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아직도 군림하는 신민형 정치 문화

2012년은 대통령의 일방적인 유신 선포로 정상적인 헌정 절차가 중단된 사건이 일어난 지 40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박정희의 유산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으로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저자는 박정희 독재의 흔적을 ‘박정희 유전자’라고 표현한다. 독재정권 시절의 부정적 유산이 세대를 거듭해 복제되는 유전자처럼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다는 뜻이다.

<박정희 유전자> 김재홍 지음·개마고원·1만6000원

저자가 말하는 ‘박정희 유전자’란 무엇인가. 우선 제왕적 대통령과 재벌의 지배다. 체제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실형을 선고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었다는 점 하나만 보더라도, 당시 대통령에게 어느 정도 권력이 집중됐는지에 대해서는 두 말이 필요하지 않다. 박정희는 이 같은 권력을 이용해 국가주도형 성장을 밀어붙였는데, 단기간의 고효율 성장을 위해 집권세력이 선정한 특정 집단에 특혜를 주는 관행이 정착됐다.

다음은 언론·사상·문화의 통제다. 박정희 정권은 1964년에는 언론윤리위원회법을 제정해 야당 언론을 탄압했다. 1966년에는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경향신문을 강제매각했다. 1970년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언론자유투쟁을 벌이다 대량으로 해직된 사건은 박정희 정권 시기 자행된 언론 탄압의 정점이다. 박정희 정권의 문화통제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은 1968년 ‘국민교육헌장’을 제정해 전 국민을 상대로 의식 차원에서의 ‘정치교육’을 강제한 일이다. 저자는 “오늘날 박정희 신화의 잔재가 질기게 남아 있는 이유도 바로 정치교육을 통해 당시 국민 2세와 성인들에게 박정희 독재가 국가 발전을 가져왔다는 ‘의식 최면’을 걸어놓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박정희 정권이 남긴 부정적인 정치적 유산은 드넓게 퍼져 있다. 저자는 한국 정치문화는 아직도 “박정희-전두환 체제 32년간의 신민형” 정치문화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말한다. 신민형 정치문화란 권력자가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정치문화를 말한다. “합리적이고 탈권위적인 지도자를 나약하고 무책임한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 “타협과 협상보다는 극단적 대립과 갈등이 일상화하는 정치문화”, “분배와 복지, 삶의 질과 인간주의, 자연·생명보호와 환경문제 등 정신적 가치가 무시되는 정치문화” 등이 모두 박정희 정권 시기의 퇴행적 정치문화가 남긴 유산이다. 저자는 5·16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가 2년 반 동안 만든 1000개 가까운 법률이 우리 실정법상에 남아 있다면서 실정법의 역사 청산도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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