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1남2녀 중 막내인 전하영(중2)은 어려서부터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컸다. 현재 키가 170㎝다. 운동도 잘하고 성격도 활달하다. 특이한 점은 보통 여자애들과 달리 화장이나 미니스커트 입는 것에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교복도 남학생들처럼 주로 바지를 입고 다닌다. 전하영의 꿈은 초4 때부터 변함없이 ‘경찰’이다.
처음엔 TV에서 드라마를 보고 멋있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경찰이 되고 싶다는 꿈이 구체화되었다. 자신도 좀 놀랐다고 한다. 경찰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형사가 되어 현장에 나가서 잠입수사 하고 총 쏘고 하는 게 너무 하고 싶어졌다. 경찰이 되겠다는 말에 아빠가 적극 찬성해주었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너한테 딱이다”라고 말한다고 한다. 또 지난해 대전에 있는 간호사관학교에 입학한 언니를 보면서 더더욱 꿈을 굳혔다고 한다. 학비도 무료고 기숙사도 공짜고 옷과 신발에 매달 용돈까지 받는 걸 보면서 고생하시는 부모님께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경찰대가 의대 가는 것만큼 어렵다고 하지만 안 되면 재수를 해서라도 꼭 가고 싶어요. 정 안 되면 경찰공무원시험이라도 봐서 꼭 경찰이 될 거예요.”
꿈이 구체화되면서 요즘에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수학성적이 크게 올랐다. 체육 실기는 거의 만점이다. 경찰관의 꿈을 이루려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은 수업시간에 필기도 잘한다. 학습태도도 많이 좋아졌다고 교사들로부터 칭찬도 듣는다고 한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가도 자신의 꿈을 생각하면 “아, 내가 이러면 안 되는 건데…” 하면서 스스로를 추스르게 된단다. 전양은 “엄마는 의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아빠는 언제나 하고 싶은 거 하라고 격려를 해주신 게 큰 힘이 되었다”면서 “엄마도 언니를 간호사관학교에 보내면서 경찰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왼쪽부터) 전하영·방혜주·박하은. | 자녀경영연구소 제공
방혜주(중3)는 한복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다. 혜주는 어릴 때부터 한복이 아주 잘 어울려 한복 입은 모습이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복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요즘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한복이 너무 예뻐 보이고 자기도 모르게 자꾸 관심이 갔다고 혜주는 말한다. 그래서 설을 지나면서 한복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시간만 나면 종이에다 새로운 퓨전 한복을 아름답게 그리곤 한다. 한복드레스를 그리다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단다.
혜주는 외동딸이라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요즘 아이들처럼 매사에 별로 의욕도 없었고, 꿈도 없었고, 어떤 일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한복디자이너가 돼야겠다는 꿈이 생기자 뭐가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공부도 관련되는 분야를 찾아서 스스로 하게 됐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기에 공부나 다른 걸 잘하는 아이들을 봐도 이제는 부러운 마음이 생기지 않는단다. 자신이 사랑스러운 느낌도 든단다.
나만의 꿈을 정하자 그동안 소홀했던 내신 점수가 걱정이 됐다. 영어도 미술도 잘해야 하겠기에 엄마를 졸라서 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디자인 전문 고등학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여러 선생님에게 상담을 해본 결과 그래도 대학에 진학을 하는 게 더 낫다는 조언을 듣고선 일반고로 가서 수능을 준비할 계획을 갖게 됐다.
방양은 “진로를 선택하고 뚜렷한 목표가 있기에 매사에 망설임이 없고 집중이 잘된다”고 말한다. “목표가 정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시간 낭비, 돈 낭비를 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미대에 진학하려면 수학시험을 보지 않아 미술과 영어에 올인할 수 있어요.” 혜주는 또 “힘들고 지칠 때도 미래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즐겁고, 슬럼프에 빠졌다가도 남보다 회복이 빠른 것 같다”고 말한다.
