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좋은 엄마’ 강박증’ 버리세요

우리 사회에서 모성애가 흔하게 발휘되는 것은 아이들의 등교 때인 것 같다. 아침 등교시간과 하교시간이 되면 각 학교 앞은 자녀를 내려주거나 태워가는 승용차들로 붐빈다. 아이들은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등교하고, 학원이다 과외다 야간자율학습이다 하면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를 가급적 편하게 해주고 싶어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등·하교 시간을 아껴 그 시간에 잠을 더 자게 하거나, 혹은 그 시간에 영어 단어라도 한 개 더 외우게 하기 위해서일 게다.

자녀들은 엄마의 이런 깊은 마음을 알아줄까.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할까. 소수의 엄마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엄마들은 자녀들에게 배신감을 맛볼 가능성이 큰 게 현실이다. 말하자면 ‘모성애의 비극’이다. 심지어 극도의 배신감에 이명 증상으로 고통받는가 하면 성형수술까지 한 엄마도 있었다. 자식에게 배신당한 자신이 밉고 한심한 나머지 새로운 얼굴로 살고 싶다며 성형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일러스트·만화그리는 목각인형

박모씨(42)는 남매를 두고 있는데 아들에 대한 기대가 엄청 컸다. 어릴 때부터 몇 시간씩 데리고 앉아 여러 가지 학습지를 풀면 아이는 단 한 번도 밀리는 일 없이 규칙적으로 풀었다고 한다. 아이는 엄마 마음에 들기 위해서 나가 놀지도 않고 하루 종일 책을 읽거나 학습지를 풀거나 해서 동네에서 유명했다. 오죽하면 학습지 회사에서 박씨에게 학습지 선생님 할 생각 없냐는 제의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3 겨울 마지막 기말고사 때 다른 애들처럼 공부 안 하고 시험을 보더니 달라졌다고 한다. 엄마는 무심결에 인근에 있는 고등학교는 ‘똥통’이라는 말을 아들 앞에서 했다. 그런데 불운하게도 아들이 그만 그 고교에 배정되고 말았다. 아들은 그 학교가 너무 싫다면서 아예 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글씨조차 보기 싫다며 책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신은 거의 꼴찌에 가깝다. 결국 엄마는 학기 중에 다른 지역으로 전학수속을 밟고 있다.

아들보다 먼저 탈이 난 것은 엄마였다. 작년부터 아들의 그 심한 방황을 지켜보며 우울증을 심하게 앓기 시작했다. 게다가 친정엄마까지 돌아가시자 자기가 살아온 인생 모두를 되돌리고 ‘리셋’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는 지난봄에 성형수술을 했다. 얼굴이 좀 달라지자 뭔가 새롭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은 엄마의 그 마음을 알지 못했다. ‘왜 성형을 했느냐’고 타박만 할 뿐 공부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박씨 모자에게는 당분간 환하게 웃을 날이 별로 없어 보인다.

재수생 큰아들과 고2 아들을 두고 있는 정모씨(46)는 두 아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이명 증세까지 생기는 바람에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스튜어디스 출신의 정씨는 한 미모 한다는 소리를 늘 들었었는데 몇 년 전 주위에서 못 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상했다. 이명 증세까지 나타났다. 온갖 정성을 다해 키웠던 두 아들 때문이었다. 큰아들은 대학을 떨어져 재수를 하고 있다. 중학교까지 공부를 잘했던 큰아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살았던 엄마는 이명이 생기고 속이 뒤집어져 그만 위장병까지 도졌다. 학부모회장도 맡고 있던 터라 충격이 더 컸다.

정씨는 자녀에게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이른바 ‘좋은 엄마 콤플렉스’, 즉 엄마의 역할에 대한 강박증이 있었다고 한다. 정씨는 “집안 일도, 아이 뒷바라지도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가 할 공부를 미리 완벽하게 준비해서 아이 앞에 들이밀었다고 한다.

