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칼럼]누가 인터넷을 지배할 것인가

지난 12월 14일 두바이에서 국제전기통신회의(WCIT)의 결과가 발표됐다. 1988년에 제정된 24년 된 국제통신규약(ITRs)을 개정하기 위한 회의로, 인터넷 관련 규제가 포함될 것으로 추정돼 회의 개최 전부터 전 세계를 들끓게 한 공론의 장이었다. 한 주의 격론을 거쳐 제정된 결정문은 서문에 인권을 존중한다는 조항이 포함되긴 했다. 그러나 5조 1항의 보안과 2안의 스팸과 관련된 규정은 충분히 권위주의적 통제를 위해 남용될 여지가 있어 논란을 잠재우기에는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은 결정문에 서명하지 않았다. 공론을 거쳐 어느 정도 합의안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따라서 이 반쪽짜리 합의안이 실제적인 효력을 가질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두바이에서 지난해 12월 열린 국제전기통신회의(WCIT)에서 참석자들이 쉬는 시간에 담소를 나누고 있다. | itupictures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협의안 제정은 ‘누가 인터넷을 지배할 것인가’에 대한 국제적 논의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역사적 함의를 갖는다. 그 첫 번째 이유는 1988년에 제정한 국제통신규약(ITRs)이 개정되는 배경이다. 국내에서도 작년의 카카오톡과 통신3사의 마찰에서 보듯이 전 세계적으로 국가 규제산업인 통신산업은 위축되는 가운데 인터넷산업은 급성장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정치적·문화적 활동도 증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인터넷 공간에 대한 국가의 규제 권한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국내외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거진 25년, 강산이 두 번 반 바뀔 시점에 국제전기통신규약 개정이 본격 논의된다는 건 이제 이런 인터넷 규제에 관련된 다양한 규범과 이해관계의 정면충돌을 예고한다. 실제로 내년 부산에서 ITU의 헌법 등을 개정할 수 있는 전권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며, 그때에도 인터넷을 누가,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 이유는 사실 알파넷(ARPANET) 시절부터 인터넷 초기 개발 및 관리를 주도했고, 계속 그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야심을 다른 국가들이 저지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1998년에 현재 인터넷 거버넌스에 관한 문제의 중심에 있는 아이칸(ICANN)이 설립된 까닭도 미국이 민간 자율 규제의 명분으로 그러한 다른 국가들의 인터넷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인터넷 주소자원(도메인 네임, IP 주소 등)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건 미봉책이었다. 결국 다른 국가들의 불만을 불식시킬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지난 2003년과 2005년, 새로운 인터넷 관련 협치(協治)의 모형을 찾기 위해 제네바와 튀니지에서 정보사회정상회의(WSIS)가 개최된 바 있고, 이후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IGF)이라고 하는 인터넷 규제에 관련돼 다양한 이해집단간 공론을 활성화하는 장(場)도 제도화하고 있다. 이러한 인터넷 권력구조의 재편성 현상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미국의 패권이 위축된 상황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세 번째 이유는 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1982년에 인터넷을 도입한 대한민국이 이번 합의안에 서명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구성한 대표단은 전통 통신산업 이해관계에 충실한 대표단이었다. 국내법과 상충이 적다며 인터넷의 미래는 고려되지 않았다. 한·중동맹과 한·미동맹이 저울질됐다. 거기에는 인터넷의 미래는 우리 정부만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 시민들의 미래이며, 인터넷의 미래가 자유로운 혁신과 표현의 미래임이 간과되어 있었다. 이는 전 세계 민주국가 중에서 희소하게 서명한 우리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와 다르게 케냐는 주변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 드물게 이번 결정안에 동의하지 않았다. 케냐는 3년 전 법원에서 인터넷 접근권을 기본권으로 판결한 바 있다. 인터넷 강국은 기술적 인프라만이 아니라 그 기술에 접근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것을 결정하는 제도적·사회적 인프라도 우수한 나라를 가리킨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투명하고 책임성 있는 인터넷 정책 결정이 일단 국내에서부터 시작되지 않는 이상, 이후 본격화할 인터넷의 미래에 관한 논쟁에서 우리가 리더십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김재연 <‘누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죽이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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