뒤집어서 봐야 한다. 그의 영화는 늘 문제작일지언정, 적어도 단 한 번도 냉소 안으로 후퇴해 비겁하게 운신한 적이 없다. 소노 시온은 자신의 현실감각을 영화 안에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투영하려 분투한다. 그것은 지금의 일본영화 지형도 위에서 드물게 뜨거운 것이다. 소노 시온 영화의 냉기를 추상적인 관조로 풀이하는 비평은 서투르고 모자란 것이다.

이번에 개봉한 <차가운 열대어>는 소노 시온의 2010년 작품이다. 소노 시온 영화 가운데서도 신체 훼손 등 폭력의 수위가 강한 편이다.

샤모토는 작은 열대어 가게를 운영한다. 두 번째 부인과 고등학생 딸이 있다. 그는 온화하고 말수가 적지만 나약하고 소심하며 결단력이 없는 가장이다. 딸은 부모를 혐오하고 아내는 억눌려 있다. 어느날 열대어 체인점을 운영하는 무라타가 그들의 일상에 침입한다. 무라타는 호의를 가장해 접근하지만 이내 샤모토의 아내를 범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샤모토는 자신과 달리 호탕하고 강인한 무라타의 권유에 이끌려 동업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곧 무라타의 엽기적인 살인행각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만다.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듯 <차가운 열대어>는 사이타마 애견가 연쇄살인이라는 실제 사건 위에 <어둠의 표적>의 아이디어를 가져와 만들어낸 이야기다. <어둠의 표적>과 마찬가지로 <차가운 열대어>에는 무력한 가장과 그에 반해 적극적이고 원시적이며 폭력적인 주변 세계, 되레 그에 이끌려 침범당하고 파괴되는 가정, 그리고 결국 폭력으로 똑같이 대응하게 되는 가장의 모습이 담겨 있다. 어떠한 선의도 기대할 수 없는 야만의 세계에서 탈출하기 위해 폭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이야기를 관통한다.

그러나 소노 시온의 개성으로 인해 <어둠의 표적>과 <차가운 열대어>의 이슈는 극적으로 엇갈리게 된다. <차가운 열대어>의 문제의식은 엽기적인 살인범이 아니라 소심하고 무력한 가장에게 닿아 있다. <자살클럽>의 무라타, <노리코의 식탁>의 테츠조와 마찬가지로 <차가운 열대어>의 샤모토는 제대로 된 가장의 역할에 실패한 인물이다.

소노 시온의 영화는 이런 아버지들에게 엄격하다. 그의 초기작 안에서 주로 “당신은 당신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통해 제기되었던 문제, 즉 가정 안에서의 자기 역할에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충실했느냐, 사실 너 하나 좋은 사람 되려고, 혹은 애초 늘 도피하고 싶었으나 자기 욕망을 외면한 덕분에 그 책임을 결과적으로 방기해버린 것은 아니냐, 지금 이 가정이 파괴된 것은 저들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샤모토의 나약함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탐색함으로써 가족 해체라는 문제의 근원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터치스크린

최근 소노 시온의 영화는 2011년 <두더지> 이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후루야 미노루의 원작만화를 영화화한 <두더지>는 (원작과 달리) 밑바닥으로부터 솟구쳐 오르며 질주하는 응원의 영화다. 개인과 공동체를 향한 소노 시온 영화 특유의 염려와 애증은 일본 대지진 이후 그 접근방식을 달리한 것으로 보인다. 현실을 외면하지 말되 그것을 보여주고 비틀어 호소하는 지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희망하고자 하는 것이다. 곧 부산국제영화제에 그의 최신작 <희망의 나라>가 공개된다. 그에게 참 안 어울리는 제목이다. 이 영화를 빨리 보고 싶다.

허지웅<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