주변에서 보면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꿈이 없는 아이들이 많다. 부모의 기대에 마지못해 그냥 막연하게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약자) 가야지 하는 애들, 그런 애들보다 혜주는 자기 자신이 훨씬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요즘은 재봉틀을 사다놓고 박음질 연습을 열심히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박하은(명지대 1년)은 배정받은 중학교에서 초등학교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공부도 잘하지 못했던 하은이는 피아노로 친구들을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실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쳤는데 피아노라면 자신이 있었다. 아이들 앞에서 피아노를 한 번 쳤더니 아이들이 ‘대박’이라고 소리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피아노를 아주 좋아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친구들의 환호와 박수소리에 피아노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자신감도 덩달아 더 생겼다. 이때 ‘피아노는 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중·고등부 예배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게 되었다. 매주 오케스트라부와 함께 연습을 하고 반주를 하다 보니 무대에 서는 게 어느 새 자연스러워졌다. 피아노와 늘 함께 하고 싶은 하은이의 꿈은 결국 이루어졌다. 예고를 거쳐 올 초 명지대에 합격해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다.
“시험 막판에 약한 체력 탓에 목표로 한 대학에는 아깝게 떨어졌어요. 원래 꿈이 유명한 대학의 음대에 가는 것이라기보다는 피아노를 치고 음악을 하는 거였기에 그리 속상하진 않았어요. 다만 학교가 멀어 다니기가 좀 불편할 뿐이죠.” 박양은 “요즘에는 클래식 음악 큐레이터가 되어야겠다는 꿈이 생겼다”면서 “그래서 간판 따기 위해 대충 다닌다는 생각 대신 피아노 연습도 더 열심히 하고 어학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클래식 음악 큐레이터로 한 단계 꿈을 더 구체화하면서 공부하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들과 달리 요즘 많은 아이들은 꿈이 없다고 한다. 어떤 아이는 ‘그냥 살면 되지 꿈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글로벌 현상으로 풍요로운 시대의 산물이라고 한다. 사실 꿈은 찾기가 쉽지 않다. 필자의 경우 대학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서야 부랴부랴 진로를 정했다.
그때 필자는 매일 ‘변화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신문기자는 시대의 기록자이므로 늘 변화하는 삶을 엿볼 수 있고, 또 그런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꿈은 변할 수 있다. 꿈이 바뀌는 게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다. 생각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자주 바뀐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필자는 신문기자를 하다 생각이 바뀌어 신문기자를 그만두었다.
꿈을 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성향에 맞춰 꿈의 ‘상수’를 정해놓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경우 꿈의 상수는 ‘변화’였다. 꿈의 상수는 재능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격을 고려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먼저 꿈의 구체적인 직업을 정하기에 앞서 꿈의 ‘상수’를 정하는 게 중요하다. 여기에는 도전, 모험, 봉사, 헌신, 사랑, 명예, 권력, 실용, 평온 등등 수많은 상수들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성향에 맞춰 하나 또는 두 개 정도 정하면 된다. 그리고 의사나 변호사, 엔지니어, 기자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즉 직업은 꿈의 ’변수’에 해당하겠다.
하고 싶은 일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재능이 있는가’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외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호기심’일 것이다. 유난히 관심이 가는 분야가 바로 자신의 재능이 있는 분야일 수 있다. 이때 부모나 형제자매, 친척 등에게 조언을 구하고 또 이들을 ‘역할모델’로 삼거나 참고할 수도 있다. 앞에 소개한 전하영양은 언니의 조언을 듣고 또 언니를 역할모델로 삼았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꿈이 바뀌어도 나무라지 말아야 한다. 한 번은 필자의 아들이 고1 때 꿈이 바뀌었다고 교사에게 핀잔을 들었다고 했다. 꿈은 정해지면 고정되는 게 결코 아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꿈이 가장 멋진 꿈이다. 그 꿈 찾기는 삶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될 수도 있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문학박사>
![[오늘을 생각한다]](http://img.khan.co.kr/spko/ranking/weekly/140098/20240430104625_14009801.jpg)
점점 커지는 채 상병 의혹
‘이채양명주’ 의제로 올려야
