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TV]로맨틱 코미디와 호러의 만남

SBS 드라마 스페셜 <주군의 태양>(극본 홍정은·홍미란, 연출 진혁)은 무서운데 설렌다. 무서운 건 공포에서 오는 감정이고 설레는 건 사랑에서 오는 느낌인데, 어떻게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을까. 바로 이 부분이 <주군의 태양>의 장점이고 묘미인 것 같다.

<주군의 태양>은 돈밖에 모르고 까칠한, 그리고 심지어 잘 생긴 쇼핑몰 사장이 가진 건 없지만 밝고 명랑한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1994) 이후 20년간 수없이 봐온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이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특별할 수 있는 건 여주인공 태공실(공효진)이 사고가 난 후 귀신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귀신이 보이는 바람에 시도때도 없이 괴성을 지르고 실수를 하는 바람에 제대로 직장을 다니지 못한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남자주인공 주중원(소지섭)의 몸에 손을 대면 귀신이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 것을 알고 그의 주변을 맴돌게 된다.

SBS <주군의 태양> | SBS 제공

<최고의 사랑>의 홍정은-홍미란 작가와 <찬란한 유산>, <검사프린세스>, <시티헌터>를 연출한 진혁 PD가 뭉친 이 드라마는 ‘로코믹 호러’라는 장르를 지향한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큰 줄기에 공포라는 소재를 잘 접합시켰다.

드라마는 마치 공포물처럼 시작했다. 고시원에서 일하는 태공실이 청소를 하다 귀신과 마주하는 것이 첫 장면인데, 어두운 고시원의 복도와 계단, 음산한 느낌과 긴장을 고조시키는 음악만 보면 딱 납량특집 드라마다. 공포 드라마만 계속되면 컴퓨터 그래픽(CG)이 훌륭한 현대판 ‘전설의 고향’에 그쳤겠다. 하지만 이 영리한 드라마는 귀신을 퇴치해주는 멋진 남자주인공을 통해 공포물에서 로맨틱 코미디로 전환한다.

완벽해 보이지만 단점을 가지고 있는 남자주인공은 로맨틱 코미디의 단골 소재다. 예전에는 재벌 부모에 대한 애정 결핍이나 복잡한 가족관계에서 오는 열등감이 있었다면 요즘은 특이한 병을 주로 쓴다. <시크릿 가든>의 현빈이 폐소공포증에 시달렸듯이, <주군의 태양>의 주중원은 난독증이 있다. 이런 단점은 인간적 매력을 부각시킨다. 여주인공은 항상 밝고 사랑스럽다. 태공실은 로맨틱 코미디물의 공식대로 옥탑방에서 산다. 청소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지만 더 없이 긍정적인 성격으로 호감을 이끌어낸다.

두 장르를 결합했을 때, 각각의 장르가 가지고 있는 결함은 상호 보완된다. 그동안 그토록 많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돈 많은 남자가 가난한 여주인공에게 빠지는 이유는 항상 분명하지 않았다.

SBS <주군의 태양> | SBS 제공

<주군의 태양>은 이를 위해 공포를 적절히 이용한다. 남자주인공의 몸에 손을 대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주인공이기에 남자주인공과의 포옹을 납득하게 한다. 살기 위한 포옹인데 누가 뭐라 하겠나. 덕분에 주중원이 태공실의 옥탑방을 찾아왔을 때, 귀신 때문에 며칠 밤을 설친 비몽사몽 상태의 태공실이 주중원을 보자마자 덥석 껴안는 것이 가능했다. 교통사고가 발생하자 태공실이 귀신들이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벌벌 떨 때, 주중원이 “방공호 왔어. 숨어”라며 태공실을 품에 안는 장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클릭 TV

호러와 로맨틱 코미디의 상호보완 작용은 두 장르를 적당한 비율로 맞춰 썼을 때 나온다. 호러만 나와도, 또 로맨틱 코미디만 나와도 안 된다. 16부작으로 예정된 이 드라마는 이제 4분의 1 정도가 방송됐다. 두 장르를 적당히 혼용하면서 은밀하게 무섭고, 은밀하게 설레게 만들어야 하는 게 앞으로 남은 임무일 것이다.

<박은경 경향신문 대중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