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칼럼]‘휴대폰 보조금 규제’가 소비자 보호?

몇몇 기업이 시장을 장악한 독과점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경쟁이 활발하지 않으며, 그 결과로 제품 혁신이나 가격 인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게 된다. 또한 기업들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 쉽게 담합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 대표적인 업종이 바로 이동통신 서비스다. 공공재인 전파를 기반으로 하는 이동통신 사업의 경우 참여 가능한 기업의 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데다, 투자비 규모상 대기업이 사업자가 될 수밖에 없다. 즉 참여 기업들은 초기부터 엄청난 혜택을 받고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동통신 업종은 태생적으로 독과점 시장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는 참여 기업들이 최대한 경쟁할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그 혜택이 소비자들에게 돌아가도록 할 중대한 책임이 있다. 정부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한 휴대전화 판매점에 현금과 단말기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전단이 붙어 있다. | 홍도은 기자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국 정부는 ‘휴대폰 보조금 규제’라는 방법으로 독과점 시장에서의 가격경쟁을 제한하고 있다. 독과점 시장에서 정부가 기업들의 경쟁을 제한함으로써 얻게 되는 효과는 과연 무엇일까? 의심할 여지없이 그것은 소비자 보호가 아니라 ‘독과점 기업의 보호’다.

하지만 방통위는 보조금 규제 이유가 소비자 보호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소비자가 보조금을 많이 지급받아 싼 가격으로 단말기를 구입하게 되면 단말기를 비싸게 구입한 기존 가입자가 과도한 보조금으로 인한 손실분까지 사실상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소비자간의 차별을 막기 위해 보조금을 규제해야 한다는 게 방통위의 주장이다.

정말 실소가 나오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방통위의 주장은 모든 소비자가 비싸게 휴대폰을 구입하고 비싼 통신요금을 지불하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보조금을 규제한다고 해서 이통사들이 통신요금을 인하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계속 방통위는 보조금을 규제해 왔지만 그 결과로 통신요금이 인하된 적은 없다. 그간 이통사들은 뭔가 조금 혜택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게끔 요금제를 디자인하면서 통신요금을 사실상 계속 올려 왔다. 더군다나 현재 이통사들의 요금제를 보면 담합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거의 대동소이하다.

이통사들이 보조금을 통한 가격경쟁을 한다고 해서 적자가 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익이 줄어들 뿐이다. 아무리 마케팅비를 지출해도 엄청난 이익을 낼 정도로 혜택받은 사업이 바로 이동통신 사업이다. 정부가 이통사들의 이익 감소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시장에서 알아서 결정할 일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휴대폰 보조금 규제가 법적 근거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2008년에 이미 보조금 규제를 명시한 법 규정이 사라졌지만 방통위는 여전히 법적 근거도 없는 ‘마케팅비 규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휴대폰 보조금 규제는 사실상 소비자 보호 효과가 전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기업들의 가격경쟁을 제한함으로써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논리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휴대폰 보조금 규제는 법적 근거조차 없는 규제 남용의 대표적인 사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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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당국은 더 이상 잘못된 일을 더 열심히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정부 당국은 시급히 휴대폰 보조금 규제를 철폐하고, 경쟁을 장려하고 담합을 감시하는 데 그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류한석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http://peopleware.kr)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