“외울 단어, 들어야 할 영어 테이프, 그리고 학교 갔다 와서 밥 차리는 동안 아이가 그냥 시간 버리는 게 아까워 그 시간에 할 공부도 미리 세팅해서 바로 들이밀었어요.” 엄마의 열성에 힘입어서인지 두 아들 모두 중학교 때까지는 전교 10등 안에 들었다. 엄마의 기대대로 잘 크는 아들들에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남편까지 자신은 모든 걸 다 가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큰아들이 중3 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새벽 3시까지 인강 소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하고, 시간이 아깝다면서 자기 방문 밑에다 밥을 넣어달라고 하던 아들이었다. 큰아들은 엄마의 자랑거리였다. 주위 엄마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아이가 드디어 전교 1등을 할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기대에 부풀었다.

그런데 정씨는 어느 날 그만 까무라칠 뻔했다. 아들이 ‘판타지’에 빠져 있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성적이 죽죽 밀려났다. 담임이 상담하자는 연락이 와서 가보니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이 책상에다가 커다랗게 구멍을 내놓고 밑에다 판타지를 놓고선 공부하는 척하면서 수업시간 내내 딴 짓을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자리를 옮겨도 그 책상을 계속 들고다니니 그걸 수상하게 여긴 담임한테 걸렸다는 것이다.

둘째아들은 고등학교 입학 때 전교 2등을 했다. 서울대를 가겠다는 꿈을 가졌는데 최근 과학에서 2등급이 나오자 죽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해서 또 엄마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화를 참지 못하고 “너 같은 아이 낳고 미역국 먹은 게 아깝다. 그렇게 죽고 싶으면 나가 죽으라”고 아들을 몰아붙였다. 집안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엄마는 그 아이를 데리고 정신병원에도 다니며 갖은 마음고생을 했다. 정씨는 “두 아들을 키우면서 중학교 때까지 걸었던 기대가 요즘에는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면서 “이제야 무엇을 위해 아이들을 그렇게 닦달하며 공부로 내몰았는지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두 아들에게 똑같이 뒷바라지를 하면서 느낀 건데, 엄마 뜻대로 애들이 억지로라도 따라주는 건 중학교 때까지이고 그 이후는 아이가 하기 나름이지 엄마가 노력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정씨는 “최근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한 고등학생이 엄마가 보는 앞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면서 “정말 요즘 아이들은 엄마가 화가 나서 ‘나가 죽어라’고 하면 그냥 뛰어내린다”고 안타까워했다. 그 또한 둘째아들에게 그런 말을 했기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는 “아이에게 아무리 화가 나도 ‘나가 죽어라’와 같은 말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두 아들이 이제는 엄마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러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한동안은 아들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다 내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절감했어요. 이런 생각이 들자 이명 현상도, 위장병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는 요즘 ‘불행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라’는 말을 마음에 되새긴다고 한다. 카톡에서 지인이 보낸 문자를 보여주었는데 거기에는 이나미 정신과 전문의의 글이 있었다. “고통을 그 자체로 힘들어 말고 내가 성장해 나가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하자.” 정씨는 “자녀를 키우면서 중요한 건 성적이나 대학이 아니라 아이가 행복하게 잘 사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면서 “다른 엄마들도 제발 자신이 겪었던 그런 ‘좋은 부모 콤플렉스’와 같은 강박증에서 벗어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

독일걷기협회는 2004년 9월부터 ‘걸어서 학교에 가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부모들이 자녀를 자동차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 주지 말고, 학생들이 직접 걸어서 집과 학교를 오가도록 하자는 운동이다. 걸어 다니니 운동도 되고, 친구끼리 말동무도 하고, 동네 사람들과 인사도 할 수 있어 공동체 정신 함양에도 좋다는 취지다. 우리나라도 이런 단체를 엄마들이 만들어 실천한다면 이야말로 참다운 모성애의 발현이 아닐까.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