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열혈 마초 아버지의 가족 구하기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제목 테이큰 2

감독 올리비에 메가톤

출연 리암 니슨, 매기 그레이스

배급사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제작국가 프랑스

등급 18세 관람가

상영시간 92분

개봉일 2012년 9월 27일

일단 포스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편과 달리 힘겹게 뒷짐을 지고 서 있는 국민 아빠 리암 니슨의 모습으로 미루어 알 수 있듯, 이 분은 지금 굉장히 피곤하다. 52년생에게 뜀박질을 시켜놓고 여러분 지금 잠이 옵니까. 원사에게 각개전투 교장에 나가 짬통을 나르라고 하면, 그걸 하는 사람도 지켜보는 사람도 피곤할 수밖에 없다. 악인들은 환갑잔치 깜짝 이벤트에 급조되어 고용된 배우들처럼 무의미하고 무력하게 주먹이 조금만 스쳐도 죽어 나가고 이야기는 금세 끝난다.

<테이큰 2>는 전편 이야기와 정확히 이어진다. 전편의 인신매매 일당은 하필 엄하게도 리암 니슨의 딸을 노렸다가 세상과 이별한다. 속편의 악당은 전편에서 죽음을 맞은 인신매매단 두목의 아버지다. 그는 아들의 복수를 위해 주인공과 그의 전처, 그리고 딸을 노린다. 제법 똘똘해진 딸은 도망치는 데 성공하고 주인공도 탈출하지만 아내가 남아있다. 이제 남은 건 철저한 응징뿐이다. 횡스트롤 액션 게임에서 적을 쓰러뜨려 죽이면 그 시체조차 반짝반짝 깜박거리다 뿅하고 사라지듯이, <테이큰 2>의 악당들은 병풍처럼 나뭇잎처럼 우수수 떨어져 자취를 감춘다. 주인공은 수월하게 악당들을 모두 때려 눕혀 처단하고 가족을 건사한다. 그리고 해피엔딩.

<테이큰 2>는 단선적이고 빠르며 어려울 게 없는 이야기다. 악당들은 도무지 하나같이 개성이 없다. 개성이 없어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얻어터지고 쓰러지고 죽어도 별다른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악당 두목인 무라드는 더 멋진 캐릭터가 될 수 있었다. 리암 니슨이 가족을 위해 몸을 던지듯, 악당 두목에게도 아들의 복수라는 그럴 듯한 당위가 있다. 사실상 그들은 거울을 보고 서서 총을 들이대고 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만든 사람들은 첨예한 당위에의 대립이나 딜레마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찌됐든 가족을 지키기 위한 마초 아버지의 분투라는 플롯 자체에는 언제나 확실히 불가피한 매력이 있게 마련이다. 리암 니슨이 연기하는 브라이언은 <다이 하드> 시리즈의 존 맥클레인과 닮은꼴이다. 그들은 실패한 가부장이다. 의지는 있으나 가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이혼당하거나 자식들에게 외면받는 상황이다. 그러나 테러리스트와 얽혀 아내와 자식이 위험해지는 순간, 이 실패한 가부장들은 생명력을 얻는다. 가족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동분서주하는 동안 그들은 잠시 아버지로서의 지위를 회복한다.

이야기 끝에 가족과 포옹하며 모든 게 다 잘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비일상적인 위기상황에서만 인정받고 기능하는 아버지다. 그들은 여전히 소외되고 외로우며 가족을 그리워하는, 고립된 아버지로서 속편에 복귀한다. 그리고 다시 가족을 구하며 잠시 동안 지위를 회복한다. 흥행이든 뭐든 여건이 되는 한 이 순환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열혈 마초 아버지 영웅의 뜀박질이 영화적 매력을 갖는 건 그것이 끝내 이루어질 수 없는 회복을 향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테이큰> 시리즈가 유독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이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터치스크린

다소 기운이 빠진 모양새에도 <테이큰 2>를 즐겁게 지켜볼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리암 니슨 덕분이다. <쉰들러 리스트>로 뒤늦게 성공한 이후, 그가 등장한 영화 가운데 별 볼 일 없는 작품은 많지 않다. 젊은 시절 복싱을 하다 부러져 뒤틀린 그의 코는 관객에게 이상한 안도감과 신뢰를 남긴다. 리암 니슨의 대표작은 숱하게 많다. 그러나 그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고 싶은 관객이라면 올리버 히르비겔의 2009년도 작품 <천국에서의 5분간>을 추천한다. 리암 니슨과 제임스 네스빗이 연기한 <천국에서의 5분간>은 복수라는 화두를 가지고 칼부림 한 번 없이 가장 성숙하고 속 깊은 방식으로 관객의 영혼에 뜨거운 자취를 남긴다. 인간은 지옥에 가기에도, 그렇다고 천국에 가기에도 너무 안일하고 안쓰러운 존재다. 이 영화가 늦게라도 한국에서 개봉된다면, 그 빛나는 영화적 성취에 관해 다뤄볼 수 있을 것이다.

허지웅<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